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을 담그기
양지선
3년 전부터 청국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콩 1대를 사다가 불리고 익혀 볏짚을 넣고 청국장을 담갔다. 처음 담그는 것이라 다소 설렘과 두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싶어 청국장이 띄워지는 수일동안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3-4일 후에 이불을 걷어내고 국자로 콩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실(바실러스서브틸리스)이 생겨있나 확인했다. 정말 콩에는 실이 생겨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
콩을 다라이에 담고 소금을 넣어 마늘 빻는 몽둥이로 찌었다. 콩을 찌을 때마다 콩의 실이 찐득찐득 생기며 청국장 띄우기의 성공을 또 느끼게 하여 즐거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식사는 당연히 청국장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청국장을 자랑하고 싶었다. 청국장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청국장을 사서 먹으면 진짜 청국장이 아닌 것 같아서 한번 사먹어보고는 한번도 청국장을 구매해 본 적이 없다. 입에 맞지 않으며 내 기억속의 청국장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에 청국장을 끓였다. 나는 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청국장의 맛이 친정엄마가 어릴 때 끓여 주었던 청국장 맛과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엄마는 종종 청국장을 만드셨다. 따뜻한 아랫목에다 며칠동안 콩을 담은 그릇에 볏집을 넣고 담요를 단단히 덮어 두었다. 나는 어린시절이라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고 보았는데 엄마가 끓여주시는 청국장은 정말로 맛이 있었다. 그날 저녁 온방에 청국장 냄새와 참기름의 냄새가 나의 뇌리에 박혀버린 것이다.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그런데 내가 띄운 청국장이 엄마가 해주시던 청국장 맛과 같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남편에게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맛있지? 맛있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가 그리워지는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엄마에게 불효만을 했던 자식이라 살아 생전에 잘하지 못한 것이 못내 한으로 남아 있던 내 마음이 다시 불현 듯 올라오며 친정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기전 요양병원에 누워계실 때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계속 거친 숨만 몰아쉬며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다. 잠시잠깐 엄마의 손을 잡아드리고 기도하는 것외에 무엇을 했던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전에 단 몇 달이라도 내가 모시기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슬픔이 몰려오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청국장을 담그면서 이토록 친정엄마가 그리워질 줄을 생각도 못했다.
나는 청국장이 집집마다 다른 맛을 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주신 청국장의 맛과 친정엄마의 청국장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친정엄마의 청국장 맛은 도시적이고 꼬리꼬리한 맛이 덜하고 시어머니가 주신 청국장 맛은 옛날식이고 더 꼬리꼬리한 맛이다. 사실 시어머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마트에서 구매한 청국장의 맛과 비슷해서 남편에게 끓여주면서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가 주신 것이라 맛있다고 해가면서 두 그릇이나 먹었겠지만 나는 사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솜씨를 의심한 것은 아니지만 단지 집집마다 청국장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부터 시어머니에게 청국장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고 내가 대신 담그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담은 첫 청국장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나는 청국장을 친정언니들과 교회 사모님에게 끓여드시라고 선물로 주었다.
그 다음해에 나는 또 청국장을 담그기로 하였다. 햇콩을 사다가 정성스럽게 담았다. 전기담요로 감싸고 열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담요로 칭칭 동여 매듯 감싸놓았다. 그런데 전기담요가 하루종일 열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열을 냈다가 꺼지고 열을 냈다가 꺼지고 하는 것이다.
3-4일이 지난 후에 콩을 주걱으로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콩에는 실이 생겨 있지 않았다. 이번 청국장은 온도가 맞지 않아 실패로 끝나버린 것이다.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햇콩이 나올때를 기다리고 기다려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콩을 삶고 익혔던가 그런데 마지막에 온도조절 실패로 청국장이 되지 못해버린 것이다.
나는 콩을 버리기로 하였다. 아까워서 버릴수가 없는 마음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실패한 것을.
올해도 나는 청국장을 담그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국장 없이는 살 수 없고 사먹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니 실패하더라도 다시 담그기로 한 것이다.
나는 몇 번을 곡물 가게에 가서 햇콩이 나왔는가를 확인하고 햇콩이 나오자마자 2대를 사와서 씻어 물에 담가놓았다. 담가놓고보니 양이 상당하다.
두 솥에 나누어 콩을 삶았다. 콩을 손으로 비볐을 때 쉽게 비벼지면 다 익은 것이다. 사실 콩을 삶은 내내 두려움에 찼다. 저리 많은 콩을 청국장을 담그는데 또 지난번처럼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이번에는 온도에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보일러를 단단히 켜놓고 이불을 잘 덮어놓아 온도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오늘이 3일째 되는 날이다. 나는 두근두근하는 가슴으로 이불을 걷어놓고 콩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왠일인가 콩에 실이 생겨 있는 것이다. 실패할까봐 두려웠던 마음이 내려놔져버렸다. 이번엔 성공한 것이다.
양이 많은데도 따뜻했던 방 온도 때문인지 청국장의 꾹꾹한 냄새가 올라오면서 청국장이 잘 띄워진 것이다.
저녁에 잘 띄워진 청국장을 마늘망치로 찧어 냉동실에 저장했다.
청국장을 담그면서 친정엄마가 생각났는데 청국장을 먹을 때마다 친정엄마 생각에 목이 메일 것 같다. 살아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효도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물이 난다.
청국장은 친정엄마인 것 같다. 친정엄마의 냄새, 목소리, 말씀들이 생생히 살아오는 것 같아 청국장을 비닐팩에 저장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어린시절 식구들과 모여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즐겁고 화목했던 그날 저녁이 되살아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