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차이점- 에드 시런의 음악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차이점은 뭘까?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물질세계이고, 정신세계는 문자로만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물질세계를 통해서 정신세계를 말하는, 예컨대 물질세계를 빌어서 정신세계를 말한다. 왜 보이지도 않는 정신세계를 말해야 하는 걸까? 나아가 어떻게 물질로 정신세계를 말할까가 질문이다.
4차 산업, 플랫폼을 개발하고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등도 모두 정신세계를 물질로 환원하여 드러낸 것이다. 바로 말하면 인간이 새로운 소통도구를 찾고자 한 결과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언어로 전하고, 언어가 문자로, 문자가 책으로, 그리고 전화, TV, 인터넷의 개발로 이어졌고, 이제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우주로도 진출한다. 처음에는 소통을 하기 위하여 언어가 필요했을 것이고, 점점 나아가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즉 인간이 뭔가 욕구을 했고 그것을 물질로 구현한 것이 현재의 결과이다. 예컨대 인간의 욕구가 정신세계이다. 그 욕구가 어디로 갈 것인가가 미래의 우리 모습일 것이다.
정신세계는 이렇게 물질로 환원되고 물질을 통해서 우리는 정신세계를 본다. 여기에서 방향이 정해진다. 첫째, 물질을 보는 것, 물질을 보면서 물질에 대하여 이해를 하는 것이다. 물론 물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둘째, 물질을 보면서 정신세계를 보는 것, 어떤 욕구가 이 물질을 개발했을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까, 인간의 정신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걸까, 등등 인간의 정신이 나아갈 방향을 보는 것이다. 그 수준이 나의 정신세계의 수준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말하면, 어떻게 하면 물질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을 볼 수 있을까가 질문이다. 여담으로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영국의 유명가수 '에드 시런'의 곡을 듣게 되었다. 그의 히트곡, 'perfect', 'shape of you', thinking out loud' 등 여러 곡을 들었는데 모두 같은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은 분명 다른 가수와는 달랐다. 곡을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리고 가슴에 곡의 느낌이 그대로 들어온다. 예컨대 'supermarket flower'를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난다는 것은 노래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노래는 감정을 전달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애드 시런은 그런 감정을 전달할 수가 있을까? 궁금해서 다른 유명 가수들의 노래도 들어 보았다. 하지만 노래는 잘하지만, 노래의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랩을 잘한다던지 등으로 노래를 잘하는 것이다. 궁금했지만 화두로 잡고 생각을 해 나갔다.
두 번째, 집과 가까운 길을 가는데 문득 새로 문을 연 옷가게로 발길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간판도 달지 않은 임시로 잠시 문을 연 가게인 듯한데, 나이가 좀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에게 플랫폼을 활용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플랫폼을 활용하는 옷가게, 반찬가게 등을 알려주니, 아저씨가 지금 한창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저씨가 반찬가게를 할까, 옷가게를 계속 할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는데, 필자 자신도 모르게 그 가게로 들어간 듯하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허황한 이야기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결론은 같다. 필자가 그 앞을 지나다가 그 아저씨의 정신세계로 잠시 들어 간 것이 아닐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에드 시런의 음악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고, 필자가 그 아저씨의 가게로 들어간 것은 뭔가 정신세계,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슈타이너 책을 읽는데, 다음의 글이 눈에 확 들어 왔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세상에서 자신을 이끌어 내어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적인 힘을 불러 일으키는 모든 것의 시초입니다(특수 교육학 강의, 2008, 293)." 필자가 옷가게를 지나갈 때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의 가게로 들어간 것, 에드시런이 노래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구나가 떠오르면서 순간 깨달음이 왔다. 이어서 슈타이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눈물처럼 솟는다. 필자가 궁금해하는 것들의 답을 슈타이너가 참으로 명쾌하게 답을 주기 때문이다. 슈타이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었을까.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 전에도 이 글을 여러 번 읽었지만, 필자가 경험하기 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다.
필자의 결론은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보이지 않지만- 있으며, 그 문으로 들어가야 내적인 힘을 인간이 사용한다. 물론 내적인 힘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것을 문자로 또는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내적인 힘을 사용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에드 시런은 정신세계의 공간으로 들어갔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들어갈수가 있을까가 질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있다. 반드시 내가 열어야 한다는 것만이 진리이다. 첫째,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감정이다. 감정만이 자아에게 연결되기 때문인데, 인간 존재는 궁극적으로 모든 대상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살리는 감정, 보잘것 없는 외경심이 연결되어야 정신세계로 들어간다. 보잘 것 없는 외경심이란 민들레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사랑하고 나와 같은 귀한 존재로 여기는 감정이다. 길가에 난 풀 하나, 벌레 하나에도 그와 같은 감정이 정신세계를 여는 감정인 것이다.
두 번째, 이런 감정을 가지되 간절하게 원해야 한다. 에드 시런도 어릴 때 붉은 머리를 가지고 커다란 안경을 써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왕따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에드 시런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에드 시런의 아버지가 유명한 가수들의 콘서트에 데리고 다녔다고 하였다. 만약 이 때 복수를 하는 감정 등을 가졌다면 정신세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에드 시런은 힘이 들때 간절하게 음악에 몰입했고, 그것이 정신세계의 문을 연 것이다.
세 번째, 정신세계는 한 번 들어갔다고 해서 계속해서 들어가거나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와 같은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물질세계에서 보면 그와 같은 간절한 감정을 계속 지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천재들의 삶, 창조하는 예술가들의 삶이 그와 같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겉으로 보면 고통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역으로 보면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네 번째, 결국은 어떤 노력이던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은 모두 자신의 내부를 개발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정신을 개발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서 개발시키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내부를 개발해야 정신세계의 힘을 발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방향도, 지금 서 있는 바닥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자신의 내부를 개발시키는 일이라는 사실도 모르지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개발해야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만은 진리이다. 정신의 수준이 곧 나의 능력이고, 그것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정신세계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론은 항상 나의 내부를 집중해서 관찰하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마음이 힘들면 위로하고 다독여주고, 또 용기도 주어 나의 자아가 정신세계의 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
에드 시런이 자신의 자아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신세계에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음악이 어려움에 처한 그를 구했고, 달리 말하면 그는 음악을 통해서 정신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치유의 힘도 느낀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음악으로 치유되었고, 결과 그는 영혼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정신의 속성이 반드시 체험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있을 경우에 가만히 그의 음악을 들으면, 영혼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신세계-움악에 입문하면 치유가 되는 이유는, 인간이 원래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진동이 인간에게 미쳐서 인간도 그에 마추어 진동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 음악이 우주 음악에 가까울 수록 치유의 효과도 커진다. 더불어 우주 음악에 가까울수록 명곡이 된다고도 할 수가 있다. 인간이 우주의 진동에 가까울 수록 몸이 건강하고 차츰 멀어지면 병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이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 하지만 그 속성은 서로 많이 다르다. 정신세계가 원형이고 물질세계는 정신세계의 모사이다. 누구라도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고 들어가면 창조도 가능하다. 슈타이너는 정신세계에 들어간 사람만이 물질세계에서 창조를 한다고 말하기는 한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잘 할려고 마음먹는다면, 자신의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 그 답이 될 수가 있다. 더불어 자신의 수준을 파악해서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언제나 정신세계로 들어간다. 여담으로 에드 시런이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나쁘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창조는 하지 못했다. 또 어려움이 없었다면 정신세계의 문도 열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어려움은 나의 정신을 성장시키는 도구이고, 그것을 활용해서 정신세계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 어려움이 정신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도록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드 시런의 경우처럼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정신을 개발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간절하게 원하면 반드시 개발이 되므로 믿고 선택한 길을 가야 한다. 조건은 반드시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나의 정신세계를 돌아보고 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려움이 있다면 정신세계를 통해서 해결하도록 한다면, 나의 정신이 성장, 발달하므로 어려움이 온전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