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1742) // 제18회 이육사시문학상 / 이산하
악의 평범성 / 이산하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 놓았습니다”
“에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여러 시신들 사진과 함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이다
“우리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진도 명물 꽃게밥이 되어 꽃게가 아주 탱글탱글
알도 곽 차 있답니다~”
요리 전의 통통한 꽃게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글이다
이 포스팅에 ‘좋아요’는 500여 개이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댓글은 무려 1500개가 넘었다
‘좋아요’보다 댓글이 더 많은 경우는 흔치 않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문득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범인을 찾은 듯 관객들을 꿰뚫어 보는
송강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오른다
범인은 객석에도 숨어 있고 우리집에도 숨어 있지만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다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이산하 시인은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시운동’에 ‘존재의 놀이’로 등단했다.
올해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시인은 시집 ‘악의 평범성’을 비롯해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와 성장소설 ‘양철북’ 그리고 기행집 ‘피었으므로, 진다’, ‘적멸보궁 가는 길’ 등을 출간했다.
이육사 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산하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역사와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이미지화하는 시각이 이육사 선생의 시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