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꽃 필 무렵
가을
택시가 산모퉁이를 돌자 구불거리는 소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는 순간 차가 나타났다. 수십 년 택시를 몰아온 정만이었지만 바짝 긴장하며 자기도 모르게 차를 정지시켰다. 뒤로 물러날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어 잠시 그대로 있었다. 지난번에 부동산 여자와 한 번 와 봤던 길이지만 초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맞은 편 차가 슬금슬금 삼거리까지 가 후진하여 길을 비켜주었다. 정만은 고맙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다시 달렸다.
추수를 끝낸 논 사이로 배추밭이 보이고 배추밭 건너편에는 농가들이 모여 있었다. 농가주택 사이로 이따금 전원주택도 보였다. 택시가 선 곳은 이 마을 가장 위에 위치한 작고 낡은 전원주택이었다. 집은 좁은 도로에서 빠져나와 자갈을 깔아놓은 비포장 도로 끝에 있었다. 경만은 좁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대봉시를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만이 뒷좌석 문을 열고 덩치 큰 이불보따리를 내렸다.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있던 정식은 어색한 듯이 두리번거리며 택시에서 내렸다.
길가에 뿌리가 반쯤 뽑힌 나무가 보였다. 지난여름 긴 장마 때 뽑힌 것 같았다. 다행히 한쪽 뿌리가 여전히 흙속에 묻혀있어 용하게도 이파리가 붙어있었다. 상처받은 나무도 가을이라고 낙엽을 떨구고 있었다.
정만은 이불보따리를 집 안에 들이고 나와 차 트렁크를 열었다. 그 속에는 티브이와 커피포트 전기장판 같은 가전제품 몇 개와 약간의 부엌살림이 들어 있었다.
“뭘 해. 형도 좀 날러.”
우두커니 나무를 보고 서 있는 정식을 보고 정만이 소리쳤다. 정식은 그것들 중 제법 큰 티브이를 꺼내 들었다. 정만이 마지막으로 큰 비닐봉지와 전기장판을 꺼내고 트렁크를 닫았다. 비닐봉지 안에는 컵라면이 가득 들어있었다. 참치 통조림도 몇 개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냉기가 정식을 맞이했다. 부동산 여자는 비어놓은 지 꽤 오랜 된 집이라고 말했다. 정만이 보기에 폐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 이 궁리 저 궁리 해 봤는데 이 방법 밖에 없어. 청소는 형이 좀 해.”
정만이 전기장판을 방바닥에 깔고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며 말했다. 정식이 전기장판 위에 손을 대어보았다. 차츰 온기가 느껴졌다. 정만이 비닐봉지를 들어다가 부엌 바닥에 놓았다. 통조림이 부딪혀 달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쌀도 가져다 놨으니까 밥 먹고 싶으면 전기밥솥으로 해 먹어.”
정만은 밥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안하다.”
“ 정말 살 수 있겠어?”
“ 감옥보다는 낫겠지. 정말 미안해.”
“ 자꾸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러지 마. 그 말 밖에 못해? 여기 오는 동안도 계속 그 소리만 했잖아.”
“ 가 봐.”
“ 알았어. 밥벌이 하려면 한 탕이라도 더 뛰어야지. 새벽까지 뛰어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니 도무지 속 시원하게 되는 게 하나도 없어. 형까지 이러니.....”
“정만아!”
“왜?”
“..... 그 사람 소식....”
정식이 정만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집 팔아치우고 작정하고 떠난 사람이 흔적을 남기겠어? 민영이 데리고 외국으로 이민 간 게 맞나봐.”
정식은 딸의 이름을 듣자 한번 움찔했다.
“ 다시 올게”
가려다가 정만은 마지못해 정식에게 가서 어깨를 끌어안았다. 마른 장작 같은 날개 죽지의 뼈가 손에 닿았다. 사회에 첫 발을 뗀 형에게 뭔가 근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토닥거렸다. 차를 향해 가는 정만의 뒷모습이 찬바람에 쇠락해가는 들풀을 닮았다고 정식은 생각했다. 칠십이 넘은 정만은 아직까지 택시를 모느라 애쓴다. 미안하다. 정식은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정만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갈 깔린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심술 난 사람처럼 툴툴거렸다. 정식은 석양 속에 사라지는 택시를 바라보았다. 대봉시가 석양빛 속에 더욱 붉었다.
대봉시가 익어가자 까치가 몰려들었다.
“꺼지지 못해!”
정식은 발을 동동 굴리며 까치를 향해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돌은 까치에 닿기 전에 떨어졌다. 까치는 정식의 무능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자적하며 감을 쪼았다. 까치 옆으로 작은 새가 빙빙 돌았다. 까치가 다른 감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기면 빙빙 돌던 작은 새가 와서 남은 것을 먹었다.
“안 꺼지면 총으로 쏴 죽일 거야.”
한 번 맛본 먹잇감을 호락호락하게 포기할 까치가 아니었다. 어차피 높은 데는 손이 안 닿잖아. 이건 우리 몫이야. 까치가 정식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까치는 높은 곳에서부터 정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감까지 모조리 따 먹었다. 먹을 감이 없자 까치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퇴직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야. 그러니 잘 간수해.”
정식이 퇴직했을 때 고교동창 K가 말했다. 퇴직했다는 말을 듣고 동업하자는 사람에, 주식으로 불려주겠다는 사람에, 프랜차이즈 통닭집을 함께 내자는 사람에, 땅을 같이 사자는 사람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정식은 안전한 곳에 투자하고 싶었다.
K는 상가 분양을 전문으로 한다고 했다. 장사는 몫이 중요하니 좋은 곳이 나오면 소개하겠다고 했다. 월급처럼 매달 또박또박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상가가 가끔 나오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어느 날 K가 왕십리역 근방에 짓고 있는 상가를 보여주었다. 전철이 4개나 지나는 교통의 요지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발에 밟힐 정도였다. 상가 계약하고 온 날 월세 받아 여행이나 다니며 노후를 보내게 될 거라는 생각에 흥분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잔금을 내던 날 분양받은 상가에 갔더니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자기가 분양받은 상가라며 등기권리증을 보여주었다.
K를 찾아갔지만 그는 잠적을 했다. K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춘천 어디에서 또 사기를 치고 있는 K를 찾아냈다. K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었다. 분해서 어쩔 줄 모르던 정식이 근처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K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K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여러 정상을 참작해 25년 선고를 받았지만 모범수로 감형을 받고 또 받아 15년 만에 나오니 아내도 하나밖에 없는 딸도,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정만이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겨울
조붓한 북창 밖으로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잎을 떨군 겨울나무가 다 그렇듯이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 줄 알 수 없었다. 한 겨울 추위 속에 서 있는 나무는 죽은 듯이 검은 빛을 띠었다.
추웠다. 집 전체가 온기라고는 없다. 먼저 살던 사람이 조금 남겨둔 난방용 기름을 두 번 틀었더니 기름이 다 소진이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집은 냉기가 서릿발처럼 올라왔다. 정식은 기름을 주문하지 않았다. 정만이 가져다 준 전기장판을 펴 놓고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잤다. 장판을 강하게 틀어놓으면 등은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숨 쉴 때 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났다. 하루하루가 추위와의 싸움이다.
마루 천장에 붙은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다. 한 놈은 깜빡깜빡 하다가 며칠 전에 아예 수명을 다했다. 남은 한 놈에게서 나오는 빛은 구두쇠 영감처럼 인색했다. 그 마저 수명을 다하면 부엌에 매달린 알전구에 의지할 것이다. 알전구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빛이 흐릿하다.
남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겨울 햇볕이 낮에는 부엌 깊숙이까지 점령했다. 눈부신 햇살 속에 있으면 정식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두침침한 감방의 옅은 빛이 오히려 익숙했다. 정식은 햇살을 비켜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가끔 오갔다. 소로로 드물게 자동차도 다녔다. 산 쪽으로 올라가 지은 집이라 남창에 서면 동네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였다.
오른 쪽으로는 낡은 전원주택이 있다. 그곳에는 언제나 커다란 개 두 마리가 묶여있다. 개들은 한밤중에 고라니가 오면 요란하게 짖었다. 전원주택 여자는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개에게 밥을 주러 나왔다. 오후에는 개를 끌고 나가 산책을 시켰다. 가족 구성원이 어떤지 모르지만 60대 또래의 4사람이 한 집에 살았다. 집에 비해 넓은 겨울 뜨락이 몹시 삭막해 보였다.
정식은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물이 순식간에 끓었다. 컵 라면의 얇은 비닐을 뜯고 뚜껑을 열어 물을 부었다. 가는 라면 발을 먹는데 국물이 자꾸 한쪽으로 흘렸다. 얼굴이 떨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씰룩거렸다. 거울을 보니 입이 옆으로 돌아가 있다. 아무리 똑바로 하려고 애써도 옆으로 한 번 돌아간 입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른 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졌다. 속이 느글거리고 어지럼증이 왔다. 정식은 그만 컵 라면 용기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의식에서 깨어났을 때 정식은 몸이 한쪽으로 기울고 걸을 때면 찔뚝거리기 시작했다.
컵 라면이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제 오후부터이니 만 하루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다. 자꾸 눈길이 문 쪽으로 간다. 순간 정식은 정만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식이 여덟 살 때였다. 정만과 함께 우물가에서 물을 퍼 올리려고 두레박을 집으려는 순간 허리를 너무 숙여 그만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정만은 형 형 하고 부르다가 사라졌다. 정만은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정식은 소리소리 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졌다. 정식이 추위에 떨며 정만을 찾아갔을 때 정만은 동네 여자애들과 놀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도 얘기하지 않았다.
정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 오는 줄 알았어.”
정식이 말했다.
“설마 안 오겠어.”
“그땐 안 왔잖아.”
“언제?”
“내가 우물에 빠졌을 때.....”
“ 그런 적이 있었어? 난 기억 안 나.”
“ 뭐 기억이 안 난다고?”
“ 암튼 왔잖아. 나도 바빴다고.”
정만은 부엌 바닥에 마트에서 가져온 쇼핑백을 거꾸로 들어 쏟았다. 컵라면이 우르르 쏟아져 바닥에서 뒹굴었다. 정식이 찔뚝거리며 정리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 형은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 찔뚝거리는 것도 똑같네.”
“ 그러고도 한참 사셨지. 그럴까 봐 겁나.”
“ 겁 낼 것 없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아. 어차피 사는 것이 이판사판이야. 안 그래 형?”
“ 넌 어릴 때부터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잖아.”
“ 형도 알잖아. 여자 밝히다가 내 인생 쪽빡 찬 거.”
택시운전사인 정만은 쉬는 날 무료해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어릴 때부터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몸을 흔들었는데 몸짓이 여자처럼 예뻤다. 함께 춤추던 여자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몸을 맞대고 춤을 추면 상대가 누구든 안고 싶었다. 그는 제비족이 되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정만은 아내가 없으면 눈치 보지 않고 여자들과 더 재미를 보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덜컥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하자 그와 함께 춤추고 싶어 안달하던 여자들이 부담스럽다고 떨어져나갔다. 다행이 그들 중 혼자 사는 여자가 있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계수씨가 나를 아니?”
“구태여 얘기 할 건 아니다 싶어 안 했어. 나도 나름대로 그 사람 눈치 꽤 보며 살고 있어.”
“아버지가 엄마한테 구박받던 거 생각나니? 민영엄마와 함께 살면 나도 그랬을 거 같아. 이민 간 거 차라리 잘 되었어. 난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버지가 생각 나. 넌 아버지처럼 살지 마라.”
“지금은 택시라도 끌 수 있지만 이마저 못하면 나도 몰라.”
몸이 불편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내가 남편에게, 아니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식은 익숙하게 보아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는 것은 물론이고, 밥을 함께 먹지도,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장롱에 함께 옷을 걸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는 제사를 정성껏 지냈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어머니께 대접을 받았다.
봄
겨울이 꼬리를 내리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자 마루 깊숙이 들어오던 햇볕이 조금씩 영역을 거두어들였다. 겨울 한 복판, 중국 우한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왕관을 쓴 바이러스 뉴스가 햇볕이 온기를 머금었는데도 점점 더 시끄럽다. 처음에는 그저 감기의 일종이려니 했는데 전염이 빠르고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는 봄과 함께 몰려와 세상을 뒤덮고 있다.
뉴스에서 우한의 어느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고 쓰레기봉투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쇼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우주인 같아 보이는 것이 기괴하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하루에도 수천 명씩 쏟아져 나온다. 병원에는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들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또 뉴스는 병원복도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죽은 사람을 포대에 넣어 나르는 차들이 보인다.
천만이 사는 교통의 도시 우한으로 가는 모든 길이 바리게이트에 의해 차단되었다. 버스도 자동차도 철도도 비행기도 멈추었다. 거리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다. 가끔 구급차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이 보인다. 거리에 죽은 사람이 나뒹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도시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갇혔다. 통행증을 끊어 가지고 마스크를 뒤집어쓰고서야 식료품을 살 수 있다. 가끔 당에서 돼지고기와 같은 식품을 배급한다. 쓰레기차에 싣고 와 쏟아 놓은 고깃덩이를 보고 비닐을 뒤집어 쓴 시민들이 항의한다. 총과 칼이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정식은 죽음과 함께 봉쇄된 도시의 소식을 듣기위해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 놓는다.
집 안에 컵라면 용기가 넘치자 정식은 분리수거 하기 위해 쩔뚝거리며 대문 밖에 내놓았다. 봄을 훼방하는 심술궂은 꽃샘바람이 컵라면 용기를 이리 저리 흩어놓았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컵 라면 용기가 굴러다녔다. 정식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정만이 왔다. 전원주택 여자가 연락을 한 모양이다. 정만은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원주택 여자에게 연락처를 남겨 놨다. 정만은 굴러다니는 컵 라면 용기를 모아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통닭 튀김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형 이거 먹어. 통닭이야.”
“ 웬 통닭?”
“형이 좋아하잖아.”
“ 너도 좋아하잖아.”
“ 소주도 샀어.”
“ 함께 먹을래?”
“ 난 됐어. 그리고 이젠 내가 와서 버릴 테니 컵라면 용기는 그대로 부엌에 놔. 버린다고 찔뚝거리며 밖에 나가지 말고”
정만은 다소 다정하게 굴며 말했다.
“함께 먹자.”
정만은 나가려다 말고 정식을 쳐다보았다. 눈길이 제법 다정하다. 정식은 이런 정만의 눈길을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정만은 부엌으로 가서 일회용 컵을 가져왔다. 정식은 조그만 상을 펴고 통닭을 펼쳐놓았다.
작은 눈 끄트머리가 올라간 정식과 정만은 늙은 것도 똑같다. 한 공장 제품이니 다르다 해도 거기서 거기다. 나이가 칠십 줄에 들어서니 점점 더 똑같아 간다.
“이 집을 구하느라 부동산 엄청 돌아다녔어.”
“잘 했어. 고마워.”
“지내기 어때?”
“전기장판이 그래도 따뜻하더라.”
“오늘 여기서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자고 가야겠어. 형과 함께.....”
정만이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 그래. 네가 가져다 놓은 쌀이 있잖아. 그걸로 밥 해 먹자. 참치로 찌개도 끓이고.”
정식이 흥분해서 말했다. 정만은 술이 당긴다며 들이 부었다.
“난 말이야. 형. 내가 이날까지 살면서 가장 고마웠던 때가 언제였던 줄 알아?”
“.......?”
“형이 내 택시 빼주었을 때..... 그것도 형수 몰래 숨겨둔 돈으로 말이야. 그때 형한테 죽을 때까지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형 미안해. 지금은 내 코가 석자라 나도 어쩌지 못하겠어.”
“괜찮아. 마누라도 자식도 다 떠나갔는데 이렇게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나도 아예 보따리 싸가지고 이리로 들어올까?”
“..... 무슨 일 있니?”
“요즘 코로난지 뭔지 때문에 영업이 통 안 되니 이 할망구 밥도 안 차려줘. 그건 괜찮아. 밥이야 내가 차려 먹으면 되지 뭘. 근데 날 무슨 버러지 보듯 하는 거야. 조강지처 버린 놈 치고 끝이 좋은 놈 봤다나 못 봤다나..... 빈정거리며..... 보기 싫어 죽겠어. 나도 그냥 확 엎어 버릴까봐.”
“아서라. 참아.”
“ 형은 아버지가 왜 엄마한테 그 구박을 받으며 살았다고 생각해?”
“ 그거야 돈을 못 벌어서였지.”
“그렇지. 그 놈의 돈 때문이지? 할망구가 구박하는 것도 그놈의 돈 때문이야. 요즘 벌이가 시원찮거든.”
“ 내가 퇴직금 사기 당했을 때 처음 떠 오른 것이 아버지 모습이었어.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좀 애를 쓰며 살았니. 월남도 갔다 오고 사우디도 갔다가 오고.....이제야 말인데 월남을 뽑혀서 할 수 없이 갔던 것이 아니고 내가 지원을 해서 갔던 거야. 사우디 갈 땐 회사 간부한테 뇌물까지 바치면서 청탁했다니까.”
“월남 갈 때 형 빼 달라고 엄마가 돈 싸들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형이 지원했던 거였어?”
“그렇다니까. 노후엔 살만하다 생각했는데 그놈의 퇴직금 뜯기는 바람에 내 인생 종쳤어.”
“형도 참. 그렇다고 일을 저질러.”
“아버지는 평소에는 화를 꾹 참고 있다가 한번 화가 나면 화를 다스리지 못했어. 난 그런 아버지 닮았어. 넌 여자를 좀 밝히기는 하지만 엄마를 닮았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아버지의 아들 형의 동생.....나라고 다르겠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나도..... 나도 그러고 싶다구 형”
정만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정식은 정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끌어안았다. 네가 많이 힘들구나. 오죽했으면 풍 맞아 절뚝거리는 내게 와서 이런 주정을 할까 생각하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 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6년을 견디다 가셨다. 정식은 주방에 쌓아놓은 컵 라면을 보며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전원주택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에 개나리가 환하게 피어났다. 먼 산도 진달래로 울긋불긋 물들었다. 봄이 다가올수록 코로나19 바이러스 소식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중국 우한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포대자루에 넣어 화장터로 보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여자는 분명히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침상이 부족해 병원 복도 맨 바닥에 누워 치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예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방호복을 입고 진료하는 의사들을 보여준다. 의사는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는 내버려두고, 살 수 있는 환자들을 선별해 진료를 한다. 아비규환 같은 도시 모습이다.
강 건너 불처럼 여겨지던 바이러스가 대구 교회에서 밀집 예배를 드리고 나서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교인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여기저기서 바이러스에 걸린 확진자들이 나타난다.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날까 봐 어딘가에 꼭꼭 숨고, 질병본부에서는 교인들을 찾아내려고 교회를 압수수색을 한다. 과천 본부에서 함께 예배를 본 신도들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구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종종 걸음을 옮긴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라는 정부의 호소가 이어진다. 피씨방 노래방에서 확진자들이 나오고 함께 줌바 댄스를 배우던 회원들의 집단감염이 줄을 잇는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들의 사망이 점점 늘어난다.
커엉커엉. 전원주택 개가 짖는다. 개 짖는 소리가 다른 때와 다르다. 그 소리에는 교태가 들어있다. 커어엉 커어엉 꺼르릉 꺼르릉. 저건 틀림없이 발정이 난 개가 짖는 소리다. 틀림없어. 낮뿐만 아니라 밤새 저렇게 온 동네 뒤흔들며 수컷들을 부르고 있어. 이때 비행기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난다. 저건 정글에 공습이 있을 때 소리다. 정식은 신경이 곤두섰다. 눈에서 불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멈춰. 멈추지 못해!”
비행기는 지나갔지만 개는 여전히 짖는다.
“ 총으로 다 쏴죽일 거야. 시팔~~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칼로 발기발기 찢어 죽일 거라구!”
정식은 소리쳤다. 정식이 소리를 칠수록 개는 더욱 더 암내를 풍기며 짖었다. 돌멩이를 들어 담장 넘어 개한테 던졌다.
“제발 그만 해! 그만 하란 말이야!”
정식은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다가 화를 이기지 못해 감나무에 제 이마를 찧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정식이 개를 향해 소리 지르며 욕하다가 감나무에 제 이마를 찧는 모습을 동네 어떤 이는 보고 어떤 이는 보지 못했다. 그랬어도 이렇게 저렇게 말들이 퍼져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 작은 집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교도소에 다녀온 정식의 이력을 알아내 퍼트렸다.
사실 정식은 가끔 총으로 살아있는 것을 모두 다 쏴 죽이고 싶었다. 베트남 정글로 수색 나갔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베트콩이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났다. 수류탄이 터져 정식 눈앞에서 같은 내무반 병장이 죽었다. 제대 날짜를 보름 남겨둔 형님 같은 병장이었다. 정식의 눈에 불이 일었다. 총을 쏘며 뒤 쫒아 갔지만 그곳 지리에 밝은 베트콩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애매한 나무들에게 총을 쏴 댔다. 나무에 총알이 팍팍 박혔다. 애매한 것은 나무만이 아니었다. 마침 그곳을 민간인 가족이 지나갔다. 정식은 총을 쐈다. 가끔 정식은 눈에 불이 일 때면 정글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총으로 다 쏴서 쓰러뜨리고 싶었다.
전원주택 여자와 남자 모두 다 나와서 스쿠터를 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쿠터를 탄 남자는 동네일을 맡아서 하는 이장이다. 정식이 이 집에 이사 온 후 스쿠터를 타고 방문해 이것저것 물었다. 복합행적문화센터 직원에 의하면 무연고자로 되어 있는데 동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 정식은 교도소에 갔다가 오니 아내와 딸이 이민을 가 버렸고, 동생이 가끔씩 들러 보살펴 주는데 그에게 짐을 지워주기는 싫어 무연고자로 했다고 말했다.
전원주택 여자가 스쿠터 탄 남자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지나가도 개가 짖어도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총으로 다 쏴 죽이겠다며 열여덟 육두문자를 쓰는 사람과 어떻게 담을 맞대고 살아요. 날이 따뜻해지면 문을 다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데.....무슨 방도를 내야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서류를 꾸며 경찰서에 진정을 하세요. 그런 절차를 거쳐야 경찰에서 나와 조사를 해요. 요즘은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그런 신고 들어오면 경찰에서도 적극적으로 조사한대요. 왜 있잖아요. 얼마 전 아파트에 불을 질러 6명이나 죽게 한 조현병 환자요. 주민이 여러 번 신고했다고 하잖아요. 그 사건이 난 이후에 경찰도 이상한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요.”
스쿠터 탄 남자가 말했다.
스쿠터 탄 남자가 가고 동네 사람들이 전원주택 뜰에 모여 수군대는 것이 보였다. 어디서 나왔는지 사람들이 제법 여럿이었다. 그들은 정식이 사는 집을 힐끗거리며 보기도 했다. 남창에서 그 모든 것들이 환히 내려다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얼마 되지 않아 동네 모퉁이로 정만의 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정만은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형이 총으로 다 쏴 죽이겠다고 소리소리 쳤어? 여기까지 쫓겨 와 또 왜 그래? 형이 나에게 사준 택시 값도 이젠 거의 다 형한테 들어갔단 말이야. 나 보고 어쩌라고! 응? 형 나도 좀 살자. 동네사람들이 형하고 사는 것이 무섭대. 형 제발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좀 살자구.”
엊그제 사는 것이 힘들다고 울다가 전기장판 위에서 정식과 가슴을 맞대고 쓰러져 잤던, 아침에 밥을 해서 참치 찌개까지 끓여 한 상에서 밥을 먹었던, 따뜻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잘 챙겨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갔던, 그런 정만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사납게 소리소리 질렀다.
“또 한 번만 그러면 동네에서 민원을 넣는대. 그럼 여기서도 더 못 살고 쫓겨나. 아예 일 저지르고 감방에 다시 가든가.”
정식은 무슨 일을 당하면 속으로 삭였다. 그러니 후유증이 한참 가고 어쩌다가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만은 일을 당하면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겉모습은 닮은 모습의 형제지만 내면은 극과 극처럼 달랐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형 나도 죽겠어. 코로난지 뭔지 때문에 택시 손님이 거의 없어. 형 제발 나도 좀 살려줘.”
정만은 춥게 자서 그런지 어째 몸이 으슬으슬하다며 몸을 웅크리며 정식을 쳐다보았다. 물가에 내 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차에 가서 연장 도구를 가져다가 문밖에서 한참을 뚝딱거렸다. 밖에서 잠글 수 있게 잠금 장치를 만들었다. 정만은 현관 대문도 밖에서 잠가놓고 갔다. 정식은 봉쇄된 채 이 집에 갇혔다.
남창으로 정만의 택시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정식은 그가 안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번 풍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나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을 쳐다보는 정만의 눈빛은 차가웠다. 오래 전 우물에 빠졌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식은 목이 아파왔다. 콜록콜록 마른기침이 쏟아졌다. 하루 종일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어선지 마치 티브이 속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튀어나와 감염시킨 듯 열까지 났다. 뉴스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을 말해주고 있다. 정식은 티브이 속에서 마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빠르게 번지더니 이번에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지방으로 확산되었다. 노령인구가 많은 이탈리아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니 화장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군용트럭이 시신 일부를 다른 지방으로 이송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군용트럭 때문인지 거리가 전쟁터 같다. 이태리 신문 한두 면이던 부고난이 10개까지 늘었다고 뉴스는 보여 준다. 티브이에서 하루 종일 재난방송을 하고 있다.
정식은 이제 컵라면 먹을 생각조차 없다. 구역질이 나고 온 몸이 축 늘어졌다. 처음에는 목이 아프다가 통증이 전신으로 옮겨갔다. 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변의를 느꼈다.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데 몸이 휘청했다. 벽을 두 손으로 짚으며 섰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서서 보니 북창 밖이 눈 온 것처럼 하얗다. 봄에 눈이 올리는 없다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목련꽃이었다. 그때서야 북창 밖에 서 있던 나무가 목련나무였다는 것을 알았다. 벽을 더듬어 간신히 북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부풀어 오르던 첫사랑 인애의 젖멍울처럼 막 벌어지기 시작한 꽃봉오리들이 가지마다 가득 매달려있다. 만져보고 싶다. 인애의 가슴을 만졌을 때처럼 보드랍고 따스할 것 같다.
어머니는 인애가 행실이 좋지 않은 다방 마담 딸이라고 함께 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담이 염문을 뿌리던 읍내 남정네와 도망친 후 혼자 남은 인애는 생부한테 가기 위해 전학 갈 거라고 했다. 가기 전날 진달래 가득 핀 동산에서 인애는 가슴을 내밀었다.
“만져 볼래?”
정식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바보.”
인애는 정식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가슴에 대 주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웠지만 조금은 딱딱했다.
“ 잊지 마. 나도 널 잊지 않을 게. 힘들 때마다 널 생각할 거야.”
인애가 정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후 서울로 간 인애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술집에서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다는 소문만이 흘러 다녔다. 비록 창녀가 되었어도 인애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집안에 봉쇄된 채 살고 있지만 정식 역시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정식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인애를 생각했다. 베트남 정글 속에서도 폭격을 피해 숨을 때도 함께 했고 2평짜리 감방에서 8명이 함께 생활할 때도 인애와 함께 했다. 보드랍고 따뜻하고 조금은 딱딱한 인애의 가슴에 대한 기억은 힘들 때마다 정식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주곤 했다.
인애도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정식을 생각했을까. 정식이 인애에게 위로를 받았듯이 인애도 그랬을까. 어디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지만 인애가 자신의 존재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다면 이 험한 세상 왔다가 가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고 정식은 생각했다.
숨 쉬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호흡이 가팔라지고 기침이 쏟아진다. 내장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기침을 했다. 숨이 멈출 것 같다. 그런데도 기침은 터져 나온다. 정식은 목을 감싸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북창에서 목련꽃이 빤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얀 우주복 차림의 방역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대구에서 사는 M씨 부부가 대구 T번째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딸네 손주를 봐주러 수원에 올라왔다가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 방역당국은 역학조사를 벌려 35명의 접촉자를 찾아냈다. 그들 중 수원역에서 영통까지 M씨 부부를 태워다 준 택시운전사도 끼어있었다. 택시운전사는 자가 격리 중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아 수원 H번째 확진자가 되었다. 역학조사반은 H번째 확진자인 택시운전사의 동선을 추적하다가 그가 형이 있는 곳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역학조사반은 접촉자를 자가 격리를 시키기 위해 이 집에 들이닥쳤다.
집은 안에서 열지 못하게끔 밖에서 쇠고리로 잠가 놨다. 고리는 새로 만들어 단 듯이 페인트칠 하나 벗겨지지 않았다. 고리를 벗기고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부엌 쪽 북창 아래 쓰러져 죽어있었다. 죽은 지 삼사일이 지났을 거라고 역학조사반은 추정했다. 그는 곧 구급차에 실려 화장장으로 갔다. 곧이어 소독 장비를 멘 방역센터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집 전체를 구석구석 소독했다. 안개처럼 소독약이 집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경기도에서 코로나19로 고혈압 당뇨를 앓고 있던 75세 남성이 사망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남성은 수원 N번째 택시운전사의 형으로 형의 집을 방문한 택시운전사에 의해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남성은 철저한 거리두기로 대면자는 없었습니다.”
발표 도중 노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방역당국 사람이 잠시 고개 숙여 목례를 했다.
[출처] 목련꽃 필 무렵 (전문)|작성자 강명희
<목련꽃 필 무렵> 창작노트
작년 이맘 때였다. 농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할머니가 밭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제초제며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 농법에 반기를 드신 것이다. 풀이 무성하니 땅 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모두 외면한다. 그때 나보다 한살 적은 동네 친구 하피디가 자기네집 앞에 있는 150평 되는 밭을 밭주인에게 말해 빌려주었다.
밭 옆에는 전원주택 두 채가 있었다. 한 채는 하피디 집이고 한 채는 어떤 남자가 혼자 살았다.
대봉시가 익어갈 무렵 그 남자가 이사왔다. 그 후 하피디의 말에 의하면 불도 때지 않은 집에서 컵라면으로 연명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고 했다. 어쩌다 밖에 나와 개가 짖어도 비행기가 지나가도 삿대질을 하며 쌍욕을 한다고 했다. 가끔 택시 운전을 한다는 동생이 들락인다고 했다.여름이 되면 문을 열어놓고 살아야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더 걱정이었다. 내가 빌린 밭이 그 남자네 앞마당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한창 조현병 환자가 아파트에 불을 질러 많은 사상자가 난 사건이 매스컴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목련이 흐트러지게 핀 어느 날 밭에 갔더니 그 남자가 죽어 새벽에 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
며칠동안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았고 티브이 불빛만이 어린거렸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죽은 지 며칠이 되어 발견된 것이다. 그때 대구 신천지교회발 코로나가 세상에 무섭게 번지고 있었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 집을 소독하고 갔다고 했다.
남자의 죽음이 가슴을 후려팠다. 동네에선 코로나로 죽었는지 뇌출혈로 죽었는지 영양실조로 죽었는지 추측의 말들이 분분했다.
저렇게 살다가는 인생도 있구나. 택시운전사 동생과 컵라면과 가끔씩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욕설과 동네사람들의 시선과, 목련꽃 그리고 코로나....그걸 어떤 식으로라도 엮어보고자 했다
있는 그대로 진전되는 상황을 적어내려가니 한편의 소설이 되었다.
보통 소시민이었을 그 남자가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길이 소설속이지만 너무나 처절했다. 그래서 목련꽃과 첫사랑의 추억을 삽입하고 제목을 <목련꽃 필 무렵>이라고 붙이니 그래도 좀 나았다.그런 아픔 속에서 <목련꽃 필 무렵>이 태어났다.
내 세 번째 책 제목을 <목련꽃 필 무렵>으로 하려고 표지화까지 받아놨는데 막판에 <65세>로 바뀌었다.
그 남자는 내게 소설 한편을 던져주고 갔다.
뒤늦게 그 분의 명복을 빈다
"누나 난 말이야. <목련꽃 필 무렵>이 가장 찡해."
동생이 내 책을 두 번째 보고 있다며 말했다.
페친이신 배채진교수님이 그분의 페북에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셨다.
"저는 <목련꽃 필 무렵>이 더욱 머리에 그려집니다. 제목을 보고 짐작하거나 연상할 수 있는 흐름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말미, "이 남성은 철저한 거리두기로 대면자는 없었습니다. 노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람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결한 이 마무리 말 이전에 글(사건, 사태) 흐름이 여러 줄기로 흘렀습니다. 생각할 게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출처] 목련꽃 필 무렵-창작노트|작성자 강명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