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화제도와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가지고 있던 나라는 어디일까?
동예
동예는 동해안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대에 위치한 부족국가로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윤택한 나라였다. 이들은 고구려와 풍속과 언어가 같았고, 제천행사인 무천 또한 고구려의 동맹과 비슷했다. 하지만 대군장이 없었고, 책화 제도로 인해 각 부족 간의 영역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였기에 통일된 나라를 이루지는 못했다.
동예의 규모
예, 흔히 동예라는 이들은 오늘날의 강원도 지역에 자리 잡은 나라였다. 호수가 2만, 약 10만 이상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들은, 북쪽은 고구려와 옥저와 이웃해 있고, 동쪽은 동해, 남쪽은 진한 즉 신라와 맞닿아 있다. 이들은 성질이 조심스럽고 진실하며 욕심이 적고 염치가 있어, 남에게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자존심 강한 이들이었다.
《삼국지》에는 그 나라 노인들이 예로부터 스스로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와 비슷한 풍습을 가진 이들은 언어와 예절도 고구려와 같았지만, 의복은 다소 달랐다.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었는데, 이를 무천이라고 했다. 고구려의 동맹과 그 시기도 똑같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행동도 똑 같았다.
동예의 풍습
동예는 동해안에서 잡은 반어피(바다표범의 가죽 ?)와, 산에서 잡은 무늬 있는 표범 가죽, 몸집은 작지만 튼튼하고 순해서 다루기 쉬운 과하마, 크기는 작지만 탄력이 좋아서 멀리까지 화살을 쏘아 보낼 수 있는 단궁이라는 활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는 나라였다. 땅도 비교적 기름진 동예는 삼베가 생산되고, 누에를 쳐서 비단 옷도 만들어 입었다. 남자들은 은으로 된 꽃으로 옷에 꿰매어 장식하고, 구슬과 옥은 보물로 여기지 않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발전된 나라였다.
동예에서만 보이는 특징은 이들이 산천을 중요시하여 산과 개천마다 각기 구분이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으며, 같은 성 끼리 결혼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꺼리는 것이 많아서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 옛 집을 버리고 곧 새 집을 지을 정도였다.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동예
동예 사람들은 책화라 불리는 풍습으로 인해 부족 사이에 전쟁을 예방하기는 했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각기 부족단위로 흩어져서 후, 읍군, 삼로 등과 같은 부족장들이 일반 백성인 하호들을 다스렸다.
이들은 산악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창을 활용한 보병 전투에 능했다. 그렇지만 10만이나 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낙랑, 고구려 등에게 시달려야 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을 거느린 고구려군과 싸우기에는 아무래도 보병만으로는 힘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대군장이 없다보니 전쟁에서 국력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중심으로 작은 부족으로 살았던 이들은 결국 더 크고 강력한 고구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책화라는 풍습은 분명 동예 사람들이 작은 분쟁을 없애주는 역할을 했지만, 주위의 강국과 만나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동예의 발전을 장애하는 원인이 되었다. 부족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 동예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tip 동예의 기록
부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벌로 사람과 소와 말을 부과하는데, 이를 책화라고 한다. 길이가 3장이나 되는 창을 만들어 때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잡고서 사용하기도 하며, 보병전투에 능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