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박후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뭉개진 귀를 보면,
굳은 살 하나 박히지 않은
말간 내 두 손바닥이 부끄러워진다
높은 곳을 향해 뻗어가는 벽 위의 덩굴손처럼
내 손은 지상의 흙 한 번 제대로 움켜쥔 일이 없이
스쳐 지나가는 헛된 바람만 부여잡았으니,
꼬리 잘린 한 마리 도마뱀처럼
바닥을 짚고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비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고단한 청춘의 매트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에 깔려 뭉개져버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뒤 귀를 보면,
멀쩡한 두 귀를 달고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형감각 없이 흔들리는
내 어리석은 마음이 측은하고
내 것 아닌 절망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잘 생긴 내 두 귀가 서글퍼진다
세월은 모질게 태클을 걸어오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몸은 둥근 통나무 같아
쓰러지고 구르는 것이 그의 이력이지만,
지구를 끌어안듯
그는 온몸 바닥에 밀착시키며
두 팔 벌려 몸의 중심을 잡는다
들린 몸의 검은 눈동자는
수준기 유리관 속
알코올과 섞인 둥근 기포처럼
수평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두 귀는
세월의 문짝에 매달려 거친 바람 소리를 듣는,
닫힌 내일의 문을 두두리는 마음의 문고리다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실천문학사 시집 중
(이 시를 반복해서 읽었다.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매트에 짓눌려 뭉개진 슬픈 귀를 달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문을 두두려야 프로가 될 수 있을까? 화자는 제목에서 다 말해준다. 그러면서 희망을 얘기해 준다. 모질게 태클을 걸어오는 세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두 팔 벌려 몸의 중심을 잡는 자세가 필요하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다.)
첫댓글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경기하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권투 경기를 보면서 마음 아파 한적이 많았는데~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강도 높은 훈력과 자기 극복등....
레슬링 선수에게는 뭉게진 귀가 훈장이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뭉게진 귀가 말해주는 의미는 우리 인생과 똑같지않은가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귀가 뭉게졌다 할지라도 평형감각은 살아있는것처럼 우리도 흔들림없이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삶의 애환을 쓰는 게 시인의 몫이라 했을 때, 그 순간이나, 이렇게 훈장처럼 일그러진 삶의 어떤 면을 발견하는 것도 시인의 몫이 되겠지요. 참 아름답고도 처참한 레슬링 선수의 귀! 어쩌면 인생은 저런 모습들 때문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비참을 넘어서는 어떤 과정으로서의 삶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