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품어온 세월의 기록, 큰형수님과 함께 한 통영의 밤
추석을 앞두고 가족묘를 찾아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가슴 한 편이 아련해졌다. 누구나 늙어가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지만, 내 인생의 가장 오랜 기억을 함께 공유한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의 결이 고와진다. 초등학교 2학년, 코흘리개 어린아이였던 내 눈에 비쳤던 열여덟 살의 새색시는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어 여든 아홉의 세월을 건너왔다.
큰형수님은 우리 가문의 거대한 산 역사이자, 묵묵히 험한 세월을 견뎌낸 표상 그 자체이시다.
얼굴도 모르고 맺어진 격동의 인연
형수님이 우리 가문으로 시집을 온 것은 지금의 세대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소설 같은 이야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형수님의 나이 18세였고, 백형의 나이는 17세였다. 두 분은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한 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 혼사의 뒤에는 집안을 지키려 애썼던 선고(先考)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우리 집안의 파종 종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를 홀로 희생으로 버텨내신 조모님을 모시고 계셨다. 조모님의 건강이 점차 나빠지시자, 아버지께서는 할머니 생전에 증손주를 그 품에 안겨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 믿으셨던 것이다.
마침 외종조부 회갑연에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탤런트급 미청년이었던 백형과 일가족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사장어른과 아버지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가문의 내력과 여건이 서로 맞아떨어져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그 길로 사돈을 맺기로 결정하셨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서는 형님의 결혼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셨다.
비록 백형이 완강히 반대했지만, 그 시절 아버지의 말씀은 곧 집안의 법이자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의무였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2021년 백형이 83세의 나이로 작고하실 때까지 긴 세월을 함께했다. 형님이 떠나신 후, 큰댁은 장조카가 든든히 모시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다독이는 1박 2일의 통영 여행
백형이 떠나신 뒤 홀로 남겨진 형수님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형님들이 생존해 계실 때는 비교적 자주 여행을 동행했었지만,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추석을 앞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내가 장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형수가 내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다. 그동안 많은 고생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텐데,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게다.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중에 너 엄마와 추억을 가장 많이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마음껏 들어드리고 싶다."
또, 장조카에게 덧붙이기를 "걱정 마라, 아프시면 병원으로 모실 것이고 많이 걷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여행은 이렇게 운영할 예정이다.
첫날은 맛있는 음식 먹고 통영 케이블카 바로 위의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바다를 눈에 담은 뒤, 호텔로 돌아와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일정. 이튿날은 한산도 가는 배의 왕복표를 산 후 내리지 않고 그 배로 바로 돌아올 것이다. 갈때는 뱃전에서 바다 구경을 하면서 가고, 올 때는 배 안 바닥에 편히 누워 돌아오려고 한다.
우려와 달리 여행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평온하고 다정하게 흘러갔다.
새벽 2시 30분까지 이어진 집안의 역사이야기
진정한 여행의 백미는 저녁 식사 후 찾아왔다. 8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형수님의 기억력은 놀랍도록 생생했다.
열 명이 넘었던 대가족 식구들의 생일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집안의 9위나 되는 제삿날을 단 하나의 착오도 없이 줄줄 읊어내셨다. 그 제사들에 얽힌 크고 작은 사연들도 어제 일처럼 실감 나게 펼쳐졌다. 형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곧 우리 집안의 살아 있는 역사책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대화는 무르익어 새벽 2시 30분이 되었어도 끝날 줄을 몰랐다.
"형수님, 이제 그만 주무시고 내일 마저 이야기해요."
그제야 형수님은 "약을 먹어야 잔다"며 약을 챙겨 드시고서야 스르륵 잠드셨다. 하지만 나는 형수님이 건네준 기억의 울림과 진한 감동에 사로잡혀 잠자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고, 결국 뒤척이며 긴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다음 날, 점심을 든든하게 대접하고 큰댁에 형수님을 모셔다드리는 것으로 짧고도 깊었던 1박 2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인생의 만년에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세월의 뒤편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누구에게나 늙음은 공평하게 찾아오고, 나이가 들수록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눌 대상도, 마음 깊이 귀 기울여 줄 사람도 점점 사라져 간다.
그렇기에 마음이 편한 이들과 마주 앉아, 지나온 삶의 허물없는 옛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뜻깊고 소중한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 당신의 곁에서 평생을 견뎌온 소중한 이의 손을 잡고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서로의 세월을 귀담아 들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형수님과 함께 보낸 이 통영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지나온 칠십 년 세월을 포근히 감싸 안은 가장 아름다운 명절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