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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9.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0.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11.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12.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3.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4.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설교>
엘리바스는 10절에서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중에는’라는 말의 의미가 욥의 친구인 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바스는 나이를 권위로 내세워 욥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바스나 다른 친구들이 욥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7-9절에서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들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욥을 낮추어 말하고 나이를 언급하면서 자신들이 욥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지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어떻게든 나이가 많고 욥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건위로 내세워 욥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장면을 많이 경험합니다. 가령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과 얘기할 때 그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되면 ‘건방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나이 적은 사람은 많은 사람의 말에 굴복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상 예의라고 합니다.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에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질서는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 자체가 권위는 되지 못합니다. 도덕적 사회에서는 나이가 권위로 인정될 수도 있고 그 권위에 머리를 숙이고 복종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흔히 권위자로 인정되는 사람은 목사입니다. 그리고 장로도 교회의 어른이라는 이유로 권위 있는 직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만약 목사나 장로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마치 교회를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6절에서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는 말도 욥이 한 모든 말이 스스로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욥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바스는 욥의 재앙의 이유가 죄에 있다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해결하면 재앙에서 벗어나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는 자칭 위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욥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다시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11-13절)고 말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욥을 위로하고자 했고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불만과 분노로 반응하는 욥이 그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옳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신자가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고 불만의 말을 하는 것은 비신앙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불만과 불평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신앙을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하나님을 향해 했던 욥의 분노와 불만의 말들은 욥의 신앙을 의심하게 할 만한 충분한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보다는 엘리바스의 말에 더 동의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바스도 욥에 대해서는 더 깊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4-16절)라는 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안다고 할 수 있는 일반적 지식에 의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들의 말에 굴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떤 말도 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국 나이를 권위로 내세우는 것이고, 자신의 말에 굴복하지 않는 욥의 태도를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하고 가증하며 부패한 것으로 책망하는 것으로 욥을 누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굴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나이를 권위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엘리바스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 앞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에게 권위자는 하나님 한 분이시고 하나님 앞에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 굴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자신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존재라는 것을 잊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위는 목사라는 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직책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말씀에 복종되는 것으로 권위가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에 앞에 나오게 하여 복종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지 목사에게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
16:31절에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이라는 것은 백발이 곧 권위의 증표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가 많다는 것이 권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발은 세월의 증거입니다.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세월을 막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는 것을 막을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복종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백발을 보면서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백발을 보면서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고 세상 모든 것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게 된다면 그에게 백발은 말 그대로 영화의 면류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발이 주를 깊이 생각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엘리바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깊이 본 적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현재 모습이기도 합니다.
엘리바스와 욥의 이야기는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 틀렸다고 규정하기에 매우 애매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는 동일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도 욥의 말이 틀렸다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9절)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두가 자기 지식에 의한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씀에 굴복하고 복종하는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본인이 말씀의 권위를 생각하지 않고 그 권위에 복종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니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욥과 욥의 친구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내가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라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목사가 그런 태도로 교인들에게 자기 말을 들을 것을 요구하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으로 매도하지만 보인 자신이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조치할 문제이지 엘리바스처럼 ‘하나님의 말씀인데 왜 듣지 않느냐’라고 공격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고 권위 있는 말씀이 자기 백성을 찾고 말씀에 복종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화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깨닫게 된 말씀을 깨달은 만큼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 말에 반대하든 받아들이든 그것은 말씀이 하실 일입니다. 신자는 말씀의 권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Chapter 39
Claim For Authority
Art thou the first man that was born? or wast thou made before the hills?
Hast thou heard the secret of God? and dost thou restrain wisdom to thyself?
What knowest thou, that we know not? what understandest thou, which is not in us?
With us are both the grayheaded and very aged men, much elder than thy father.
Are the consolations of God small with thee? is there any secret thing with thee?
Why doth thine heart carry thee away? and what do thy eyes wink at,
That thou turnest thy spirit against God, and lettest such words go out of thy mouth?
What is man, that he should be clean? and he which is born of a woman, that he should be righteous?
Behold, he putteth no trust in his saints; yea, the heavens are not clean in his sight.
How much more abominable and filthy is man, which drinketh iniquity like water? (Job 15:7-16 KJV)
(Sermon)
Eliphaz says in Verse 10, “With us are both the grayheaded and very aged men, much elder than thy father.” It is not certain that he meant Job’s three friends by saying ‘with us’, but he is trying to oppose to Job by claiming authority with age. He is telling Job to listen to the elderly. Thus, we can assume that some or all of Job’s friends might have been older than Job was.
Verses 7 to 9 are meant the same, saying, “Art thou the first man that was born? or wast thou made before the hills? Hast thou heard the secret of God? and dost thou restrain wisdom to thyself? What knowest thou, that we know not? what understandest thou, which is not in us?”
We can guess Eliphaz knew Job wouldn’t easily be obedient to them, so he is mentioning ‘Job’s being younger than others’ to put Job down, resulting in making himself, Eliphaz, and the two friends in a superior position. It is an attempt to subdue Job by being older and more knowledgeable.
We can often encounter such scenes. For example, when two different aged christians talk to each other and the younger one wouldn’t listen to the older, the older would think the younger is haughty. The older probably thinks that the younger should listen to the elderly for social manner, called, ‘courtesy.’
No doubt that we need certain order according to ages in our society, living together. Yet, older people wouldn’t automatically have authority over younger people. Although a moral society, where we belong to, demands that the younger be obedient to the elderly, the authority the Bible talks about is far from that of the world.
In christian gatherings, those considered ones with authority are elders and preachers. Thus, it is common that those not listening to elders and preachers are deemed rebels as if they were against the whole gatherings in church, causing to be criticized.
Verse 6, “Thine own mouth condemneth thee, and not I: yea, thine own lips testify against thee” also means that Eliphaz is blaming Job because he is not repenting even though all that Job has said proves himself as a sinner.
Taking a look at his words, we can find that Eliphaz still keeps the same idea of the reason of Job’s afflictions with Job’s sin. That’s why he is scolding Job that he wouldn’t receive his friends’ comforts and advice.
And, he adds by saying, “Are the consolations of God small with thee? is there any secret thing with thee? Why doth thine heart carry thee away? and what do thy eyes wink at, That thou turnest thy spirit against God, and lettest such words go out of thy mouth?”
Job’s friends must have been displeased with Job because they believe they tried to sympathize with him and gave him enough comforts but Job was still complaining against God in anger. Job was a very unrighteous man to them.
It is the same to us that we regard those with complaints and dissatisfaction against God as the unfaithful. We would rather say that it is the faithful that those in the same situations above give thanksgiving to God in joyfulness.
In this aspect, whatever Job has said and done in complaints and dissatisfaction against God can make us doubt if he truly believes in God. Thus, it could be that we would agree with Eliphaz more than Job.
However, we learn that Eliphaz can’t go further to point out Job’s fault because he is saying something general and not particular on Job in Verses 14 to 16, “What is man, that he should be clean? and he which is born of a woman, that he should be righteous? Behold, he putteth no trust in his saints; yea, the heavens are not clean in his sight. How much more abominable and filthy is man, which drinketh iniquity like water?”
Eliphaz must have noticed that Job wouldn’t accept their advice, so he is claiming the authority with age, judging Job for his profane attitude to God since he isn’t listening to them.
Even though Eliphaz stands ‘being older’ as the authority, it means that he is not standing before the authority of God because God is the only One with authority for believers and all must be obedient to God. Therefore, we can say Eliphaz is unaware that he himself is also the one who must be obedient to the authority of God.
The authority doesn’t lie in positions of elders or preachers, nor in their social status but in the Word of God. Thus, when the Word of God is preached in the manner of God, the authority is proclaimed by those in obedience. Therefore, preachers are not in authority but merely ones who deliver the Word of God to the congregation so that they would obey the Word.
In Proverbs 16:31, it says, “The hoary head is a crown of glory, if it be found in the way of righteousness.” ‘Gray hair is a crown of glory’ doesn’t mean that gray hair itself is a sign of authority. In other words, it doesn’t say ‘being older’ is authority. Gray hair shows ‘having been aged’, which can never be prevented by anything even power or money. There is nothing to stop aging, which means all things are obedient to the reigning of God and we can realize it while seeing our gray hair.
Thus, if one looks up to Christ, who is the life, while understanding one’s frailty and valuelessness of all things in the world, one’s gray hair is a crown of glory to one. It is because one’s gray hair has made one take a deep consideration of the Lord. In this way, it is true that Eliphaz has never seen himself deeply before God, which is not different from us.
Actually, it is hard for us to tell who is wrong between Eliphaz and Job because both show the common knowledge of God. Eliphaz doesn’t say Job is wrong either, saying in Verse 9, “What knowest thou, that we know not? what understandest thou, which is not in us?” He says what Job is saying is right, which they admit.
If so, what is the problem in their talk? It is that there is none obedient to the Word of God although they all think they are discussing on the Word of God.
Likewise, preachers would like to take the initiative, implying, ‘I am preaching the Word of God, so you have to listen to me’ as they haven’t been obedient to the Word themselves. We see it through Job and his friends.
Thus, if you are in the position of preaching the Word of God, you mustn’t be authoritative. One’s being authoritative does nothing but reveals one’s disobedience to God in such attitude.
The matter of not hearing the Word of God is for God to deal with and not for speakers to do, and it doesn’t give speakers authority to offend listeners for not accepting the Word. It is because God is working Himself and reaching out to His own people for their obedience.
Thus, believers don’t have a conversation to bring others into submission. They share the Word of God as much as they have come to understand it, and they know whether the hearers would accept it or not is of God because they are under the authority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