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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자이기에 끝까지 변함없이 계명을 지키며 산다-여디디야와 예수님과 우리
아버지: 은성아, 무엇을 보고 있니?
은성: 아, 솔로몬 임금의 이름의 뜻을 살펴보고 있어요.
아버지: 그래? 무슨 뜻인지 답이 나왔니?
은성: 솔로몬은 ‘평화’라는 뜻이래요. 다윗 왕은 솔로몬이 자기 왕위를 이어받을 것을 예견하면서 솔로몬을 평화의 사람으로 호칭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대요(대상 22: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아버지 다윗 왕은 전쟁을 계속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솔로몬은 안정된 환경에서 이스라엘 왕국의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대요. 그는 지혜의 왕이라고 불리며 시편의 일부와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했대요.
아버지: 네가 이름만 아니라 솔로몬 왕에 대해서까지 살펴보았구나.
은성: 그런데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아니어요.
아버지: 뭐라고? 그럼 무슨 이름인데?
은성: 성경을 보니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삼하 12:24-25)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것처럼 낯설었어요. 그리고 그 이름에 대하여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는 설명이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아버지: 그러니까 여디디야는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란 뜻이구나.
은성: 맞아요.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특별하게 사랑하셨다는 것이 여디디야라는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 참으로 좋은 발견을 했구나.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의 삶이 바뀔 것이다.
은성: 그런데 아버지, 솔로몬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에 저는 너무나 슬펐어요.
아버지: 무슨 말이니?
은성: 열왕기상 3장 3절에서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라고 말했지요. 솔로몬도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윗 왕의 법도를 행하였어요. 그런데 열왕기상 11장에 가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1-11) 자기가 썼던 잠언을 보면 이러한 삶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데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버지: 그렇구나. 가장 지혜롭다던 솔로몬이 그렇게 어리석은 마지막을 맞을 수 있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구나. 그리고 우리도 항상 정신을 차리고,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겠다.
은성: 그리고 저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아버지: 왜 솔로몬에 대해 생각하다가 예수님을 생각했니?
은성: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를 기억하시지요?
아버지: 그렇고말고.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를 이렇게 설명하지 않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은성: 맞아요. 저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부르신 것이 의미 있게 보였어요.
아버지: 그렇구나.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중에 다시 나온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5).
은성: 그렇군요. 누가복음 9장 30-31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지요.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아버지: 맞다. 세례받으실 때와 죽으실 것을 앞둔 때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은성: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 14:31)
아버지: 그 말씀들이 굉장하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은성: 맞아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것을 잘 보여주셨어요.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아버지: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이었는지 우리는 결코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셨지.
은성: 그래서 예수님도 필사적인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막혀서 잠시 숨을 멈추고 기도를 드렸어요.
아버지: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신 것이다(요 19:30). 예수님의 온전한 순종이 있어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역사가 완전히 성취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이것을 생각하다 보니 내가 인터넷에서 읽은 글을 같이 읽고 싶구나.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에 ‘헤론’이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헤론은 미국 테네시 주의 ‘테네시 의과 대학’이 생긴 이래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수재였습니다. 그 대학의 교수회가 수련을 마친 후 ‘교수로 남아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한국의 선교사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보다 두 달 늦은 1885년 6월에 내한하여 ‘알렌’ 선교사의 ‘제중원’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알렌이 선교사직을 물러난 후에 그는 제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밤낮없이 헌신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5년 뒤인 1890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의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지만, 그는 폭염 속에서도 서울까지의 먼 거리를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자신도 이질에 걸려 3주간 앓다가 1890년 7월 16일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 두고 순직함으로써 그의 짧은 인생을 선교지 한국에서 마쳤습니다. 그의 시신은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에 최초로 묻혔습니다.
헤론 선교사는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순교해야 했습니까? 전염병이 창궐하던 때에 다른 선교사들처럼 요양지로 피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만일 요양지로 피신했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론 선교사가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며 봉사와 섬김을 계속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에 주님의 손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원리입니다.
은성: 대단한 선교사이네요. 제가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가서 깜짝 놀란 것이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복음도 전하고 병도 고치고, 교육도 했다는 사실이었고, 그들 중에 상당수의 선교사나 선교사 가족들이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에서 죽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우리는 그분들의 수고를 잊지 않아야 하고 늘 감사해야 마땅하고, 이제는 우리도 힘을 다하여 선교에 힘써야 마땅하다.
은성: 아버지,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져 버렸는데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버지: 무엇인데?
은성: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자녀로 삼아주셨다고 하셨어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1-3)
아버지: 그런 말씀이 성경 여러 곳에 나오지. 한 곳만 보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창세 전에 사랑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니?
은성: 그렇군요. 저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버지: 네가 여디디야인 솔로몬이 사랑을 받은 자였지만 말년에 하나님 대신 여인들을 사랑하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심판을 받은 것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인데 항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었으니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은성: 맞아요. 저도 그것을 며칠간 생각했는데 오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욱 확실해진 것들이 있어요.
아버지: 그것이 무엇인데?
은성: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아버지: 그런 말씀도 성경 곳곳에 나오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셨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3-24)
은성: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같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요?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다른 형제들, 즉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기 마련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1-12)
은성: 굉장한 가르침이네요.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자기와 한 형제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딤전 3:15), 교인들을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부른 것이다(엡 2:19). 말하자면 한 가족이란 말이다.
은성: 알겠어요. 그런데 아버지, 솔로몬이 처음엔 하나님을 잘 사랑하였고, ‘여디디야’라는 좋은 이름도 받았지만, 나중에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다가 심판을 받은 것을 생각할 때, 우리도 하나님이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끝까지 잘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는 말씀은 너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 믿을 때의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하며 오히려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죄악(요삼 9)이 남아있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도 비교하거나 경쟁하면서 헛된 영광을 구하거나 투기하는 가운데(갈 5:26) 분쟁과 분열이 있을 수 있으니(고전 1:11-12)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항상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더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네요. 저도 은근히 비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거든요. 앞으로는 오늘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사랑받는 아들’이란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할께요.
아버지: 우리가 소원을 할지라도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잊어버리면 또 속아 넘어가고 말 것이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가야 할 것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오늘도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