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3일
설날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텔레파시로 새해인사를 보냅니다.
부엌으로 가니 앙마야가 블랙티와 함께 접시를 내밀며 “Sherpa's New Year"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접시에는 어제 만든 꽈배기와 비스킷이 담겨있습니다. 아하.. 얘들도 우리처럼 음력 설을 쇠는구나. 그래서 어제 친구들끼리 모여 웃고 떠들며 이 음식을 장만했구나. 우리와 비슷한 설 풍습이 놀랍고 반갑습니다.

느긋하게 9시에 출발합니다. 오늘 추쿵까지 가는데는 두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지난번 이 길을 걸을 때 아들녀석이 날 보고 “아빠 다리가 풀린 것 같애” 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좀 힘들었는데 오늘은 가뿐합니다. 다이아막스와 아스피린 등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고소예방을 위해 다이아막스(200mg짜리의 절반), 징코민, 아스피린 프로텍트를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고 있습니다.


돌 기념비가 있습니다. 로체남벽의 영웅들이라는 철판이 있고 세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지 쿠크츠카라는 이름이 눈에 띱니다. 전설적인 산악인이지요.
추쿵입니다. 마칼루 롯지를 찾아갔더니 시설이 너무 낡았고 다이닝룸도 어둡고 지저분합니다. 추쿵 입구의 추쿵리조트로 갑니다. 새로 지어 훨씬 깨끗할 뿐 아니라 방도 넓고 남향이라 햇볕이 잘들어 마음에 듭니다.

모모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임자체 쪽으로 산보를 갑니다. 아마다블람에서 내려오는 능선의 눈주름치마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올라갈수록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간간히 머리를 압박하는 느낌이 있지만 곧 사라집니다.

임자체가 보입니다. C1까지의 루트도 대충 알 것 같습니다. 

로체의 아름다운 위용이 대단합니다. 눈앞에 거대한 산덩어리가 꽉 찹니다.
좀 더가면 호수가 나올 것같지만 오늘 산보는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섭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빙하 가장자리로 올라가서 내일 오를 추쿵리를 가늠해봅니다. 가운데가 말안장처럼 잘록한 곳을 중심으로 오른쪽 시커먼 곳이 추쿵리입니다.

롯지에 돌아와 양말빨래를 합니다. 물이 엄청 차갑습니다. 다행히 롯지 일하는 아저씨가 더운 물을 좀 부어주니 한결 낫습니다. 양말을 빨아 햇볕드는 창턱에 널어놓으니 개운합니다. 배가고파 미숫가루를 타먹습니다. 육포는 아까워 조금씩 먹는데 그래도 쉽게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마다블람 일원의 석양이 아름답습니다.


일하는 아저씨가 난로를 빵빵하게 때주어 다이닝 룸이 따뜻합니다. 졸고 있다가 코를 찌르는 냄새에 깼습니다. 낯선 포터녀석의 발냄새인데 견딜수 없어 방으로 도망왔습니다.
2월4일
7시반에 식사하기로 했는데 기척이 없어 식당에 가보니 까르마가 아직 자고 있습니다. 깨워서 부엌으로 보내 빨리 아침준비하라 이릅니다. 8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결국 8시 반이 넘어 출발합니다. 오늘은 고소적응차 추쿵리(5550m)에 올라갔다 옵니다.

어제보다 컨디션이 안좋은지 올라가는 길이 힘들어 오르다 쉬기를 반복합니다. 이 컨디션이라면 내일 짐까지 지고 꽁마라를 어떻게 넘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기도합니다. “히말라야 여신이시여, 저를 받아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여기 있는 것들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되게 해 주십시오.” 숨쉬기가 한결 편해집니다. 공기가 엷어지면 엷어지는대로 나를 거기에 동화시키면 됩니다. 저 돌처럼.. 저 흙처럼...

어느덧 돌탑들이 잔뜩 늘어선 안부에 올라섰습니다. 약 두시간 반 걸렸군요. 까르마가 “추쿵리!”라고 외칩니다. 아니야 이녀석아, 추쿵리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더 올라가야 해. 안부에서 길은 좌우로 갈라집니다. 왼쪽으로는 완만하고 비교적 편한 길이 언덕꼭대기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리지널 추쿵리는 오른쪽의 너덜길로 가야 합니다. 편마암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낙석이 염려되는 길입니다. 오르다보니 룽다를 걸어놓은 곳이 나옵니다. 여기가 추쿵리인가? 그런데 더 높은 곳으로 길이 이어집니다. 조심스레 진행하는데 발밑에 밟히는 돌들이 덜렁거려 위험합니다.

앞에 누군가 돌을 세로로 딱 세워놓은게 위험하니 더 이상 가지 말라는 표시같습니다. 아직 꼭대기까지는 50미터 정도 남은 것같은데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내일 거사를 앞두고 목숨 걸 일을 왜 해? 까르마라는 놈도 안도하는 눈치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경치는 안부에서보다 못합니다. 바로 앞의 능선이 임자체쪽 시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안부로 내려왔습니다. 안부에서 보는 남동쪽. 임자체와 임자체 호수가 보이며 멀리 뒤로 검게 솟은 것은 마칼루입니다.
북쪽으로는 거대한 빙하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까르마가 그 왼쪽으로 북서쪽의 잘록하게 들어간 능선안부를 가리키며 저기가 꽁마라라고 합니다. 어림잡아도 꽤 멉니다. 꽁마라까지 4-5시간 잡았는데 훨씬 더 걸리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꽁마라가 아니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Nanjajung이라는 5616m짜리 고개였습니다. 진짜 꽁마라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훨씬 왼쪽에 있습니다.
내려오는데 누군가 혼자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남체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는, 임자체에 오르려는 용감한 대학생 오군입니다. 오늘 아침에 추쿵에 도착하여 점심먹고 고소적응차 올라오는 길이랍니다.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녁먹으면서 오군의 해외여행기를 듣습니다.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벌어 러시아 횡단여행, 바이칼호수, 몽고 등을 다녀왔고 이번 여행도 자기가 번 돈으로 두달동안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이런 청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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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쿵리조트가 새집이라 성수기엔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비수기에 갔으니 텅텅 비어 있었고요..
저는 추쿵리 꼭대기(?)까지 가질 않아서 임자체호수를 못봤습니다.
꽁마라가 기대됩니다.
추쿵리에서 보이는 경치도 아주 멋집니다. 꽁마라는 아주 쥑여주고요..^^
사진과 함께 읽는 후기 생생합니다.
고소예방약을 소개하셨는데 참고가 많이 됩니다.
EBC코스를 마치고 나중에 3패스를 하려했습니다만 씨나님의 귀한 정보를 접하고 나니
이번 5월초 EBC(칼라파타르 - EBC- 추쿵)후 3패스로 바로 이어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견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추쿵 - 꽁마라 - 로부제 - 칼라파타르 (EBC포함) - 촐라 - 렌조라 로 엮는게 이동선의 낭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칼라파타르를 다녀왔으므로 로부제에서 바로 촐라로 직행했는데요. 원래 3패스는 로부제에서 칼라파타를를 다녀오는게 정석이랄까요.. 기간으로도 그렇게 하시는게 절약이 됩니다. 단 추쿵에서 충분한 고소적응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군요. 추쿵 - 꽁마라 - 로부제 - 칼라파타르 - 촐라 - 렌조라코스가 일정이나 여러면에서 좋겠군요.
그럴 경우 총 며칠 정도를 예상하면 좋을까요? (아님 씨나님 일정에 며칠을 더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루클라에서 부터 시작하여 렌조라를 거쳐 타메 남체 루클라까지 말입니다.
큰일날뻔 하셨네요
엉뚱한 곳으로 갈뻔 한거요? 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루클라에서 시작하여 칼라파타르, 고쿄리를 포함한 3패스 마치고 다시 루클라까지는 약 16일 잡으시고 하루이틀 예비일을 더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