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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같은 출판사에서 지난 2011년에 출간했던 책을 다시 출간해낸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책의 활자나 서문의 내용으로 보아 과거의 책을 그대로 낸 것으로 여겨진다. 출판사에서는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그 책의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비평'을 표방하고 있는 이 책에는 첫 출간 당시의 저자 서문이 그대로 전재되어 있다. 이 책을 처음 출간할 무렵에 저자는 당시에 생소했던 '문화비평'을 책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해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가십이나 늘어놓고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인상을 기술하는것'과는 구별되는, '궁극적으로 문화의 비평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회비평을 하겠다고 서술하였다.
전체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 중 첫 번째는 '철학과 비평 사이'라는 제목으로 서양철학에 기반한 문화비평의 이론화를 시도한다. 아마도 저자가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유학을 했기에, 자신의 학문적 근거를 서양철학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비평'의 이론을 설명하는 첫 번째 항목의 내용들은 실제 문화비평의 이론적 근거로서 작용한다기보다는 그저 저자의 지적 사유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파악되고 있다. 단지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주된 이론들이 어느 정도 '낡았다'라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나아가 '사회와 정치 사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도 2010년 이전에 발생했던 다양한 한국사회의 사회문제와 정치 현실을 끌어들여 나름의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당시의 사회문제와 드라마 혹은 영화 등을 통해 분출되었던 대중들의 욕망과 이에 대한 나름의 비평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중심이 이미 유튜브와 같은 SNS 기반의 인터넷으로 옮겨진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 책에서 다뤄지는 문제가 나에게는 그다지 시의적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는 문화비평을 일컬어 '형식에 각인되어 있는 내용의 논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근본적으로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그 내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2010년 즈음의 문화적 현실을 다루고 있기에, 과거를 반추하는 효과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는 의미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하게 잊혀져간 '신정아 사태'나 이순신에 관한 소설과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지금의 현실적인 문화적인 코드로 읽힐 것 같지는 않다. '문화비평'의 틀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나 시각은 어쩌면 낯선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의 사회 문제를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문제를 저자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내용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세 번째 항목에서는 '문화와 인물 사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이 역시 '인물'보다는 당시의 문화 현상들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분적으로 당시의 인기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김삼순'이나 이미 고인이 된 '신해철' 등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제목이 눈에 띠기는 하지만, 대체로 당대의 문화 현상을 조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굳이 제목에 맞춰 해석해 본다면, 그러한 시대에서 각 개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인물관'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과거의 문화현상을 대상으로 한 문화비평서를 재출간하기보다 현재의 문화를 진단하는 새로운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이 더 긴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복고적인 문화가 유행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복고'는 과거 그 자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된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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