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외1편
윤인자
바람만 드나드는 사람의 온기가 끊긴 집
말문이 막혀버린 돌담 옆에
기다리다 지친 나무 대문은 눕고
문고리는 녹이 슬어 잠들었네
우리 남매들의 유년의 흔적이
아직도 담벼락에 낙서가 남아있고
토방엔 짝 잃은 고무신 한 짝,
까맣게 그을린 엄마의 부엌은
불 꺼진 지 오래 썰렁하기만 하다
식구들의 옷을 말리던 빨랫줄은 끊어지고
삐딱한 바지랑대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고추잠자리가 앉아 낮잠을 자고 있다
행주가 닳도록 닦던 반질반질하던 장독대
황사 비바람에 먼지만 수북하고
사금파리 조각들만 날을 세워 뒹군다
어디에서 왔는지
근본도 없는 잡초들이 무성한 마당에는
철 따라 꽃이 피고 벌 나비가 오는데
헛간에는 늙은 지게와 작대기가 나란히
금슬 좋은 부부처럼 등을 맞대고 서있다
오늘도 바람이 지나다가 안부를 물으면
관절 앓은 대문이 삐걱삐걱
빈집을 지키며 시끄럽게 울어댄다.
낙지 탕·탕·탕
어머니가 멱살을 잡고 아래로 쭉 훑어
도마 위에 탕·탕·탕 칼 총질을 하면
여덟 개의 발이 순간에 수십 개로
잘리는데도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칼이 내리칠 때마다 도륙되는 사지
꼬물거리며 기어이 바다로 가겠노라고
무작정 도마를 기어나가는 꼴이란
오래 진화한 본능이지만
칼등이 쓱 도마 위를 긁고 지나가면
어느새 상추 잎 깔린 접시위에 올려지고
잘린 상처에 참기름을 발라주고
마늘과 고추 얹으면 쓰라림의 아우성
화염지옥 같은
초고추장에서 한 번 더 벌겋게 구르며
살아 보겠다고 빨판을 쩍쩍 붙이며
용을 쓰는 모습이
젊은 한 때의 내 모습을 닮았다.
2011년 (리토피아) 등단 신인상수상
시집 : 『에덴의 꿈』『 스토리가 있는 섬 신안島』
공저 ; 『바다에 길을 놓는 사람들』『해당화문학』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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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자 시 2022 '시에' 가을호 빈집 외 1편
윤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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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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