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항 근처 넓은 갯벌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스페샬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평일 요금은 2인 1실에 40,000원이고 주말 요금은 50,000원인데 우린 세 식구라서 55,000원이다.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아주 멋진 모텔이다. 강추~~~~~~!
포근한 실비가 자분자분 내리는 이른 아침, 개암사로 향했다.
비안개에 휩싸여서 듬직한 울금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경내는 보수를 마치고 적재적소에 전각들이 단정하게 들어섰다.
모두들 제자리에 있어서 예쁘다. 예전에 보았던 개암사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아무 생각 없이 몇 달간 살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다.
석축도 꽤 높지만 위엄을 부리지 않고 친근하다. 중심에 자리잡은 대웅전의 모습이 주변과 멋들어지게 조화되었다.
법당 중앙문을 활짝 열어놓아서 부처님의 금빛이 사방으로 넘쳐나왔다.
법당 안에 들어가니 많은 용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민다. 그야말로 반야용선이다.
법당 안 용의 수로는 군산 상주사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법당 앞 작은 뜨락에 노란 수선화가 만발해있고.
먼 발치에는 갓 벙그는 늘씬한 연분홍매가 봄비를 받아서 촉촉이 젖어있다.
아직 열지 않은 가게 안을 기웃거리니 지나가는 노스님이 “뭐 살게 있어요?”하신다.
돌아보니 부처님처럼 자비로운 모습이다. 또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 개암사는 부안삼절로 일컫는 매창이 자주 찾은 곳이라고 한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하여 매창을 만나러 부안시내 매창공원에 갔다. 매창을 기리기 위해서 공원 곳곳에 매화를 많이 심었다.
오래된 매화는 없지만 연륜이 더할수록 아름다운 공원이 되리라.
매창이 읊었던 梨花雨 대신에 봄비가 분분히 내려 매창의 애달픈 사랑이 거문고 가락을 타고 내 가슴에 주루룩 흘러내렸다.
다시 완주 화암사로 향했다.
안도현 시인의 “잘 늙은 절 한 채...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의 그 곱게 늙은 절집이다.
봄이면 찾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얼레지 군락이다.
앙코르와트사원의 천상의 무희라는 ‘압살라’를 방불케하는 고혹적인 얼레지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예쁜 얼레지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해마다 느는 것 같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가슴조리며 들어간다. 혹시 맞은편 자동차라도 만날까 늘 애가 타는 길이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시니 아무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다문다문 오고간다.
두껍게 쌓은 붉은 낙엽의 불명산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현호색과 얼레지가 지천이다.
현호색은 여전히 명랑한 얼굴이고 얼레지는 봄비에 젖어서 고개를 숙이고 꽃잎을 모조리 닫고 있다.
마치 떠나는 임을 잊지 못해 상사하는 매창의 수척한 얼굴 같다.
철계단을 잡고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아들은 연신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드디어 빗속에서 만나는 반가운 화암사! 우리 흥선 스님이 참 좋아한다는 화암사이다!
작년에 공사 중의 부시시한 얼굴이 아니라 세수를 마치고 가벼운 분단장을 마친 꽃각시 얼굴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우화루 왼쪽 옆에 난 문을 통해 허리를 굽히면 화암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백제계 건축구조인 하앙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극락전이 있어서 늘 유심히 본다.
오늘은 하앙식구조가 어떤 구조인지 확실히 알았다. (처마를 길게 빼기 위하여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두는 부재)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 위의 닫집이 호화롭다.
살아 꿈틀거리는 용과 하늘거리는 비천상의 옷고름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는 듯 하다.
좁은 공간에 들어찬 극락전, 우화루, 불명각, 적묵당의 건물이 만들어 낸 하늘 천장이 최고의 명품일 것이다.
법당 뒤에는 오래된 키다리 노간주나무가 하늘을 들어올리고 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눈물날 때마다 찾는 절집,
절집에 들어가면 인자하게 맞이해주시는 부처님을 뵐 때마다
우리 가족이 그다지 박복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생에서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언젠가는 열반의 언덕에 함께 오를 것을 믿기에.
첫댓글 세상을 맞이하는 답사길.. 가슴설레이며 떠나는 답사길.. 돌아와서 잔잔히 엮어내는 아름다운 마음을 읽습니다.
얼레지가 지천인 화암사 구경 별꽃님의 덕분에 잘 하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듯한 답사 후기는 볼수록 감동입니다.
별꽃님, 사진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