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만해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책이 어렵다는 것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그녀의 작품들을 적어도 3-4권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점에 들러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시간을 사왔다.
일체 책의 분위기를 모른체 사온것이다.
소년이 온다 라는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5.18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흥미로운 주제인 것을 확신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점점 곤혹스러운 마음에 다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패턴의 5.18내용이 아니다.
너무 깊고 밀접하며 평범하지 않으며 주눅이 드는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의 작가적 시점은 시민군에 가장 선두에 서서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잡혀가 고문과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시점이다.
어려운 소설이다.
글을 써가는 작가의 언어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관점이다.
아마 한강은 5.18과 관련된 자들을
직접 취재하고 만나고 마음으로 몸으로 체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에는 내가 시민군의 선두에 서야 하고
고문을 당해야 하며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책을 몇번이나 덮었다 말았다를 반복하였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책을 펼치고 그러다가 덮기를 몇번.
나는 사실 5.18을 민주항쟁으로 우리 역사가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일로 알아왔다.
그래서 5.18이 오면 간혹 혼자서 망월동 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그 정도의 마음은 새발의 피라고 느낄 정도로
한강 작가는 깊게 깊게 5.18을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5.18이 얼마나 역사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역사의식이 없는 요즘 세대들에게 노벨 문학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면서
너나 나나 없이 한강의 소설을 읽게 하고
5.18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5.18을 기억시키는지...
역시 악은 선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에서부터
하늘은 영원히 5.18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나는 기쁜마음이 들어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는 이토록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뼈아프게 5.18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식과
고문과 죽음을 함께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데모에 함께 합류하여 민주화운동을 한 적이 있다.
전경들과 대치하고 짱돌을 나르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싸웠던 기억이다.
전경들이 무자비하게 싸대는 최루탄이 날라오는 가운데
나의 가슴속에 더욱 되살아나는 민주화의 열망의 순수성을 느끼며
한편으론 저 최루탄에 맞으면 죽는다는 공포감에 짓눌리며
도망치다 다시 돌을 던지고 도망치다 다시 돌을 던졌던 그날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나의 기회주의적인 성향과 민주화의 순수성과 싸우던
그때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그래도 나는 민주화의 선봉에 서서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이기적이었다.
나는 현실과 싸워야했고 나의 미래를 걱정해야했다.
소년이 온다는 그런 현실타협적이고 이기적인 나와는 거리가 먼
온전히 민주화의 열망에 불타올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어느날 갑자기 공수부대가 점령한 광주의 이야기이고
타협될 수 없는 날들의 저항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