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092825강론
아모 6,1ㄱㄴ.4-7; 1티모 6,11ㄱㄷ-16; 루카 16,19-31
예수께서는 지옥에 대한 가르치심을 하나의 특정 종류의 죄와 연관 짓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항간(巷間)에는 아직도 '지옥불의 고통'에 대한 설교를 하는 설교자들이 더러 있지만,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옥불의 고통에 대한 강론이 이전보다 매우 드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과거 젊은 시절에 그런 강론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끔 지역 가톨릭 신문에서 편집자에게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간추린 복음 easy Gospel'에 대해 불평하는 편지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지옥불과 연옥의 고통 등 무서운 내용의 강론이 왜 더 이상 없는 지, 교회에서는 여전히 지옥의 존재에 대해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 궁금해하는 편지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오늘의 복음 말씀 내용은 그 자체로 무서운 강론이 됩니다. 그 내용은 '지옥으로 가는 것'은 여전히 교회의 가르침의 일부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내용입니다.
즉 '지옥으로 가는 것'은 여전히 실제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런 가르치심은 무엇을 의미하게 되지요? 기본적으로 지옥에 대한 교회의 교리는 자유 의지 교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즉, 저는 자유롭기 때문에 주님을 제 삶에 맞이해 드리고 복음 말씀의 가르치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또한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은 하지만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제 삶에서 배제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진리를 거부할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지옥 교리가 의미하는 바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이든 다음 세상이든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제 삶을 살기로 선택한 방식이 복음에 대한 거부의 삶이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죽으면, 저는 하느님과 분리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의 불'은 어떨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불은 하느님의 심판의 상징이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불'이라는 단어는 이런 상징적인 방식으로 여러 번 사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지옥에서 영원히 사람을 태운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지옥에 대해 우리는 하느님과 분리된 상태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옥에 대한 교리는 그런 하느님과의 분리의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자신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분리는 곧 우리에게는 지옥의 고통이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경험될 수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어떤 사람도 실제로 지옥에 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살고 싶은 삶의 종류를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삶의 결과에 따라 우리가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끔찍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한 가르치심을 특정 종류의 죄와 연관 짓기로 선택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런 특정 종류의 죄라는 것은 성범죄나 폭력 범죄 같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죄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 즉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을 거부하는 죄인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주님께서는 단 한 가지 사건만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무관심하며 비자비로운 태도를 분명히 언급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심판의 성 마태복음 25장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오는데, 배고프고 목마르고 벌거벗고 낯선 사람들, 아픈 사람들, 죄수들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한 태도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됩니다.
오늘 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주 무시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으로 주목할 만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부요하게 잘 산다는 것을 선한 사람들, 즉 우리 자신에게 보답해 주시는 하느님의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보는 칼빈주의 신학과 텔레비전 설교자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회는 윤리적 태도, 법률 및 규정에 따라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혼외 자녀를 낳거나 아주 기본적인 수입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가혹한 판단을 내립니다.
우리는 보험이 없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신문 방송에서 읽고 듣습니다.
좋은 변호사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물론 빌라도처럼 책임의 손을 씻을 수도 있습니다.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 구성 요소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에게 달라붙는 그 무언가의 사회악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의 요인을 우리가 먼저 힘들게 노력하여 인식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으며, 우리가 그러한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의 요인에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반대한다는 것이 곧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어야 합니다. 불의는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불의는 조직적이고 냉담하며 비인간적입니다. 이러한 불의는 종종 사회에 구조화된 조직적인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불의에 대응하는 데 조직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 말씀의 경고 메시지를 듣고 그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첫댓글 존경하올 정신부님.
살아계신 성령 충만한 신부님,보내주시는 소식과 강론 꼭 읽고 많은 감동받고 있어요. 축하 감사드립니다.
추석명절 잘보내시고
늘 건강하세요 ^^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선선한 가을
햇빛과 바람이 참좋아요
감사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가을꽃이 함박 피었네요 . .감사합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
감사 합니다
찬미예수님!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전혀 알지못할
지옥 그냥 무서운 벌의
장소라고는 알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니
지옥에 어떨지는 상상도
못하겠읍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이세상도 힘든데 주님과
완전히 멀어진 지옥....
신부님 말씀 곰곰히 묵상
하는 주일 보낼께요.
신부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