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편견문학상 심사평_황정산
심사위원 : 황정산, 구모룡, 박우담 시인
자기만의 독창성을 확보한 함축적 서정시
황정산(문학평론가)
본심에는 두 시인의 작품들이 올라왔다. 두 시인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경향을 보여주었지만 모두 시의 경지를 새롭게 열 만한 훌륭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오랜 고심과 논의 끝에 복효근 시인의 「중심의 위치」 외 67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다른 한 시인의 작품들 역시 삶에 대한 사유와 지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수작들이었다. 하지만 서정성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준 복효근 시인의 작품들이 ‘시와편견 문학상’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합의했다.
복효근 시인의 시들은 “자기만의 독창성을 확보한 서정적 시인을 우선해서 뽑는다.”는 시와편견 문학상 운영 준칙에 아주 적합한 작품들을 이번에 선보였다. 특히 그의 시는 짧은 시 형식으로 정서적 깊이에 도달하는 서정시의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시가 길어지고 난삽한 언어의 읽기 힘든 산문시가 유행하고 있어 시가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효근 시인의 시들은 우리 시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함축성이다. 은유를 이용한 이런 의미의 확대 과정을 통해 시는 일상어의 폐쇄적이고 상투적인 답답한 의미의 울타리를 넘어 말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우리의 굳어진 사고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다. 이것이 바로 서정시가 가지는 힘이다. 이런 힘을 복효근 시인의 시들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심사위원으로서 큰 즐거움이다. 복효근 시인의 수상을 크게 축하드린다.
시와편견문학상 심사평_구모룡
단형 서정시를 변주해 소통과 감응의 효과 극대화
구모룡(문학평론가)
응모한 서른네 명의 작품 가운데 예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올라온 심사 대상은 세 건이었다. 이를 두고서 시행한 <시와편견문학상 운영위원회> 선호도 조사를 반영하여 최종 「중심의 위치」 외 67편과 「창문의 기분」 외 58편을 남겼고, 이를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모두 우리 시문학 발전에 관여할 자질을 갖추었고 나름의 개성과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후자의 경우, 사물과 사건을 사유하는 시편을 구성했다. 거듭 의미를 반추하고 이를 반복 리듬으로 이끄는 과정이 진지하고 구체적이다. 다만 일정한 패턴이 형성되면서 시적 긴장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으나 이를 의도한 시법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본 문학상이 요구하는 서정적 지향과 감응의 확장이라는 방향을 충분히 반영하진 못하였다. 전자의 경우, 단형 서정시를 다채롭게 변주하는 시적 과정을 보여주었다. 아포리즘에서 사물과 교응하는 서정 양식으로 그 진폭을 확대하면서 소통과 감응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시적 성취가 <시와편견문학상> 제정 취지에 크게 부응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심사 과정을 거쳐 복효근의 「중심의 위치」 외 67편을 제2회 <시와편견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최근 우리 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난해한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사유화된 표현이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경향이 아니다. 한 마디로 시를 통한 사회적 가치의 형성이라는 측면이 약화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효근의 단형 서정시가 지니는 운동성은 주목의 대상이다. 서정은 개별 발화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타자와 외부를 향할 때 그 의의를 발휘한다. 이는 자기만의 미적 성채를 짓는 일이 아니며 이웃과 더불어 공감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사회적 행위와 결부한다. 사물과 만나고 타자와 소통하며 포착한 감응의 사건을 함께 나누는 일이 가지는 의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개성과 특이성을 바탕으로 하되 미적 위계를 지향하지 않고 시적 공동체를 꿈꾸는 복효근 시인의 수행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수상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더 정진하기를 기원한다.
당선소감_복효근
시를 시답게 하는 서정성과 진정성의 지지에 감사
복효근 시인
시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던 그 절망 섞인 목소리들이 언제냐는 듯 잦아들고 지금 시는 만화방창입니다. 수많은 시 전문지가 생겨나고 인터넷 사용의 보편화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듯합니다. 리얼리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와 지향을 가진 시들이 백화만발입니다. 그 가운데 한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의 꽃들이 시단을 덮는 듯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는 열망으로 미래의 시인들이 여기에 복무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렇게 우리 시단이 더 풍요로워지고 다채로운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지점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적으로 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시를 시답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무시되거나 폄하되는 것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언젠가부터 시가 산문화되어 가면서 난삽해지는 경향을 봅니다. 요설을 시적인 수사로 생각하거나 난해한 표현으로 언어로 독자와의 소통을 도모하지 않는 것을 개성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도 목도하게 됩니다. 서정성을 낡은 유산으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단에 길지 않으면서도 깊고, 난해하지 않으면서 서정성과 함께 진정성을 잃지 않는 시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번 수상작으로 선정된 필자의 원고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쓰인 시편들입니다. 이러한 흐름 혹은 지향만이 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람직한 시가 어떤 것인가 하는 모색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수상은 이러한 작업에 대한 지지와 응원 그리고 격려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필자뿐 아니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많은 시인들에게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눈길을 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항상 관심과 격려를 주시는 이어산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