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추시면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생명과 빛이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요 1:4), 이것은 생명의 빛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유대 민족을 복음이 “가려진” 사람들로 말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역시 이전에는 그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가만둘 수 없어서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모세의 가르침이 가려진 것으로 생각되어 그 어둠에 속한 자들을 건져내거나 박멸해야 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 1:13-14)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라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하고,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 9:8-9)는 극적인 경험을 합니다.
이후에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자로서 율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행 22:3) 이제는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해가 되었다고 고백하며,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5-9)
다메섹에서 그에게 빛이 비추는 순간 그 빛을 경험한 그는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됨으로 그는 철저히 회개하였고,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의 목표와 의미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여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다가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였습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 26:15-23)
그리고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비록 이 세상 신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 4:4) 하려고 할지라도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 4:1-2)라고 고백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서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말씀을 고백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바울 자신이 경험하였던 것이고, 바울 주변의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창 1:3)” 이제는 새로운 창조를 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심으로 이루신 놀라운 창조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는 바로 앞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그가 참 빛을 알지 못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판단하고, 그리스도인들도 육신을 따라 판단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만나자 비로소 무엇이 성경의 바른 뜻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중요하게 가르쳤습니다(고전 15:3-4). 이 가르침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 15:2). 그렇게 구약성경을 바르게 알고 나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신 것들도 잘 깨닫게 되어서 그것을 여러 교회에 편지로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는 자세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3-15)
그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자신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게 되었을 때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신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다 이러했습니다. 배은망덕하지 않고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이러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이나 북한에서, 그리고 여러 이슬람 국가들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그들의 마음에 비추시면” 어떤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이사가 주시라”는 고백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라”고 고백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지금도 세상 권세자와 알라에게 굽혀 절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굽혀 절하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태양이 떠오르면 촛불은 모두 꺼버린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밤에는 촛불이나 등불, 혹은 전깃불을 켜서 어둠을 몰아내지만 아침이 되어서 해가 떠오르면 그 모든 것들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태양으로 충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제 다른 모든 것들은 상대화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만 유일한 위로와 의미요, 목적이 되고, 기쁨과 만족이 됩니다. 그것은 경험하는 자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경험하는 자만이 고백하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찬송이며 경배입니다. 그리고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