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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라는 자못 흥미로운 부제의 이 책은 그 내용 또한 일상적인 인식을 뒤트는 방식으로 논의를 이끌고 있다. 인류학과 생물학 등 다양한 주제들을 서로 엮어 저자의 관점에서 현재 인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을 이해하는 기존의 주류 담론들은 이미 거대하게 구축된 기득권 유지에 활용되고 있기에,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새롭게 만든 용어로 대체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트러블과 함께하기> 역시 복잡하게 얽힌 갈등(트러블)을 해결하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공존할 것을 제안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된다.
저자의 제안은 흥미로우면서도 선뜻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예컨대 흔히 과학이론을 토대로 이루어진 서사물을 ‘SF’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약자(略字)로 이뤄진 다양한 표현들 가운데 ‘실뜨기(string figures)’를 그 대안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 원형의 긴 실을 여러 번의 손동작으로 형태를 만들어 역시 상대에게 손동작을 이용하여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도록 하는 것이 실뜨기이다. 이처럼 ‘실뜨기는 주기와 받기이고, 만들기와 부수기이고, 실을 줍기와 떨어뜨리기’의 과정으로 구축된다. 이러한 실뜨기가 다양한 민족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여, ‘실뜨기(SF)’야말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나가는 놀이임을 적시하고 있다.
나아가 ‘심각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에 직면한 우리가 이 긴급한 시대를 어떻게 사유하고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저자 나름의 진단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질학적 시대로 홀로세에 해당하는 지금의 현실을 ‘인류세’나 ‘자본세’로 명명하는 것조차 적당하지 않다는 전제로, 저자는 ‘쑬루세’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지질학적인 시대 구분이 인간 중심의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지구상에 공존하고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하여 ‘함께 살기’ 위해서는 ‘위테로운 시대 안에서 진행 중인 복수종의 함께 되기 이야기와 실천’을 이해할 수 있는 ‘쏠루세’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생물학적 계통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자/자식’의 관계가 아닌, 서로 다른 종들과의 ‘친척(kin)’ 맺기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제안이 마지막 5장의 5대에 걸친 ‘카밀 이야기’라는 ‘SF’로 귀결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카밀’은 다른 생물들과 ‘트러블 없이 함께하기’를 실천하기 위한 저자의 상상력을 발휘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2025년부터 2425년에 이르기까지 400년 동안 5대에 걸친 서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곧 ‘2025년 카밀 1의 탄생과 2425년 카밀 5의 죽음 사이 단지 몇 가닥의 실과 매듭을 따라 다섯 카밀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상(SF)이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인데, 책의 속표지에 있는 기록을 통해서 그 까닭을 유추할 수 있었다. ‘5, 6, 7장은 저작권 계약상의 문제 때문에 번역본에는 포함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제시한 카밀의 이야기는 4장에서 제시한 ‘친척 만들기’의 구체화된 이야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는 정작 ‘친척 만들기’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에 제시된 ‘카밀 이야기’가 앞부분과 긴밀한 연관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고 이해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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