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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책(貰冊)’이란 돈을 주고 책을 빌려보는 것을 일컫는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20여 년 전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도서대여점의 옛날 방식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만으로도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정보를 얻는 통로 가운데 핵심이 바로 책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책은 무척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책을 소유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세책업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확대되었고, 비싼 책을 적은 가격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처럼 공공도서관에서 누구나 책을 무료로 빌려볼 수 있기 전까지는, 책을 읽고 싶다면 직접 구입하거나 혹은 누구에겐가 빌려봐야만 했었다.
이처럼 세책은 제한된 양의 책을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지식의 대중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하겠다. 저자는 조선시대 독서문화에 관심이 많아 그 방면에 여러 편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세챡업이 한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주 등 세계 각지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처음에는 상류층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던 도서대여점이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과 일반 대중들로 이용자들이 확대되고, 그곳에서 가장 많이 대여된 책이 바로 소설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조선시대 세책업과 상업적 출판(방각본)이 소설의 창작과 독자의 확산에 기여를 했다는 문학사적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저자에 의하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18세기에 세책업이 새롭게 등장하여 발전하고, 인쇄기술이 발달하여 책값이 싸지고 더욱이 무료로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확대되면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하여 각종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에는 ‘책의 위기’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및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메리카중남미와 북미,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모두 13개 국가의 세책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미주 대륙과 아프리카는 유럽 제국주의의 확산과 함께 도서대여가 식민지 문화의 하나로 이식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세책을 통한 지식의 확산은 대중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세책업이 출현하고 발전했던 시기는 대체로 18세기 무렵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전까지 지식이나 정보가 소수의 특권 계층에게 독점되어 있었다면, 이 무렵부터 정보의 독점 구조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면서 대중들의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조선 후기 소설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책’이라는 현상에 주목하였고, 그 이후 저자는 일본과 유럽 등지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도서대여점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각종 자료를 모으면서 시작된 세책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약 20년 동안 지속되었고, 다양한 자료와 사례들을 정리하여 엮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세계 각지를 답사하면서 세책점들이 존재했던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아울러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저자의 열정이 책의 곳곳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그동안 ‘세책’을 조선 후기 소설 문화를 주도했던 특수한 현상으롬 이해했던 기존의 상식을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어느 정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사회에서나 지식에 대한 욕구가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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