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전 악기라고 구입한 것은 기타가 처음일 것이다.
이전에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발장단 손장단 중심으로 원초적 타악기 장구 계보였다 하겠는데
취직해 봉급 받아 악기를 정식 구입한 것은 요즘의 대세인 기타였다.
그러고는 연주법을 배우러 책도 사보고 기타리스트 이정선의 비디오테이프도 구입해 시청해보고 했는데
까다로워서 포기하고 그냥 내 식으로 쿵캉쿵캉 반주음 중심으로 두드리며 지나왔다.
말하자면 복잡한 멜로디보다는 강약 스트로크 중심에 거의 타악기 장구 대용으로 사용했던 셈이었다.
늘그막에 현직에서 물러나 한가해지고 동네 복지관에서 기타를 가르쳐 준다기에
제대로 익혀볼까 해서 신청하고 일년여 다녀 보았다.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책이나 이정선 테이프에서 봐왔듯이 코드 중심으로 가르치는데 답답했다.
옆에서 섹스폰 배우다 왔다는 어느분 가로되
"아이고 이거 장난이 아이네, 섹손폰보다 훨 어렵데이"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읊는다 캣으니꺼내, 아직 삼년은 안됐으니꺼네"
하면서 실력이 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충 보니 삼년을 곱으로 넘긴다고 별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더이상은 아니다 싶어 그만두고 시조창 반주악기들인
장구와 단소, 대금 쪽에다 주된 낙을 붙이고 지나왔다.
그런데 시조창도 원래는 양금 등 현악기가 주도했다고 고악보에 기록되어 있다.
사실 반주와 노래를 혼자 하려면 입에는 악기를 못 대니 장구만 의존해야해 좀 단조롭다.
현악기는 손으로 온갖 멜로디를 표현하므로 다양한 반주가 가능하다.
대중가요 등 여타 방면에도 만사형통이다.
그래 요즘도 기타를 곁에 두고 수시로 만지작거리고는 있다.
그러면서 나름으로 즐기는 노하우.
기본은 아르페지오, 즉 손가락이나 피크로 하나의 줄만 치는 방식이다.
코드로 여러 음을 함께 치는 화음 발현은 대개 생략하고
한 줄 한음씩만 튕기고 부족하면 곁에 다른 음을 약간 보조하는 간단 명료한 스타일.
이때 관건은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만 제 음계를 찾아 칠수 있는가 여부인데
실수는 많지만 하다보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닌 것같다.
나름 흥도 나고 자주 만나는 대중가요는 그런대로 연주도 된다.
구태어 코드 때문에 기타의 출입구부터 봉쇄할 필요는 없지않나 여긴다.
코드는 사실 장점도 있지만 서양음악이 선호하는 주법이다.
동양 악기들은 화음 없이 한 악기에 한 단음으로만 소리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단소나 대금 장구도 그렇거니와
한국 동양권의 기타 격인 가야금 거문고나 비파, 사미센 등도
모두 아르페지오 스타일이지 코드 위주는 아닌 줄로 안다.
그러고보면 그림도 서양화는 명암 중심이라 뎃상에 연필 목탄으로 여러 선을 긋고 문지르며
유화 수채화 채색도 면 중심으로 입체적이다.
반면 동양화는 먹붓에 단일 선 위주로 그린 후 색갈은 그 위에 담채로 살짝 입히거나
좀 진한 경우에도 기존 선의 주도권까지 침해하지는 않는 편이다.
문화적 성격 차이일 것이다.
한편 중국 4현 비파와 일본 3현 사미센에 대응하는 한국의 향비파는 5현으로 내려왔으나
구한말에 맥이 끊어져 지금은 시중에 구하기 불가능하고
악기 특수 메이커에 주문해야하는데 가격이 엄청 나 일반과 사실상 단절되어 아쉽다.
아무려나 하모니카를 양피리라 부른 실례도 있거니와
시조창 반주로 애용되었던 양금은 서양에서 온 금이란 뜻이니 그렇다면
6현 기타를 양비파라 부름도 용혹무괴이며 시조창에 대용하는 것도 터무니 없지는 않을 터이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시험삼아 튕겨 보니
우리 소리 황은 레에, 태는 미에, 중은 솔에, 임은 라에, 남 혹은 무는 시에 대입하니
엇비슷한 소리가 나는 느낌이다.
정확한 것은 튜너 등으로 측정해 맞춰나가면 될 것이다.
현악기로 코드 화음은 애초 크로마하프 쪽이 효율적인 듯했다.
거기는 코드 키가 밑에 덧붙어 간단 명료히 짚을 수 있는데
기타는 왼손으로 두서너줄을 총알같이 바꿔가며 짚어야 하니 까다롭고 정확성도 문제다.
설령 제대로 짚어도 오른 손이 상응하게 쳐 주어야 제소리 나는 것이고
제소리 낸다해도 내 귀에는 별나게 맛깔스럽거나 차별화되지도 않은 듯하다.
그래 나로서는 위의 간단명료하고 단순청아한 나름의 주법으로
노년을 기타, 곧 양비파와 동고동락 희락풍류하며
장구와 단소, 대금과 더불어
또 하나의 지기요 동반자로 기꺼이 품어안는 것이다.
첫댓글 악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인데
참으로 다양한 악기들이 있네요
한번쯤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긴 한데 ㅡㅡ생각을 많이해봐야 겠어요^^
젊을 때 생업에 바쁠 때는 악기에 신경쓰기 좀 어렵죠. 당장 해야할 일들이 줄을 이으니까.... 그러나 하나 쯤 지근거리에 두는게 나쁘진 않겠죠.
풍류가객이시네요.
여유로운 인생2막이 무척 부럽습니다.
풍류가객이면 좋겠는데 요원합니다...언제 근처에라도 갔으면 바랄뿐... 어쨋거나 흉내라도 내보는게 재미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