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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전법 - 작은손길(사명당의집) 경험을 중심으로
여운(如雲) 김광하 (2015년 1월 13일)
차례
1) 무주상보시의 발견
가) 포교와 복지의 갈등
나) 마누엘 신부와 허병섭 목사
다) 도로시 데이 여사의 <환대의 집>
2) 부처님의 병간호
가) 지(知)와 행(行)의 괴리 - 병든 비구의 호소
나) 지와 행의 모순 - 지세보살의 외면
다) 제자들이 세상에 알린 부처님의 모습
3) 무주상보시의 이상(理想)
- 유마경 보살품(수달다 편)
4) <작은손길(사명당의집)>의 화두
가) <작은손길>의 고민
나) 자비로서 충분한가? - 발보리심의 현실적 의미
5) 경전의 비전
가) 초기경전(우다나 무짤린다의 품)
나) 대승경전(유마경 불도품,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
1) 무주상보시의 발견
가) 포교와 복지의 갈등
이슬람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종교적 갈등
(작은손길의 전신) 김포외국인노동자인권문화센터(2012-2104년)의 경험
포교와 복지의 갈등(서울역 노숙인급식에서 일어난 일)
나) 마누엘 신부와 허병섭 목사
무주상보시는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정당성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은 이웃에 대한 자비에서 출발한다.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미망은 도덕적(종교적) 정당성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아닐까?
다음은 경향신문에서 한상봉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의 글이다.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살던 마누엘 신부는 어느 날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내가 사제가 아니었어도 이처럼 살았을까?’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어도 이렇게 살았을까?
만일 복음서에서 예수가 명령했기 때문에 내가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면 나의 투신과
신앙은 불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내 사제복을 벗고, 그리스도교 신앙마저 포기한 채
무신론자로서 남은 생애를 빈민촌에서 살았다. 마누엘 신부는 죽기 전에 이런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주님, 제가 무신론자로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8월 2일 경향신문)
마누엘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지난 2012년 3월 세상을 떠난 허병섭 목사님이 떠올리게 된다.
목사님은 한국신학대학을 나와 빈민목회를 한 분이다. 청계천 일대의 꼬방동네가 철거되자 허 목사는
성북구의 달동네로 들어가 교회(동월교회)를 차렸다. 고인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며 목사직마저 반납했다.
한국 기독교장로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직을 반납하고 허병섭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와 빈민들과 함께 싸우다 구속돼도, 경찰이 노동자에게는 거친 언행을 퍼부으면서도
목사에게는 존칭을 쓰며 대접하는 것이 죄스럽고 괴로웠다.”
마누엘 신부나 허병섭 목사를 보면 그 분들의 겸손한 비움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 분들은
목사나 사제직 자체가 장애라고 생각하기보다, 목사나 사제직에게 주어지는 대접이나
종교적 정당성이 이웃과 진정한 교류를 막는 장애임을 깨달은 분들이 아닐까.
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 여사의 <환대의 집>
도로시 여사는 1931년 가톨릭 일꾼 운동을 시작했다. 도로시 여사가 창설한 <환대의 집>은
노숙자나 실업자가 24시간 언제든 들러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옷을 빨고 책을 읽고 잠잘 수 있는 곳이다.
며칠을 자든 상관없고 계속 머물러도 되는 곳이다. 당장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을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그녀는 도시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을 위해서는 농경공동체를 운영했다.
환대의 집은 이렇게 매우 겸손한 뜻을 가지고 시작했다. 도로시 여사가 추구하는 봉사는
불교의 무주상보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녀는 늘 이렇게 성찰했다.
“남을 도와주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난한 자에 대해 교만한가!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는다면서 또 우리는 세상살이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 속에는 사적인 의도와 동기가 숨어 있지는 않는가?”
도로시 데이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민권이나 인권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正義)라는 좀 더 큰 명분을 가지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 물론 그래야지요. 만약 우리가 그런 추상적인 도덕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곳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바로 여기 바워리 거리(뉴욕의 부랑자 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스프를 준비하는 일! 이 이상의 일을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입니다. "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저 김종철 역, 녹색평론사)
2) 부처님의 병간호
가) 지(知)와 행(行)의 괴리 - 병든 비구의 호소
한 비구가 병이 걸려 누웠다. 그 비구는 아파도 곁에서 간호해주는 비구가 없었다.
이윽고 고통을 이기지 못한 이 비구는 큰 소리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문이 부처님 귀에 까지 들렸다.
마침내 이 비구를 방문한 부처님은 먼저 이렇게 물으셨다.
“간호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누가 와서 돌보아 주는가?"
“지금 이렇게 병이 들었는데도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날 병들기 전에 그대는 병자를 찾아가 문병한 일이 있는가?"
“병자들을 찾아가 문병한 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바른 법을 들었지만, 그 안에서 좋은 점을 얻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문병하러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일의 전말을 짐작하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비구여, 그대는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직접 그대를 공양하며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
나는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사람을 구해주고,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며, 모든 병자를 보살펴 준다."
그리고 세존께서 손수 더러운 것들을 치우고 다시 좌구를 까셨다. 손수 비를 들고 더러운 오물을 치우고
다시 자리를 깔아 주셨다. 또 그의 옷을 빨고 병든 비구를 부축해 앉히고, 깨끗한 물로 목욕시켰다.
그 비구를 목욕시킨 뒤에 평상 위에 앉히고 손수 밥을 먹여주셨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밥을 다 먹은 것을
살피시고는 발우를 치우고 곧 그에게 12연기법을 가르치셨다.
(증일아함경 제40권 구중생거품)
나) 지와 행의 모순 - 지세보살의 외면
유마경은 재가불자이면서 높은 깨달음을 얻은 유마거사의 설법과 언행을 기록한 경전이다.
유마경 보살품에는 지세보살이 등장한다. 지세보살은 중생을 위해 보살행을 실천하는 출가자이다.
하루는 마왕이 지세보살을 유혹하기 위해 제석천(하늘의 천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왕은 지세보살을 칭송하며 자신이 거느리는 여자들을 시녀로 삼아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지세보살은 자신은 출가자이므로 여자들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사양했다.
이때 유마거사가 나타나 마왕에게 자신이 그 여자들을 다 거두겠다고 말한다.
유마거사의 법문을 들은 여자들이 마왕의 궁전으로 돌아가길 꺼려하자,
유마거사는 다음과 같은 무진등 법문을 하였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즐거움, 자신과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에게 미움이나
노여움을 품지 않는 즐거움, 좋은 벗을 사귀는 즐거움, 나쁜 친구의 악행을 고쳐 주는 즐거움,
진리를 흠모하여 큰 기쁨을 얻는 즐거움, 방편에 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는 즐거움,
그리고 깨달음의 길을 배우는 가운데 쉽사리 방종에 빠지지 않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모든 보살이 누리기를 원하는 법의 즐거움입니다.”
(유마경 보살품 지세보살편, 박용길역 민족사)
다) 제자들이 세상에 알린 부처님의 모습
경전 속에 나오는 부처님을 보면, 스승으로서 권위를 전혀 볼 수 없다. 병든 비구는 평소 이웃 비구가
아파도 문병을 가지 않는 그야말로 복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병든 제자의 몸을
일일이 씻겨주시며 먹을 것을 구해주고, 입은 옷을 모두 빨아주었다. 이윽고 몸과 마음의 안정을
구한 제자에게 부처님은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 스승을 본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이렇게 알리고 다녔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은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으시고,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시며,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하도록 길을 알려 주시고,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사람을 보살펴 주시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십니다."
(증일아함경 제13권 24 고당품)
3) 무주상보시의 이상(理想)
유마경 제4 보살품에는 대부호 수달다(급고독장자) 이야기가 나온다.
경전에 나오는 수달다 장자는 큰 부자였다. 그는 스님과 외도의 승려들과 바라문들 그리고
가난하고 천한 걸인들을 초청해 음식을 보시했다. 겉으로 보면 이 공양은 재보시에 속한다.
유마거사는 이 모임에 와서 수달다 장자의 아들에게 재보시를 하지말고 법보시를 하라고 충고했다.
세존이시여, 유마거사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무리 가운데에 있던 2백명의 바라문이 그 자리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 대해 크게 발심했습니다. 저 역시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뜨거운 감정이 벅차올라
저 고매하신 분의 발에 머리 조아려 진심으로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목에 두르고 있던 값비싼
진주목걸이를 풀어 받아주기를 청하였건만 그분은 거듭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저는 부디 이것을 받아서 누구에게든 다시 베풀어 주십사고 거듭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유마거사는 목걸이를 받더니 그 자리에서 두 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 모임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난승여래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훌륭한 신통력으로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양염이라는 불국토와 그곳의 주재자인 난승여래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진주 목걸이가 아름다운 진주 누각의 형태로 서 있는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신통력을 모두 보여주고 난 다음 그분은 말했습니다.
“시주로써 보시를 베푸는 사람은 그 대상이 누구든 반드시 여래에게 직접 보시를 올린다는 생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의 모든 거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복전이라 생각하고 나중에 좋은 과보를 받으리라는 생각 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를 베푼다면,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완벽하게 법을 보시하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마거사의 신통력과 설법에 감동한 가난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겠다고 크게 발심했습니다.
(유마경 제4장 보살품, 박용길 역, 민족사)
4) <작은손길(사명당의집)>의 화두
가) <작은손길>의 고민
새터민 학생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갈등.
을지로 거사를 만난 지난 10년의 의미
새터민 학생들의 장학금수여식의 고민
나) 자비로서 충분한가?
발보리심의 현실적 의미
5) 경전의 비전
가) 초기경전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직후에 네란자라 강변위 무짤린다 나무아래 계셨다.
세존께서는 칠 일 동안 오로지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기쁨을 누리며 앉아 있다.
이 때 커다란 구름이 일어나 칠 일 동안 비가 내리고 차가운 폭풍이 몰아치고 험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
이 때 무짤린다 나무 근처 호수에 사는 용왕이 부처님을 보호하기 위해 부처님의 몸을 일곱 번 감싸고
머리 위로 목을 펴 비를 막았다. 이윽고 날씨가 개이자 용왕은 바라문 학인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부처님 앞에 섰다. 부처님은 바라문을 보고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를 읊으셨다.
“가르침을 배운 자, 진리를 보는 자, 만족을 아는 자는
욕망을 멀리 떠나 행복하고,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아 자제하며
세상에서 폭력을 멀리 떠나 행복하다.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뛰어넘음이 행복이다.
나아가 ‘내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면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우다나(감흥어린 시구) 2. 무짤린다의 품 2-1 무짤린다의 경)
나) 대승경전
a) 유마경
견수공사자 (見須供事者) :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현위작동복 (現爲作僮僕) : 머뭇거리지 않고 심부름꾼과 하인 노릇을 한다
기열가기의 (旣悅可其意) : 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 뒤에는
내발이도심 (乃發以道心) : 마침내 도심(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
- 유마경 불도품(佛道品)
b) 화엄경
선남자여, 모든 공덕을 널리 돌려주는 회향의 원은, 맨 처음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부터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까지 이 모든 원을 실천해서 얻는 일체의 공덕을 세계와 허공계가 다하도록
일체 중생에게 남김없이 돌려주는 것입니다.
(1) 그리하여 저 중생이 항상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며 일체 병과 고통이 영영 없기를 바랍니다.
(2) 악한 일을 하고자 하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착한 업을 닦고자 하면 다 속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3) 중생을 나쁜 곳으로 이끄는 모든 문이 닫히길 바라고, 인간이나 하늘세계에 이르기까지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4) 일체 중생이 스스로 쌓은 그 모든 악업 때문에 받는 가장 무거운 고통을 내가 대신 다 받아서,
저 중생이 모두 해탈하여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그 닦은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줍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중생에게 돌려주는 나의 이 원은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원은 늘 생각마다 이어지고 끊임이 없어 몸과 말과 생각 어디에나 지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습니다.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
(끝)
첫댓글 오랫만에 뵈었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어려운 일 하시느라고 늘 고생하시는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