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五曲)은 어듸매고 은곡(隱曲)이 보기 죠희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瀟灑)함도 사이 업다. 이 중에 강학(講學)도 할연이와 영월음풍(詠月吟風) 하올이라.
육곡(六曲)은 어듸매고 조래(釣崍)에 물이 넙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즑이는고 황혼에 낙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
칠곡(七曲)은 어듸매고 풍암(楓巖)에 추색(秋色) 죠탸 청상(淸霜)이 엷게 친이 절벽(絶壁)이 금수(錦繡)이로다 한암(寒巖)에 혼자 앉아 집을 닛고 잇노라.
팔곡(八曲)은 어듸매고 금난(琴灘)에 달이 붉다. 옥진금미(玉軫金微)로 수삼곡(數三曲)을 노론 말이 고조(古調)를 알 리 업쓴이 혼자 즑여 하노라.
구곡(九曲)은 어듸매고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쏙에 뭇쳣셰라. 유인(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업다 하드라.
<해제> 고산의 아홉구비 경치를 읊은 것으로 서사(序詞)와 석담구곡(九曲)의 아름다운 풍광을 중의적(重義的)으로 노래한 연시조.
<낱말 및 어구 풀이> *벗님 : 만년에 해주 고산에 은퇴, 은병정사를 짓고 지낸 것으로 보아 정사(精舍)의 여러 후학(後學)들 을 가리킨다고 봄 *무이를 상상하고 : 주자가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던 무이산을 생각하고, (이곳에서 그는 <武夷九曲歌>를 지었음) . *무이(武夷) -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 주자가 이 산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음. 구곡계(九曲溪) 가 있어 경치가 좋음. *관암 : 갓같이 생긴 바위 *평무 : 잡초가 우거진 들판 *소쇄 : 맑고 깨끗함 *조래 : 낚시질하는 산골짜기 *대월귀 : 달빛을 받으며 돌아옴 *옥진금미 : 거문고
<감상> 1연은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의 서사(序詞)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고산에 있는 석담구곡(石潭九曲)을 사람들이 몰랐는데, 율곡이 풀을 베고 집터를 닦아 정사(精舍)를 지어 놓았더니 그 때에야 많은 제자들이 모여든다. 옛날 주자(朱子)가 무이산(武夷山)에서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았듯이 자기도 이 곳에서 주자의 학문을 배우겠다고 노래한다. 아름다운 자연에 묻혀 주자학을 연찬 하겠다는 학문적 열의를 노래한 시조이다. 2연은 '고산구곡가'의 셋째 수이다. 화암의 늦봄은 온갖 꽃이 만발하고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 절경을 이루었다. 이 아름다운 선경(仙境)을 어찌 혼자서만 즐길 수 있겠는가! 푸은 물 위에 꽃잎을 띄워 흘러 보내어 세상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연상케 한다.
<작자> 이이(李珥 : 1536∼1584) - 호는 율곡(栗谷). 조선 선조 때 학자. 벼슬이 이조 판서, 우참찬(右參贊)에 이름. 일찍이 어머니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가르침을 받아 문필이 뛰어났고, 이황(李滉)과 더불어 우리 나라 유학사에 쌍벽을 이루었다. 1569년 벼슬을 사퇴하고 해주(海州) 고산(高山)에서 정사(精舍)를 짖고 학문과 교학에 힘썼다. 문집으로 <율곡집(栗谷集)>이 있고, <자경별곡(自警別曲)>이 유명하다.
● 전문 풀이 [1] 고산의 아홉 굽이도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풀을 베고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사니 벗님네 모두들 찾아오는구나. 아,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하고 주자를 배우리라 [2] 첫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에 아침해가 비쳤도다. 잡초 무성한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먼 곳과 가까운 곳 가릴 것 없이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소나무 푸른 숲 사이에 맛좋은 술이 담긴 술통을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 라. [3] 두 번째로 경치가 좋은 것은 어디인가? 꽃바위의 늦봄 경치로다. 푸른 꽃을 띄워 멀리 산 밖의 들로 보낸다.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곳을 모르니, (꽃을 띄워 보내) 이 곳의 경치 좋음을 알게 한들 어떠리. [4] 세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에 녹음이 짙어졌다. 푸른 숲 속에서 산새들은 높이락 낮추락 노래를 부르는데, 가로퍼진 소나무가 맑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여름이지만 그 경치가 시원스럽기 그지없구 나. [5] 네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소나무 보이는 낭떠러지 위로 해가 떠 넘는구나. 깊은 물 한가운데에 비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과 함께 잠겨있구나. 수풀 속의 샘물(세상을 물러난 선비가 은거하는 곳)은 깊을수록 깨끗하니 흥겨움을 이기지 못 하겠구나. [6]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으슥한 절벽이 보기도 좋구나. 물가에 세워진 배움의 집은 맑고 깨끗하기가 더할 나위 없구나. 이런 곳에서 글도 가르치고 때로는 시를 지어 읊으면서 흥겹게 놀기도 하겠구나. [7] 여섯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에 물이 많이 고여 있구나. 나와 고기와 어느 쪽이 더 즐거운가? (아마도 낚시에 재미를 붙인 나이니 진종일 즐기다가) 해가 저물거든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 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8] 일곱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단풍으로 덮인 바위에 서린 가을빛이 좋구나. 그 곳에 깨끗한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단풍에 덮인 바위가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도다. 차가운 바위에 혼자 앉아서 (경치에 취하여)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도다. [9] 여덟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목에 달이 밝 다. 좋은 거문고로 서너 곡조를 탔지만 운치 높은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듣고 즐기노라. [10] 아홉 번째 굽이는 어디인고,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이 눈 속에 묻혀 버릴까 걱정되는구나.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 해설 <고산구곡가>는 이이가 선조 10년 42세의 나이로 해주로 퇴거하여 선적봉과 진암산 두산 사이 를 흐르는 구곡 유수의 제오곡인 고산 석담에 복거하고 그 다음해 여기에 은병정사를 세워 은거하 면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서 지었다는 총 10수로 된 연시조이다. 16세기 사림파들은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조선조를 개혁코자 하였는데 그 실천 요강은 주 자에 집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의지가 좌절되면 서슴없이 강호로 돌아 갔는데 그들에게 는 주자의 삶과 그의 학문, 그리고 그의 문학이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주자의 무 이구곡에서의 삶이 동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가 지은 <무이도가>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무이도가>는 지고의 시로 인식되어 깊은 천착이 있었는데, 이황은 <무이도가>에서 차음하여 <한거독무이지차구곡자가운>을 지었고, 율곡 이이는 시조의 형식을 빌어 <산구곡가>를 지었다. 조선조의 주자학적 지식인들이 <무이도가>를 수용함에 있어 이황의 경우처럼 거의 한시로 차음한 데 반해 이이는 시조의 형태로 변용하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고산구곡가>는 연시조의 유산중 구조와 내용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작품인데 같은 강호 자연 을 노래한 퇴계의 <도산십이곡>이나 입암의 직립불기, 높은 기상과 강건함, 묵묵한 기상을 읊어 자연에의 몰입을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머도록'과 '먼 빗치'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고산의 < 어부사시사>와도 다르다. <고산구곡가>는 첫수를 서사로 시작하여 1곡에서 9곡까지 노래하는 구곡체 시가라 할 수 있는 데, 퇴계.율곡 이후 17세기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적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애송되기도 하고, 자 연을 소재로 한 많은 한시 창작에 영향을 미쳐 20세기 초엽까지 많은 구곡체 시가가 지어졌다. 그 러나 한문 구곡체 시가의 작품 수는 많으나 국문 구곡체 시가는 율곡의 <고산구곡가>와 이것의 영향을 직접 받은 권섭의 <황강구곡가>, 가사 형태의 시가인 채헌의 <석문정구곡도가> 등 몇 편 에 불과하다. 구곡체 시가 가운데 <고산구곡가>는 형태상 구곡을 읊었다는 점에서 <무이도가>의 영향을 받 았으나 의미상 구조나 내용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 감상 [1] 작품의 서사(序詞)로서 고산의 경치를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가, 그 곳에 집을 짓고 강학 (護學)을 시작하니 벗과 제자들이 모여든다는 내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면서 주자학을 연 찬(硏鑽)하겠다는 소박한 학구적 열의가 강하게 느껴져 학자다운 사명감마저 엿보이고 있다. [2] 관암(冠巖 ; 갓바위)을 노래한 것으로 첫머리를 상징하여 갓바위를 인용법이며 술통을 놓고 벗 을 기다리는 여유 또한 폭넓은 인간미를 보여준다. [3] 늦봄이 되면서 온갖 꽃이 만발하였다. 그 꽃을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명승지를 남 에게도 알려 같이 즐기고 싶어한다. 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름다운 곳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은 그의 심정으로서 바로 백성의 교화(敎化)를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성리학자로서의 깊이를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4] 취병(翠屛)을 노래한 것으로 우거진 녹음, 맑고 푸른 물위를 날며 우짖는 산새들의 합창, 강물 을 향해 뻗은 소나무 가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여름 경치가 이보다 더할 곳이 어디 있 겠는가. 인자 요산(仁者樂山)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5] 노송(老松)이 서 있는 벼랑과 그 밑에 있는 담수(潭水)에 어리는 바위 그림자가 석양에 비쳐 더욱 아름답다고 노래하였다. 은사(隱士)가 사는 곳은 산이 깊을수록 좋은 것이니 흥겨움을 이 기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6] 작자가 거처하고 있는 석담정사(石潭精舍)와 주변과 거기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뒤에는 바위가 병풍 같고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조촐한 모옥(茅屋)에는 책이 가득하다. 이 런 속에서 제자들에게 강의도 하고 시도 읊으며 도학(道學)을 펴리라 다짐하고 있다. [7] 산간 낚시터를 노래한 것으로 생활의 방편을 위해 고기를 잡기 위한 낚시질이 아니라 정한(情 閑)을 낚고 사색(思索)을 낚기 위해 작자와 고기가 서로 어울려 즐기기 위한 놀이이고 보면, 거 기에는 나와 네가 분간될 수 없고 오직 자연 그것만이 있을 뿐이다. [8] 단풍 우거진 가을 경치를 노래하였다. 깨끗한 서리가 가볍게 내린 절벽은 마치 수놓은 비단처 럼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바위에 올라 앉아 주홍(朱紅)빛으로 물든 단풍에 취하여 작 자 자신도 한 잎 단풍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앉았노라니 집에 돌 아가는 것도 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바로 그것이다. [9] 금탄(琴灘)을 노래한 것인데 이 금탄이란 이름은 작자가 그 곳의 여울물 소리를 거문고 소리에 비겨 지은 이름이다. 특히 종장의 '고조(古調)를 알 이 없으니 혼자 즐겨 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는 옛 성헌(聖賢)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경박한 신풍(新風)이나 유행에 빠져들고 있는 시 류(時流)를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옛 것을 모르고 새 것을 알 리 없다. 왜냐하면 새 것은 옛 것을 바탕으로 해서만 탄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0] 해 지는 문산을 노래함으로써 이 시조의 막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인들이 눈에 덮인 산 경치를 알지 못함을 한탄하는 체하면서 사실은 화려하고 웅장한 것만 아름다운 것으로 알 고 있는 세속인 들의 경박함을 나무라고 있다. 서곡(序曲)에서 '벗님네 다 오신다'로 잠자던 막 (篇)을 걷어올리고 끝에 와서는 막을 내리기 위하여 세모(歲暮)를 이용하여 격을 맞춘 솜씨는 놀라운 바가 있다. ● 각 연의 제재 [1] 高山九曲潭(고산구곡담) [2] 冠巖(관암) [3] 花巖(화암) [4] 翠屛(취병) [5] 松崖(송애) [6] 隱屛(은병) [7] 釣峽(조협) [8] 楓巖(풍암) [9] 琴灘(금탄) [10〕 文山(문산) ● 각 연의 주제 [1] 고산구곡가를 짓게 된 동기 [2] 학문의 세계에 들어오지 않는 자에 대한 경계 [3] 관암의 아침 경치 [4] 화암의 늦봄 경치 [5] 송애의 저물 무렵 못에 비친 아름다운 巖影(암영) [6] 水邊精舍(수변정사)에서의 講學(강학)과 詠月吟風(영월 음풍) [7] 조대의 야경 [8] 풍암의 가을 경치 [9] 탄금의 여울물 소리 [10] 문산의 눈덮인 경치 ● 핵심 정리 ◁ 작자 : 이이(李珥 ;1536∼1584) ◁ 출전 : <해동가요>, <청구영언>, <병와가곡집> ◁ 종류 : 연시조(10수) ◁ 성격 : 교훈적, 유교적 ◁ 제재 : 석담 수양산의 풍광(風光) ◁ 주제 : 강학(講學)의 즐거움과 고산(高山)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