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서 배우는 이름의 뜻과 교회의 표상들
은성: 참 이상하네요. 왜 한국 사람이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아버지: 왜 그러니?
은성: 여기 보세요. 김요한, 정바울, 박요셉, 이다윗, 장사라 등 성은 한국인의 성인데 이름은 성경의 이름이니 이상하지 않나요?
아버지: 네가 궁금해할 수도 있겠구나. 먼저 이런 글을 읽어보자.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이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누구에게나 고유의 이름이 있는 경우는 사람뿐인데, 그만큼 고귀한 존재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름은 가볍지 않다. 누구나 이름을 갖는다. 이름이 그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사회적 관계와 그의 삶 그리고 그가 해낸 일에 대한 평가를 지닌다. 이름값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름은 실체가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하나로 여기는 건 아마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실존적 성찰이 주는 힘 때문이고 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 맺음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재확인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에 ‘아담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는 대목은 단순히 아담이, 사람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이 가능해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대상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오피니언; 김경집 인문학자)
은성: 이름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군요.
아버지: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고, 그래서 그 사람 자신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제삼 계명에서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고 명령하셨다.
은성: 교도소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수감번호를 부르는데 그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겠네요.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버지: 맞다. 우리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참으로 귀하게 생각해야 하고, 사람마다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가 존재가치가 있는 귀중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은성: 잘 알겠어요. 그것은 그렇고 왜 한국 사람이 성경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세요.
아버지: 성경에서 이름을 살펴보면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사명’과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이라는 사명을 주셨고, 사래에게는 사라(열국의 어미)라 하는 사명을 주셨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예수님의 이름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은성: 이해가 되네요. 그러면 요한, 요셉, 다윗, 사라,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소원과 기대를 담아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뜻이구먼요.
아버지: 그렇다.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 당사자들에게 준 새 이름인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서 이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도록 축복하는 이름이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 17:5-6)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들어 이스라엘의 민족을 세우기 위하여 주신 특별한 이름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0-11) 그런데 게바와 베드로의 경우에는 전자는 아람어이고 후자는 헬라어 이름일 뿐이다. 사울과 바울의 경우 사울은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사용했던 이름이고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을 낮추어 가진 이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사울은 바울의 유대적 이름이고 바울은 사울의 로마식 이름이다. 바울은 유대 본토 출신이 아니고 디아스포라로 불리는 유대 이민자 가정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로마 이름인 바울과 유대 이름인 사울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의 핍박자로 있을 때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있을 때도(행 11:25-26),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되었을 때도(행 11:30, 12:25), 그리고 제 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도 사울이라고 불렸다(행 13:1-3,7,9). 그러다가 로마 제국 내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가면서 로마 이름인 바울을 사용하였다(행 13:13,16).
은성: 그렇군요. 그런데 아버지,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서 흰 돌을 주고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실래요?
아버지: 당시 죄인들은 무사가 되어 맹수들과 싸워야 했는데 잘 싸워서 이기게 되면 높은 사람이 흰 돌을 집어 던져서 이긴 자에게 자유를 주었다. 자유인이 된 무사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다. 우리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만나를 먹게 될 것이고, 구원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로운 이름, 하나님의 자녀, 하늘 시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존귀한 새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은 개인적이어서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덧붙인 것을 볼 수 있다.
은성: 잘 알겠어요.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버지: 그게 무엇이니?
은성: 교회에 대한 새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친구가 하는 말이 교회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기에 그게 성경적으로 맞는 말인지 대단히 의아했어요.
아버지: 참 좋은 주제로구나. 구약의 교회란 말도 있지만 구약에서는 손으로 잡을 수 있고 접촉이 가능한 물질적 사실로써 보여주시던 여러 가지 현상을 신약 교회에서는 좀 더 심오하고 좀 더 본질적이며 신령한 내용으로써 보여주셨다. 그렇지만 그 신령한 내용을 얼른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 표상을 써서 나타내었는데 개혁교회에서는 그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가르쳤다고 한다.
은성: 그 네 가지가 무엇무엇인가요?
아버지: 첫째는 ‘그리스도의 몸(bdy)’이라고 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5) 이 표상에 대해서 세 가지만 생각하고 지나가기로 하자.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를 떠난 교회는 그 생명이 끊어졌으므로 이미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이룬 교회가 바른 교회이다. 둘째는 그리스도가 머리이니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지시를 받아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교회 회원들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셋째는 각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은성: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모든 교회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뜻도 있지 않나요?
아버지: 그 뜻도 중요하지. 그래서 교회는 ‘공교회성’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들끼리는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고, 또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좋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즐겁게 배우는 것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두 번째는 무엇인가요?
아버지: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혹은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여기의 ‘너희’는 고린도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전이라는 말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안에 계신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나 교인들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은성: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같이 생활하는 교회가 많은 것 같아요. 고린도 교회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도 잘 기억해야 하겠어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성전은 그리스도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기초가 되며, 믿는 자들 모두는 거기에 쌓아 올려져 가는 하나의 벽돌이나 돌과 같은 존재로 가르치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은성: 그러면 예배당 건물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믿는 교인들을 가리킨 말씀이군요.
아버지: 그렇지.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 건물을 ‘교회’라고 하거나 ‘성전’이라고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오해할 수 있는 말이니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은성: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나요?
아버지: 맞다. 사실 그것을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말이 있고, 또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씀도 있다. 우선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과 함께 에베소 교회를 이루는 이방인들에게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의 ‘집’은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한 집안, 혹은 가족(권속)이라는 뜻이고, 특히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은성: 그렇다면 가장(家長)이 되시는 아버지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잘 받아야 하겠네요.
아버지: 그렇지. 그리고 만약 자기가 잘못하면 온 집안이 욕을 먹는 것을 기억하고, 자기가 잘하여서 온 집안이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든 가족의 바른 마음가짐이다.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한다.
은성: 알겠어요. 이제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래요?
아버지: 그것이 세 번째 표상이다. 1세기의 여러 도시에 있는 신전이나 오늘날 어떤 예술 작품을 보면 땅 위에다가 높은 좌대(座臺)를 만들고, 그 위에 높은 비석을 세우는데 그것을 ‘기둥’(column/ pillar)이라고 하고, 그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를 ‘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할 때는 진리가 높이 들려서 선포되고 비추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라는 분이 드러나고, 말씀이 선포되며, 빛을 비추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을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짧은 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쉽게 생각하면 교회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고 그것을 전하고 받는 것에서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예배 시간에 말씀을 전할 때 잡다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 말씀을 바르고 풍성하게 전하여 교인들이 그 말씀으로 회개도 하고 확신을 얻어 약속을 붙들기도 하고 헌신을 다짐하기도 하게 되어야 한다.
은성: 이해가 잘 되네요. 네 번째 표상은 무엇인가요?
아버지: 교회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혹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혹은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히 12:22)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6)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의미는 하나님의 거처요, 하나님이 세우시는 곳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는 곳이며, 큰 임금의 도성으로 여호와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곳이며, 지상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훨씬 확대된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예루살렘이라는 말뜻은 큰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되 현실 생활의 모든 면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은혜의 왕국의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성: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그토록 사모하고 노래하였나 봐요.
아버지: 그렇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기에 두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 “ …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왕상 11:36).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대하 6:6)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대상 23:25),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할 때에 ‘현재의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과 다르다고 가르치신 것(갈 4장)을 잘 소화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은성: 교회를 가르치는 표상들이 대단하네요. 이런 것들을 자주 생각하면 교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 틀림없겠어요.
아버지: 네가 처음에 교회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지. 이 네 가지 표상이 신약 교회의 이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교회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는 건물이나 성전을 주로 생각하기보다는 이러한 표상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어떤 교회를 이루어가고, 어떤 교인의 모습을 갖춰가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은성: 지금까지는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늘 정말 굉장한 것을 많이 배웠네요. 교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 모든 교회들이 이런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고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런 마음을 갖고 부족한 것을 고쳐가고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기로 하자.
은성: 잘 알겠어요. 오늘 많이 배워서 너무 고마워요.
아버지: 네가 집에서는 나의 아들이지만 교회에서는 동등한 성도이고, 교인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명심하며, 항상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 힘쓰기로 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더욱 자라가기를 기도하자.
은성: 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어요. 우리 아빠 최고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