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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장주향
섬진강을 따라 악양 즈음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그만 “저기가 악양이예요!” 하고 외치고 말았습니다. 내 몸이 그 땅을 알아보는 일에 사뭇 나 자신도 놀랐습니다. 밤길에 가뭇한 강줄기만이 보이는 길이었고 그 땅을 떠나 다시 와보지 못한지가 10년이 넘었었기에 내 몸이 그 땅을 알아보는 일이 내게는 너무 신선하고도 뜻밖이었습니다.
언제나 특별한 여행에서는 그런 느낌들이 있습니다. “아, 아직 내게 무언가가 남아서 꿈틀거리고 있구나” . 이번 독서캠프를 위해 전남 쪽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여행의 초입부터 나를 태운 차가 지리산 쪽으로 향하는 지명들을 보여줄 때 그 어두움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와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독기들과 매듭들이 풀려져 나가고 아웅바웅 살아야했던 고단함도 풀리고 산골 인심이 가득 담긴 밥들을 먹으니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 같았어요. 착한 사람들이 모여 맑은 계곡과 바람과 하늘에 마음을 씻는 것이 독서 캠프라고 하셨다나요
모처럼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의 언어들을 들었습니다. 목사님들에게서 너무나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설교가 아닌 그들이 살아낸 삶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문학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움과 자연을 통한 깨달음과 묵상들, 그러한 것들을 들었습니다
대나무로 된 자그마한 교회 마루 바닥은 그런 강의를 듣는 시설로는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정겨웠어요, 바깥 계곡에서 아이들이 자기들 끼리 모여 하루종일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소리들과 소나 닭을 보다가 짖궂은 아이들이 닭몰이를 하며 혼나는 풍경, 시골 할머니들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풍경 외에는 다른 풍경들이 들어오지 않는, 느리고 평화로운 공기, 그래서 슬몃슬몃 잠이 오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풀어보는 빗장인지요, 마음이 빗장을 풀고 한참을 쉬었답니다.
아이들은 3일간인데도 빵을 먹지 못하고 우유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니 그 좋던 계곡도 싫고 아래로 내려가자 합니다. 하지만 나는 솔잎차와 죽순차를 자꾸 다려내시고 잡은 닭으로 식구들과 손님들을 먹이시는 그곳이 좋더라구요
하지만 물론 그곳에 모두 모인 사람들 때문이었겠죠, 시와 문학과 음악과 그리고 자유롭고 따스하게 자신들의 가슴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둘러앉아 같이 먹고 같이 지내는 일이 너무나 좋았던 거죠
젊은 시절 그래서 술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문학 하는 분들과 어울려 산으로 강으로 다니며 술을 마셨었나 봅니다. 그 독한 술보다는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나누는 그 나눔이 좋아서 어울려 다녔던 나의 젊은 날의 초상입니다. 독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그것을 풀어내면 그런 한이 풀려나오며 사람들을 견디게 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나의 진정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사랑의 구멍, 내 안에 사랑에 굶주린, 구멍난 항아리 같은 내가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나의 청춘과 젊은 시절을 바람처럼 방황하게 했고 사랑을 찾아, 진리를 찾아 헤매게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복종하며 헌신할 대상, 내 삶을 온전히 밀착시켜 사랑할 대상, 나의 영혼을 만족시킬 그 무엇에 대한 갈급함으로 섬진강을 헤매 다니고 지리산을 헤매 다녔고, 사람의 숲과 산을 헤매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영혼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섬진강이 바다를 만나는 광양 땅 작은 아파트 자취방에서 나는 그분을 만났습니다. 내 노력으로 만들려던 인생에서 실패한 쓰라림 가운데 나 자신을 학대하며 밀폐된 곳에서 울고 있던 내게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시며, 생전 들어보지 못한 영혼의 울림으로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 영혼이 나의 영혼이 아닌 그분의 영혼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분이 내 영혼 안에 꽉 차게 된 것입니다.
그 시로부터 나는 나았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랑에 구걸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서 그 사랑을 채우지 못하면 그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매달리던 나약한 여자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강인한 여인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살며 달려온 10년의 세월이 내가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을 주었습니다. 나보다 불행하고 쓰라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그 분의 사랑을 나눠주는 선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에겐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나 스스로 풀지 못하는 내 인생의 가시가 있습니다. 옹이 박힌 매듭이 있습니다. 시낭송회 시간 나의 매듭지고 굳어지고 상처 난 마음에 대해 시를 쓰고 그걸 읽었습니다. 나를 잘 아시는 송미숙 선생님은 내 시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것과 더불어 10년을 싸워왔어도 여전히 어떤 부분이 건드려지면 미친듯이 상처난 짐승처럼 몸부림을 칩니다.
하나님을 믿고 몸부림 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떠나라, 는 화두를 마음에 두고 삽니다. 그렇지만 그게 잘 되지가 않습니다.
이제까지 내게 문학은 무엇이었는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게 난 창과도 같았습니다. 대나무로 된 집에 창이 나있었듯이 그리고 그 창밖의 세상은 내 내부의 어두움과는 다른 세상이듯이, 나는 내가 갇혀 피 흘리고 있는 이 덫과 같은 삶에서 잠시 벗어난 그 맑고 푸른 하늘을 문학을 통해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하늘에도 흐린 하늘이 있고 싸우는 번개치는 하늘도 있습니다. 큰 소리가 나는 하늘이 있겠지요, 하지만 문학이라는 창으로 비칠 때 그것은 왠지 내 마음을 비춰주는 시원함이 됩니다. 문학이 주는 겸허함, 자유로움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이 아무에게도 어떤 말도 하기가 두려운 요즈음 시대 더욱 간절해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6년간 외국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 얻은 것은 많아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습니다. 잃은 것은 뭐냐하면 바로 친구입니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인걸이 간데 없다 고 노래한 옛 시인의 말과 달리, 제가 겪는 충격은 산천도 변하고 인걸도 간데 없다, 는 느낌에서 오는 충격입니다.
나는 내가 사람이나 자연이나 일 같은 것에 굉장히 의존적이고 밀접하고 꽉 끼어있어야 하는 사람인 줄을 너무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나의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자유분방한 성격이 어린 시절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돌아와 제가 겪는 가장 큰 장애는 바로 대화의 부재입니다.
그런 반면 지리산 독서 캠프에는 대화가 있습니다. 작가와의 대화 뿐 아니라 자연과의 대화,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대화들이 있습니다. 계곡물들이 수많은 물과 만나 섞이듯 그렇게 만나고 섞이는 마음들이 웃음을 만들어 내고 눈물을 만들어 냅니다.
참 오랜 동안 이러한 만남과 대화를 그리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다지도 짧게 하산을 하고 마는 것이 삶의 진실이요 현실입니다만, 장엄하고 크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들이 내게 속삭여준 진실은 참으로 귀합니다.
처음으로 마음에서 그런 말이 우러나왔습니다.
주향아. 네가 겪은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네 문제는 너무 작은 것들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더욱 엄청난 삶의 현실들 앞에서 상하거나 절망으로 짓이겨지거나 어두워지지 않고 여전한 건강함과 끈질김과 지혜로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 천년의 세월을 견디면서도 자기 안에 크고 아름답고 자상한 것을 잃지 않은 산을 만났던 것입니다.
숭고 체험, 의 하나라고나 할까요
내가 10여년 전에 독대하였던 그 하나님과 이제 그와 같이 다 눈물 많고 아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숭고하고 넉넉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난 분들이기에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그토록 힘을 다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과 함께 살아내셨다는 박철 목사님, 그리고 그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보이셨다는 그 아름다운 고백과 잊혀지고 쓰러지는 선교와 순교의 정신을 찾아 기독교 교회사를 우리들의 삶의 역사 가운데로 돌려놓으시려는 박선경 목사님, 우리들이 가진 작고 편협한 하나님에서 벗어나 천지를 만드시고 그 가운데 충만하신 하나님을 누리고 표현하시는 고진하 목사님,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사형수들을 만나며 우리들에게 사형수였던 우리들을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공지영 씨까지 그들 안에 그렇게 그리스도의 계곡이 흐르지 않는다면 그러한 삶과 문학과 공부가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기쁨을 위하여 좋은 것들을 주시려고 울컥울컥하시는 눈물을 삼키며 사랑의 고백을 하시는 김현호 기쁨지기 집사님, 뒤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한 시도 쉼없이 땀을 흘리시며 밥을 해주신 최봉순 집사님, 소와 닭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 최태준 목사님과 아름답고도 강인하고 솜씨 좋으신 미인 사모님, 그분들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너무나 정갈한 영혼의 물을 마시고 온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는 여전히 이러한 별들이 있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시대는 어둡고 현실도 각박하지만 말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후유증이 심합니다. 우리가 어딘가로 떠나는 동안 현실은 우리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면 모든 것들이 마치 대기를 하고 있다가 닥쳐오듯이 밀린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아요, 마음이 아직도 구름 위의 그곳에 있으니,
그리고 어쩌면 좋아요, 그곳에서의 나와 여기에서의 내가 이렇게도 다르니,
영화로운 주님을 만난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그곳에서 머무르기를 원할 때 주님께서 그 제자들을 내려 보내신 것처럼, 나도 왠지 떠 밀려 온 기분인 것을,
그곳이 사랑을 받은 곳이라면 이곳은 사랑을 해야하는 곳이고, 그곳이 섬김을 받았던 곳이라면 이곳은 섬겨야할 곳인데, 그곳에서 내가 손님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내가 주최측인 곳인데 나는 왜 사랑을 받고 싶고 섬김을 받고 싶고 손님인 그 자리를 더 좋아하는지
아직도 멀었습니다.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 작은 나는......
이러한 작은 나를 벗어나는 것이 다음 독서 캠프에 다시 오를 때까지의 나의 숙제이며 싸움이며 문학일 것입니다. 나의 문학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 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누군가를 함께 울리는 그것이기를 바라고, 나의 작음을 나 스스로 바라보면서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싸움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진정한 승리는 용서이며 사랑이며 섬김이며 사라짐일 것입니다.
첫댓글 내년에 장주향님을 이야기 손님을 모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느릿느릿홈 slowslow.org에도 옮겨놓겠습니다.
주여! 어쨌든 읽어주시고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