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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을 찾아 그 내용을 더듬는 과정은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 과정에서 피해를 겪은 이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1980년에 광주에서 자행되었던 비극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에 이어, 작가 한강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제주에서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작품을 소설로 다뤘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의 제목은 그 비극적인 역사와 '작별하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의 ‘슬픔’을 온전하게 느끼면서, 담담하게 ‘역사의 진실’을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은 밀물이 밀어닥치는 바닷가의 무덤에 대한 ‘그 도시의 꿈’을 꾼 ‘경하’가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입원한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도를 찾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된다. 경하가 제주도를 찾은 것은 ‘처음 그 꿈을 꾸었던 밤과 그 여름 사이의 사 년 동안 ...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하고,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였다. 공방에서 목공예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 입원한 인선이 제주도의 집에 남아있는 새를 돌봐주기를 부탁하면서, 경하는 그날로 출발하여 때마침 내린 폭설을 헤치고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경하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폭설이 내려 길조차 찾기 힘든 여정에서 휴대폰마저 잃어버리고, 마침내 도착한 인선의 작업실에서 경하는 부상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단전과 단수로 완전히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인선이 부탁한 새의 주검을 거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외딴 집에서 지쳐 쓰러진 경하에게 찾아온 인선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마도 경하의 무의식에서 진행된 상황의 전개라고 짐작되는데, 현실인 듯 아닌 듯 찾아온 인선이 들려주는 가족사는 그대로 제주도의 비극적인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제주도 주민 전체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독자들은 작가가 들려주는 그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서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박혀있는 역사의 현장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2014년 6월에 책의 두 페이지를 썼’으며,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다시 3년 동안의 집필 과정을 거쳐 완성했으니, 작가가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 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다고 하겠다. 작품을 마친 다음 페이지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들’의 목록을 보면서, 생생한 증언들로 이뤄진 자료 속에서 작가가 고심했을 시간들을 얼마쯤 짐작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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