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내 언어를 생각해본다.
나는 언제 말을 배웠는가?
멋쩍은 스스로의 질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누군가로부터
말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지금 말하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이
언어사용을 하며 살고 있다.
미국의 목사님들이나 교수들은
목소리 보험이 있다.
1981년 유학가서 들은 이야기다.
존경하는 선배목사님이 계셨는데
이미 목소리 보험을 들고 설교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가 그만큼 중요하기에
보험상품이 나왔던 것이다.
나도 말과 목소리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직을 가지고 살아왔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강단에서
설교를 해왔다. 적어도 각각 30년
이상을 중단없이 사용해 왔다.
물론 말투나 목소리의 탁함이
있지만 인간의 그것들은 단지
외적으로 나타나는 소리자체나
언어구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철학적, 미학적, 예술적
그리고 신앙적의미를 포함한
진실여부라 하겠다. 말잘하는 것이
말이 아니다. 그리고 맑고 투명한 소리라고
좋은 목소리가 아니다. 언어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야
신뢰감과 존경심을 갖는다.
요즈음 언어공부를 하고 있다.
나의 언어수준부터 따지고 나의
언어의 근본과도 같은 마음표현을
더듬어 본다. 내 어린 시절 나에게
언어를 가르쳐 주신 분은 분명
부모님이다. 그리고 나의 형님과
누님이다. 그 때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분명 나의 말배우기는 그렇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말을 배우고 나의 언어의 현주소
그리고 나는 정말 말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려 나를
두드려 본다. 미숙함이 보이고
여전히 조리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렇지만 나는 말
공부가 재미있다.
좋은 수필을 읽고 있다. 동시에
언어평가에 대한 전문가의 책을 보고 있다.
나이들수록 언어의 단정함과
소리의 진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마음을 가져본다. 아무래도 말은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수십년간을 제대로 정련된 언어를
구사했는가? 반성을 하면 할수록
부끄러움이 앞선다.
좀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듣기 보다 먼저 말을 쏟아내며
자랑이라도 하듯이 주절대던 나의 입.
그것이 창피스러운 일인줄도 모르고
그저 지껄임으로 나의 나의 존재감을
알리려했던 그 미숙함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이젠 말을 잘해야지. 따뜻하게 해야지.
평화하고 축복하고 충분한 이해속에
되어지는 언어로 살고싶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이웃들에게!
말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으니
기대한다. 어른이 되어 말을 다시
배운다니! 내 스스로의 독학?이지만
관심백배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한
기대다. 그래서인지 관심이 쏠리고
lnteresting 하다. 이렇게 하면
설교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호기심과
내면의 즐거움이 자리를 잡는다.
앞으로 말을 더 잘하는 한 인간으로
살기 원한다.
카페 게시글
담임목사 글
다시 말(言) 배우기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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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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