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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시조집 『나무 날다』
-동심과 상상력, 가사시와 시조의 만남
김우연(시조시인․문학평론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처럼 동심은 솟아나는 샘물처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나무의 꿈
날고 싶다.
그래서 잎을 피운다.
수많은 가지로
날갯짓 하다보면
기어이
하늘을 날 것이다.
바람 몹시 부는 날.
-「나무 날다」 전문
김진혁 시인은 단시조 「나무 날다」는 절창으로 현대시조사에 영원히 남게 될 동시조라고 본다. 한 작품이라도 독자들에게 영원히 남길 수 있다면 시조시인으로 성공한 것이요 행복한 일일 것이다.
김진혁 시인은 1984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제6시조집 『나무 날다』(도서출판 시와사람, 2023)에 내놓았다. 제5시조집 『초록별 사랑』에서 나는 「천부적인 감수성과 순수서정의 세계」라는 글로 해설한 바 있는데, 이번 시조집의 표제작인 「나무 날다」에서 그 ‘천부적인 감수성’을 동심으로 상상하여 독자들에게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김진혁 시조시인의 상상력은 결국 「나무 날다」의 이 한 작품을 얻기 위하여 40년이 걸린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시조의 본령이 단시조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일단 독자들이 암송할 수 있고 기억하기 좋기 때문이다. ‘나무’가 ‘날고 싶다’는 꿈을 꾸는 동심으로 일단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서 날기 위한 날개는 바로 ‘잎’이라고 한다. 나무 아래에서 나무를 쳐다보면서 바람에 팔랑거리는 나뭇잎을 바라본다면 저 푸른 하늘 속으로 나무가 날아가는 상상력을 하게 된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욱 거센 바람이 분다면 하늘을 훨훨 날 것이다. 보고 싶은 세상을 맘껏 보면서 행복한 ‘나무’가 될 것이며, 새로운 것을 전해주는 신화 속의 ‘나무’가 될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이 시조를 읽으면 무한한 상상에 젖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린 왕자」가 인생의 깊은 철학을 함축하고 있듯이 이 작품 마찬가지다. 시조시인으로서 김진혁 시인은 수많은 잎을 피워서 마침내 날아가는 나무처럼 한 편 한 편 심혈을 기울여 시조 창작을 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잎’ 하나 하나가 한 편 한 편의 시조 작품일 것이다. 「겨울나무 2」에서도 “못 잊을 그리움이 하늘을 덮습니다”라고 했듯이 그는 나무는 그의 자화상이요, 자신의 생각을 대신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사실 시조시인 김진혁의 꿈은 『장자』에서 맨 먼저 내세운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변화여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 ‘붕(鵬)’는 새로 변하였다는 “화이위조(化而爲鳥)”를 연상시킨다. 시조의 길을 걷기 위해서 연봉이 훨씬 많은 직장을 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장을 택하여 창작 활동도 꾸준히 해 온 것만 봐도 그는 진정한 문학인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나무’처럼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때를 알아서 잎이 무성할 때는 무성하게 하고, 비울 때는 비워서 봄을 대비하듯이 자연의 순리을 알고 삶을 살아가는 참된 삶을 추구해 왔으며 그 꿈과 실천한 삶을 「나무 날다」로 표현한 것이다.
뿌리는 매의 발톱 대지大地를 움켜쥐고
장마 태풍 몰아쳐도 꿋꿋하게 자리하니
마음의 근본을 다잡아 흔들림 없이 살라하고,
하늘 향해 곧게 크되 사시장철 푸르니
큰 뜻과 고귀한 인품 꺾일망정 굽히지 않고
임 향한 늘 푸른 마음 군자의 덕목이요,
마디마다 절節을 하되 그 속은 비었으니
제 분수 제가 알아 굽은 길로 가지 말고
무소유 정신 하나로 집착을 버리라네.
한 매듭 가지 하나
천千 가지에 만萬의 잎이
제각기 제 맘대로 부딪히고 흔들려도
한 뿌리로 곧게 서서 억조창생 다스리고
잠깐 스친 바람에도 파도소리 자아내니
새파에 지친 중생들의 영혼까지 씻는다네.
꽃이랑 열매랑은 욕심내지 않아도
자손만대 번창하되 부러울 게 하나 없네.
한때 피는 꽃이란
철 지나면 자취 없고
시공 속 삼라만상
세월 가면 사라지니
욕심은 부질없는 것
붙잡아 무엇 하리.
열 가닥 스무 가닥 닿는 대로 쪼개져서
대바구니 대 돗자리 죽침에 죽부인까지
기꺼이 목숨을 바쳐 홍익정신 실천하고,
마디 잘라 구멍 내어 지그시 숨 고르면
오묘한 율려律呂 되는 만파식적 내 몸이요,
인생 고해 거친 파도 풍랑도 피리 불어 잠재우니
천하가 태평하구나, 중생구제衆生救濟 내 뜻일세.
-「대나무경經을 읽다-죽녹원에서」 전문
그는 큰 시조시인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이 자신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가사와 시조의 만남으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현대시조의 새 지평선을 열었다. 이것은 자유시를 쓰던 조운이 ‘식민지적 무의식’에서 벗어나 ‘시조’로서 당당히 우리의 역사와 현실의 삶을 노래한 것에 비견된다. 조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자유시가 마치 뛰어난 것이고 우리의 시조는 역사적 사명이 끝난 고루한 것이라고 보는 식민지적 시각을 거부하였다. 그의 성찰은 ‘시조부흥운동’이라는 카프와의 대결에서 민족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학 예술 경지의 시조들을 개척하였다. 평시조 「석류」를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들은 물론, 사설시조 「구룡폭포」는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김진혁의 제6시조집 『나무 날다』에는 「대나무 경(經)을 읽다」, 「소쇄원 사계(四季)를 거닐다」는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조운의 「구룡폭포」가 아직까지도 사설시조로서 충격을 주는 것과 같다. 자유시보다 더 아름다운 조운의 「구룡폭포」에서 우리의 무한한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위의 두 편은 평시조와 가사체가 결합한 사설시조이다. 지금까지 좋은 사설시조작품이나 작품집들도 있었다. 1980년 시조단에서는 평시조로서는 말하고 싶은 것을 담기에는 부족한 그릇으로 보면 ‘사설시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일군의 시조시인들이 있었고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2000년 전후로 하여 시조의 형식을 허물어서 열린 시조로서 새롭게 현대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그 운동을 펼치는 시조시인들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시와 정형시인 시조가 구별도 되지 않는 시조를 시조로 볼 수 없다고 하며 완전 글자수를 제한하여 그 틀에 맞춰야만 시조라는 운동을 펼치면서 지금도 두 흐름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시조시인들은 극단적인 형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서 현대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조운의 「구룡폭포」가 ‘시조부흥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듯이, 김진혁 시인은 가사를 시조로 승화시키고, 시조와 가사시가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를 연 것이다. 물론 조선 후기 사설시조창에서 완전한 가사작품 한 편을 ‘사설시조창’으로 하여도 사설시조로 분류하는 것과도 다르다. 성호경 교수는 사설시조 형식을 7가지 형식으로 분류하면서 가사는 가사로, 잡가는 잡가로, 약간 길어진 사설시조는 ‘변형된 평시조’ 등으로 돌려보내면 시조형식으로 사설시조는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제대로 반박하는 논문은 없는 실정이다.
김진혁 시인은 이런 이론적인 것은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가사시집 『돌 속에 핀 노래』(고요아침, 2022)로 가사시(歌辭詩)로 세상에서 크게 주목을 받는 시인이다. 가사시집에서 가사시 「대나무 경전을 읽다」, 「소쇄원 사계(四季)」 두 편을, 이번 시조집에서 「대나무 경(經)을 읽다」, 「소쇄원 사계(四季)를 거닐다」로 시조로 변형한 것이다. 시집 해설에서 김종 교수는 이런 김진혁 시인의 가사시에 대한 진면목을 알아보고는 “필자는 근자에 김시인이 가사시에 거둔 괄목상대가 저리 쏟아내듯 창작하는가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하면서 “김진혁 시인에게서 시조와 가사시 두 장르에서 굳이 경중을 헤아린다면 40년 넘게 몸 바친 시조보다는 6,7년 전부터 연을 맺은 가사시에 골몰하면서 날밤을 새우는 형국인 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어적 구속에서 무한 자유를 획득한 김진혁 시인의 표현력은 마치 갈증의 단계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능소능대한 가사시의 한 지평을 펼쳐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여겨진다.”라고 하였다. 결국 김종 시인은 김진혁 시인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가사시에 몰입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김진혁 시인은 특이하고도 독특한 경지를 연 것이다.
「대나무 경(經)을 읽다」, 「소쇄원 사계(四季)를 거닐다」 두 편의 시조는 기존의 사설시조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으로 현대시조의 새 지평선을 연 것이다. 장자가 말한 물고기 곤이 변하여 붕새가 된 “화이위조(化而爲鳥)”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라고 하였다. 날기 위해서는 큰 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무 날다」 종장에서 “기어이/ 하늘을 날 것이다./바람 몹시 부는 날.”이라고 한 것도 붕새가 날 때와 같은 큰 바람이 필요한 것이리라.
김진혁 시인은 《오늘의 가사문학》으로 가사시로 등단하여 크게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시조가 가사요 가사시가 시조이다. 안동지방의 「내방가사」가 창작 및 경창대회를 오랫동안 이어오다가 이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아직도 서구 사대주의에 물든 다수의 시인들과 지식인들은 카프의 후예들로서 ‘민족’만 생각하고 ‘이념’에 물들어 있다. 그들은 시조도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사시의 부활은 복고주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류 바람이 불기 오래전부터 《프린스턴 시학사전》에는 한국의 현대시라면 자유시보다는 “시조는 한국시 형식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융통성 있고, 가장 기억할 만한” 장르라고 소개하며 한국 자유시에 비해서는 압도적 비중으로 다루고 있음에 충격적이었다는 어느 중견 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현실에서 힘으로만 밀어붙이고, 편 가르기가 현실인 대한민국이지만, 문학은 문학의 길로 갈 때 성공할 것이다.
김진혁의 시조들이 가사시와 시조의 결합으로 새 지평선을 열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변화와 충격이 올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큰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김진혁 시인은 자기가 날고 싶은 하늘을 맘껏 날 것이다. 새롭게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들에 박수를 보내며 큰 바람 속에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별들의 이야기들을 전해줄 것을 기대한다. ‘화이위조(化而爲鳥)’! 맘껏 날기를 바란다.
첫댓글 김진혁 시백의 대나무경 시조와, 김우연 선생님의 비평 즐겁게 감상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진혁 詩人님!
늘 멋진 글 감사히 읽고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응원드립니다.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