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신영복)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초겨울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감입니다. 석과碩果는 '씨 과일'이란 뜻입니다.
가지 끝에 마지막 남은 감은 씨로 받아서 심는 것입니다.
『주역』은 삶의 경험이 온축된 경험지經驗知라고 했습니다.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잎사귀는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 입니다. 엽락이란 바로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논어』의 불혹不惑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는 논어의 사십불혹을 나이 마흔이 되면 의혹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올바른 독법이 못 됩니다. 나이 마흔에 모든 의혹이 다 없어질 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경우의 혹惑은 의혹疑惑이 아니라 미혹迷惑이고 환상幻想입니다. 가망 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한 개인의 삶도 그렇거든 한 사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어려움에 직면할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이것이 석과불식의 첫 번째 교훈 엽락입니다.
다음이 체로體露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나목裸木입니다.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뼈대가 훤히 드러납니다. 『운문록』의 체로금풍體露金風입니다. 칼바람에 뼈대가 드러납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뼈대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정치적 자주성입니다. 둘째 경제적 자립성입니다. 셋째 문화적 자부심입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뼈대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분糞은 '거름' 입니다. 분본이란 뿌리本를 거름糞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엽락과 체로에 이어 우리의 할 몫이 분본입니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입니다.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거름하거나 키워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구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쌀도 구입하고 사람도 구입합니다. 거름하고 키우고 기다리는 문화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람을 거름하기는커녕 도리어 '사람으로' 거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석과불식은 한 알의 작은 씨 과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씨 과실은 새봄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형생활 중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이야기에 자기에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 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여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 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 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 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 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 를 줄이면 '자유自由' 가 되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별을 바라보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강의가 끝나면 나목이 된 느티나무 밑으로 가서 가지 끝에 별을 달아 보기 바랍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을 골라서 가장 아름다운 가지 끝에 달아 보기 바랍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처음에는 별리別離의 아픔을 달래는 글귀로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강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읽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한 학기 동안 수 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