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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제7~8구간 (계리재~봉대산~부련이재~무량산~큰재까지
<첫째 날> 계리재~봉대산~부련이재)
...............언 제 ; 2013년 12월 21일 (서울 -5,8도, 진주 -2,3~5,6도 ,맑음)
...............누구와 : 구본영,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황성자 (이상 6명)
...............산행시간 ; 6시간 30분
...............휴식, 식사, 알바 ;
<06;00> 서울 남부터미널/진주행 시외버스/ 출발
<07;47~08;00> 인삼랜드 휴식
<09;32> 진주 시외버스터미널 도착/기사(신상환 ; 010-9078-0220)만남
10;25 계리재 출발
10;36 도로에 내려와서 다시 승차/황별 카메라 분실(다시 찾음)
10;45 진주축협 생육사업장 간판 앞
10;57 정촌면 2차선 도로(봉전고개?)
11;15~11;20 무선산 갈림길-무선산(277.5m)정상 왕복 후 출발
12;27 돌장고개/우측도로 따라 4분 쯤 가다가 U턴
12;43 돌장고개 복귀/낙남정맥 표지목
12;55 무명정상/우측 채석장
12;58~13;05 밤나무 단지
13;20~13;37 봉우리/점심(김밥)후 13;38~13;43까지 5분간 알바
13;50 감나무 단지
14;05~14;13 임도(客宿峙)?/골이 깊고 멀어서 이 고개를 넘으려면 자고 넘었다는 고개)
14;30~14;35 휴식/부련이재 6.87km 표지목
14;58~15;05 헬기장(310m봉)
15;14 봉대산 3km 표지목
15;46 부련이재 2.67km 표지목
16;02~16;15 봉대산/헬기장/고성마을 방향
16;41 51번 송전탑
16;24 낙남정맥안내지도
16;30 52번 송전탑
17;05 부련이재
<17;30> 장자골 농원민박(펜션)-고성군 상리면 고봉리 hp;010-4561-1239 최문정/숙식
<산행기>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승합차를 이용하여 다니다가 이번엔 고속버스로 이동한 후 현지 차량 이용하기로 하고 6시 정각에 서울을 출발한다. 우등 시외버스가 생각보다 넓고 고급스럽다. 특히 안전감이 있고 편안하여 이내 모자란 새벽잠을 청한다. 중간 휴게소인 인삼랜드에서 잠시 쉬었다가 서울 출발 3시간 30여 분만인 9시 32분에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 예약한 신상환(010-4561-1239)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신상환 기사는 훤칠한 키에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으로서 첫눈에 보아도 상당히 호감이 가는 인상이다. 진주 시내를 벗어나 10시 15분에 계리재에 도착, 예상했던 대로 10시 30분이 못되어 낙남정맥 제7구간을 출발한다. 철 계단 입구에서 첫 기념 촬영을 하고 얕은 능성이를 걸어 12여분 후에 다시 도로에 내려섰는데, 뒤따르든 황별씨가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잊어버려 되돌아갔단다. 잠시나마 박종님은 그와 함께 카메라를 찾으려고 동행하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해한다.
혹시나 해서 대기시켜 놓았던 차량에 올라, 원 출발 지점인 계리재로 다시 돌아오니 황별씨는 잃었던 카메라를 찾아 손에 들고는 큰 눈방울을 굴리며 안도한다. 지금부터 오늘 하산지점인 부련이재에 도착하려면 오후 5시 30분을 전후해야할 텐데, 요즘 같은 이 시간대는 어둠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왕 승차한 김에 본 정맥길이 통과하는 2차선 도로 (봉전?)고개까지 간다면 30~40분의 시간을 벌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진주축협 생축사업장’간판 앞을 그대로 지난다.
정촌면의 2차선 고개에 도착할 때는 11시도 채 되지 않았다. 아마 봉전고개(?)인 듯하다. 초입부터 빽빽하게 우거진 토종 솔숲을 거쳐 무선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여기서 좌로 틀어 돌장고개로 향하는데 어제 저녁 과음을 하셨다는 박찬님은 몸에 쌓인 노폐물을 빼려는지 앞서 내 뺀다.
12시 반이 가까워 올 무렵 돌장고개 1002번 국도에 내려서는데, 복잡하게 얽힌 진주-통영간 고속도로에는 달리는 차량의 엔진 소리가 무척 요란하다. 국도를 따라 우측으로 3~4분 후에 고속도로 지하도를 U턴하여 원 정맥길에 복귀하니 12시 40분이 넘었다. 그런데 이곳 표지목에는 부련이재까지 10.37km가 아닌가. 멀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부련이재까지 3.5~4.0시간 가량을 계산하고 있는데, 실제 10km가 넘는다면 5시간 가까이 계산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돌장고개에는 경남 문화재 자료 179호로 지정된 ‘두문리 경계비석’이 있다. 지금은 진주시(옛 진양군)와 사천시(옛 사천군)의 경계석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비석은 천태산의 마구할미(마고할미)가 물레질을 하기위해 바위 3개를 갖고 사천군 큰골(두량, 즉 서쪽)에서 오다가 하나는 사천군 구암 숲에, 또 하나는 고성군 영오에 놓고, 남은 하나는 지금의 자리에 꽂아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즉 마고할매가 시루공이를 지고 가다가 이 고개에 놓고 간 것이 유래되어 ‘돌짱빼이’가 ‘돌장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에 쫓겨 이 경계비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12시 55분에 무명산 정상, 오른쪽 낭떠러지 아랜 온통 산을 깎아 벌거벗겨 놓은 채석장이다. 자연은 훼손하기는 쉬워도 복구하는 것은 어려운 터, 아파하는 산흔을 뒤로 하고 밤나무 단지를 지난다. 그리고 20분 후 비교적 양지바른 무명봉에서 꾸미씨가 새벽에 말아온 김밥보자기를 편다.
오늘 아침식사는 황별씨가 준비한 김밥으로 해결하고, 점심까지 여성 대원들에게 신세를 지고 나니 남성 대원들은 마냥 황공하기만 하다. 그런데, 박종님은 오히려 다음번엔 무슨 반찬에 무슨 밥을 어떻게 싸서 오라고 큰소리친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저렇게도 표현하는 구나하고 한 바탕 웃는다.
이렇게까지 큰 소리치고 앞서 출발하던 박종님, 점심을 먹고 난 뒤의 식곤증일까. 무의식으로 뒤 따르던 모든 대원들이 하마터면 제대로 알바까지 할 뻔 했다. 여기에 황별씨가 리본을 보고 그 길이 맞다고 맞장구치면서 이번 정맥팀에 공헌(?)까지 했다고 자부하였다니 우리는 또 한 바탕 배꼽을 잡는다. 이번 코스는 군데군데 경관 좋은 곳마다 쉼터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업 다운도 부드럽다. 웃으며 얘기하며 감나무 농원과 임도를 차례로 지나 부련이재 6.87km 표지목 앞에서 한 모금 커피로 갈증을 푼다.
310m(헬기장)을 지나 봉대산 오르는 길은 마냥 가파르다. 오후 4시가 넘는 사천 409m의 봉대산 정상, 까마귀 떼가 하늘을 돌며 ‘꺅꺅’거린다. 언제 보아도 반갑지 않은 까마귀 떼들이 무리를 지어 짓는걸 보면 어디 먹잇감이라도 있다는 걸까. 아니면 서산마루에 기댄 태양빛도 광채를 잃고 어두워 가고 있으니 빨리 하산하라는 걸까. 그래도 우린 봉대산 정상 표지석에서 마지막 인증샷을 누른다. 곧 이어 헬기장, 고성마을 표시 따라 오후 5시를 넘기면서 목적지인 부련이재에 도착하니 신상환 기사께서 기다리고 있다.
해도 넘어간 스산한 부련이재, 싸늘해진 아스팔트위로 찬바람이 스친다. 신상환 기사는 숙소를 여기에서 10여분 정도 떨어진 ‘장자골 펜션’으로 안내한다. 꼬불꼬불한 작은 마을 모퉁이 길을 돌고 또 돌아, 마치 산 중 암자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산 속을 오른다. 그리고 펜션 앞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가족단위로 여행 와서 모닥불을 피우며 고기를 굽는 풍경이 한눈에 보아도 정겹다. 우리도 그 중 한 동을 배정 받아 박종님이 준비한 과메기를 펼치고 발렌타인 21을 따르며 무사완주의 보람을 함께한다.
넓은 정원에 갖가지 꽃나무와 정원수가 가지런한 이곳, 이 집 주인장은 15년 전부터 이 펜션 터를 가꾸어 왔단다. 여름에는 특히 경치가 아름답고 숲과 물도 좋으니 많이들 놀러 오라는 얘기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런데 토종백숙 2마리에 깔끔한 유기농 반찬을 반도 먹지 못하고 숙소로 가져와서 수다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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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부련이재~추계재~무량산~큰재
...............언 제 ; 2013년 12월 22일 (서울 -4,6도, 진주 -0~2도 ,맑음)
...............누구와 : 구본영,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황성자 (이상 6명)
...............산행시간 ; 7시간 35분/3명 알바(50분)별도
...............휴식, 식사, 알바 ;
<05;00>-기상 <06;00>-식사
07;00 부련이재 출발
07;11 정상/묘3기
07;14 농로/문고개
07;40 능성에서 일출
07;55 백운산/삼각점
08;12 46번 송전탑
08;33 임도/야베스농장 입구
08;47 임도 횡단
08;59 배곡고개/2차선(새 포장도로)
09;20~09;33 정상/천황산?/암반/경치 좋음/휴식
09;48 370m봉
10;03~;10;08 추계재/도로횡단
10;52 송전탑
11;05~11;25 묘3기/양지바름/휴식-독수리 떼(약 15마리)
11;40~11;45 대곡산/삼각점/통영지맥 분기점
11;55 목장 철조망/우
11;58 도로/좌-목장정문/우
12;39 532m봉/우
12;51~13;05 화리치/농로
13;09 큰재 1.5km, 정상 0.5km 표지목에서 우측 정상으로
13;32~13;53 무량산 갈림길 왕복/13;35~13;49(무량산 정상/삼각점/산불감시초소/전망)
14;08 전망바위
14;16 돌 많은 정상/좌-여기서 알바하기 좋음(종, 꿈, 별 알바)
14;26 임도
14;35 큰재 도착 (경남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1-1)
<16;00~16;45> ‘인성식당’(경남 고성읍 기월리 119-8. Tel 055-673-2141(노봉순)
<16;45~17;10> ‘고성박물관’은 늦어서 관람 못하고 가야 고분만 관람
<17;25~17;40> ‘남악서원’ 관람
<18;40> 진주시외버스 출발
<22;05> 서울 남부터미널 도착/해산
<산행기>
이번에도 새벽 5시 기상, 6시 식사, 7시에 부련이재를 어김없이 출발한다. 아직은 사방이 어둠침침한데 동쪽하늘에서만 대자연의 역사가 시작된다. 일출도 어느 한 순간에 그냥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노력과 워밍업이 필요한 것. 세상만사 무엇 하나 공짜로 떨어지는 것은 없나보다.
출발 10여분 후의 무명의 정상, 가족묘 3기를 지나 15분 후에 농로에 내려서니 여기가 문고개이다.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발 위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다시 오르막,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에 산 이름 중에서 백운산이란 이름이 많기로 한다면 둘째가라면 억울할 게다. 우리는 이왕이면 백운산 정상에서 일출까지 보려고 열심히 가는데, 그만 100여m 눈앞에 두고 중도에서 일출을 맞는다. 7시 40분에 눈부신 태양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능성길따라 아침 8시 30분쯤에 임도에 닿는데 야베스농장 입구이다. 이 임도를 우측에 두고 산으로 들쑥날쑥 9시에 아스팔트 2차선 도로에 내려선다. 좌측 영현면 봉발리와 우측 상리면 망림리를 잇는 배곡고개로서 아스팔트길도 새로 단장한 듯하다.
천황산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숨이 턱에 닿는 듯 20분정도 치고 오르니 양지바른 암반, 배낭을 풀어 제치고 갈증을 푼다. 어디서니 쉴 때면 커피 잔을 들이대는 꾸미씨, 산중 정상에서 사방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마시는 커피 맛, 정말 일품이다. 이어 370m봉을 지나서 10시를 넘기면서 추계재 도로를 횡단한다.
이제 대곡산 정상을 향하여 기진맥진 가는 길인데 무심코 양지바른 묘 등에 얼핏 보니 ‘웬 사람들이 이 시간에?’하고 착각할 정도, 그런데 독수리 떼들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독수리 떼들을 본적이 없다. 약 10여마리는 되어 보인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우리 모두가 잠시의 여유를 갖고 목을 축이는 데, 대구에서 온 정맥팀도 이곳에서 만난다.
11시 40분의 542.9m의 대곡산 정상, 낙남정맥 최남단에 위치한 봉이며, 통영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고성군 상리면과 대가면의 경계이며 삼각점과 비닐로 코팅한 ‘대곡산’표지판이 쓸쓸하게 매달려 있다. 그리고 한발 건너 띄어 통영지맥 분기점이란 표시가 백색 A4 용지에 코팅되어 초라하게 나풀거린다.
여기서부터 낙남정맥 방향을 왼쪽인 동북으로 틀어 진달래나무 군락을 빠져나와 목장 철조망을 따른다. 그리고는 목장정문에서 우측으로 순탄한 길을 가나보다 했는데 웬 걸, 코스는 다시 왼쪽으로 틀어 532봉을 치고 오른다. 이틀째 산행에서 남은 에너지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다. 12시 40분에 정상을 치고 화리치에 내려서니 오후 1시가 된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무척 업 다운이 심하다. 이제 마지막 無量山 정상으로 향한다. 날씨도 쾌청하고 서울 기온에 비해 등산하기 좋은 5,6도 쯤 되나보다. 능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섬들이며, 솔바람, 굴곡진 도로들이 농어촌 풍경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오후 1시 40분, 무량산 정상에 도착하여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는 남해 바다의 비경에 매료된다.
681.4m의 無量山은 경남 고성의 진산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이름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닌 곳이다. 누군가 무량산은 ‘다정다감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산세는 말뚝이의 탈을 쓴 오광대의 모습이며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외모는 김을 매는 농부의 미소를 닮았다’고 까지 하였다.
정상 삼거리에서 암능을 따르다가 군데군데 전망대도 들려 절경도 즐긴다. 오후 2시 16분의 마지막 돌덤이의 전망대, 이곳에서 큰재까지는 좌측으로 급히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큰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5분이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 금방 뒤따라야 하는 종,꿈,별이 알바를 하고 있고, 기사도 위치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럭저럭 3시 40분에 일행 전부를 태운 기사는 고성읍 ‘인성식당’앞에 멈춘다. 때늦은 점심을 먹고, 고성 古墳을 관람한 후 진주 ‘남악서원’을 찾는다. 어둠이 막 내려앉는 5시 40분이다. 급한 김에 남악서원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마구 두드리니 대문은 굳게 걸어 잠긴 채 대답이 없다. 그냥 돌아서기도 아깝고 내친김에 옆에 있는 쪽문을 두드리니 젊은 모녀가 황급히 맞이한다. 그러나 관리인이 출타중이어서 본청의 영정들은 관람하지 못하고 대충 아낙네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南岳書院은 1983년에 경남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된 곳이다. 1919년에 이 지방 유림들이 경주의 西岳書院을 본떠 이름 지은 書院으로서 원래는 680년 무렵 창건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金庾信이 이곳에서 꿈속에 나타난 신령에게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위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祠堂에는 金庾信과 崔致遠의 영정, 홍유후(弘儒候), 설총, 문창후(文昌候)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고 하는데, 走馬觀山이라 하였던가.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관리인도 퇴원하고 갈 길도 멀어 대충 마무리하고 진주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오후 6시 40분, 진주시외우등버스에 오르자마자 이틀간의 지친 몸은 금방 긴 잠으로 빠져든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할 때는 10시 5분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