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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독
장현숙
“저 아파트 참 사연도 많지.”
어머니가 병원에서 나오면서 큰길 건너 공사 중인 아파트를 보면서 푸념했다. 도심 한복판에 39층 아파트가 들어서리라고 누가 감히 짐작했겠는가? 아파트를 처음 지을 때만 해도 변두리를 개발하여 신도시를 만들어 내곤 했다. 원도심은 도리어 공동화 현상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으니까. 우리 집은 그 도심지 변천사의 산 증거물이다.
미군 부대에서 지프를 운전했던 아버지는 그 후 시내버스 기사로 일했다.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버스 한 대를 사서 그 회사에 지입 차량으로 운수업을 시작했다. 막내 경호가 태어났을 땐 부촌인 S 동에 번듯한 2층 양옥으로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눈빛을 헤아리고 효경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그 집에서 몇 년 살았어요?”
“너 아버지 치매 걸려서 경호 집에 가기 전까지 살았으니 한 45년 살았네.”
92세 어머니는 살아온 세월의 반을 보낸 그 집에 대한 추억과 회한이 몰려왔다. 큰딸 인경이가 자기 방이 생겼다며 2층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오르던 모습. 이사한 다음 날부터 친구를 불러들이던 둘째 효경이. 무엇보다 막내 경호의 돌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냥 스위트홈 일 줄로만 알았던 그 집이 이렇게 가족 간에 화근이 될 줄이야!
우리 가족에게 그 해 첫눈은 눈 폭탄이었다. 아침부터 펑펑 내리기 시작한 눈은 삽시간에 화단의 배롱나무에 하얀 눈꽃을 피웠다. 마당에선 강아지가 껑충껑충 날뛰었고 어린 경호가 강아지를 따라다니며 뒤뚱거렸다. 어머니는 귀가할 가족들을 위해 마당에 길을 내고 있었다. 대빗자루가 지나간 자리는 모세의 기적같이 하얀 눈이 양옆으로 나뉘었다. 그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사모님 큰일 났습니다.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사고가 났습니다.”
운전 경력 20년 아버지도 마의 고개 시티재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우리 집에 내리던 새하얀 눈은 순식간에 시커먼 먹구름으로 변해버렸다. 자동차 보험 체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때인지라 사고 처리는 적막강산이었다. 파손된 버스만 보상받았다. 아버지의 치료비는 물론 다친 승객에 대한 지난한 협상도 오롯이 차주인 아버지의 몫이었다.
“우리 집에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소리 질렀던 게 그 일 때문이었어요?”
“그때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있었는데 여섯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아이 업은 아줌마가 다녀간 이후로 아버지와 엄마가 자주 싸웠었지요.”
“겨우 마련해 놓은 너 입학금을 아버지가 그분 아들 등록금으로 줘 버렸거든.”
“아버지답네요. 큰집 오빠 대학 입학금도 해 주신 걸로 아는데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니 오죽했겠어요.”
“그래, 돌고 돌지. 큰집 오빠 아니었으면 너 중학교도 못 갈 뻔했어. 오빠가 결혼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너 입학금 하라고 주더구나.”
외벽 공사를 마친 아파트를 올려보며 아쉬워하는 엄마의 어깨를 살짝 껴안으며 효경이가 말을 이었다.
“그 와중에 집이라도 지킨 게 다행이긴 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건 너 언니 공이 크지.”
결혼 5년 만에 태어나 애지중지했던 인경은 맏이의 특혜를 한껏 누리며 자랐다. 언니라서 참는 일도 없고 남동생이라고 양보하는 것도 없었다. 생일 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소풍 땐 초콜릿을 반 친구 전체에게 돌려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인경이가 가족에게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졸업식에 간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는 아직도 마음이 에인다. 친척들이 인경의 입학금을 걱정해 주는 말을 듣고서야 딸이 고등학교 입학 원서조차 내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더 가관인 것은 아버지가 공동 사장으로 몸담았던 버스 회사에 취업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인경아, 너까지 이러면 안 돼.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제출 기간이 남아있는 2차 학교 원서를 내미는 어머니 손을 뿌리치며
“내가 고등학교 가면 동생들은 중학교도 못 다녀요. 그리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니에요?”
아버지 간병과 사고 처리로 정신이 없는 어머니를 보면서 인경은 큰 딸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인경의 맏이 선언에 어머니는 가슴만 쓰릴 뿐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어제 자매 간의 전화에 대해 불편해하던 어머니의 슬픈 눈빛이 생각나서 효경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한테 늘 고맙게 생각해요.”
“그래 그것만 생각하자. 언니가 희생하여 너희 둘 공부했잖아. 아버지가 고모에게 집 팔려고 했을 때도 돈 벌어 갚겠다며 끝까지 집 명의를 넘기지 않은 것도 언니였어.”
형 보고 배운다고 효경은 인경보다 더 확실하고 더 집요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통학 길을 걸어 차비를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등록금도 틈틈이 학교 매점에서 일을 하여 해결했다. 여덟 살 아래 경호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면 ‘저러다 애 잡겠다.’ 싶을 만큼 살벌했다. 경호가 일류 대학을 나오고 단 한 번에 행정 고시에 합격한 것도 그 덕인지 모른다. 인경이가 일찍 결혼하면서 명의만 지켜놓고 간 집을 결국 어머니와 효경이가 온전히 지켜내었다. 갖은 부업과 파출부 일까지 마다치 않은 어머니의 굵은 손마디와 간호대학에 다닐 때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링거 주사를 놓는 등 물불 가리지 않고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든 효경의 억척으로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렇게 지켜 낸 집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평화로웠다. 햇살 좋은 봄날, 아침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설핏설핏 푸르름이 돋아나는 잔디를 보면서 예전에 삼 남매가 뛰놀던 모습을 떠올리니 흐뭇했다. 그러나 손주들이 뒹구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쓴웃음이 났다. 사고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한쪽이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자지러지듯 울던 손자를 생각하면 섭섭함과 함께 자괴감이 들었다. 아내가 주는 돈 몇 푼으로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으로 지내는 하루하루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가 재취업을 생각한 것은 나름대로 노후를 위한 준비였다. ‘그래 성형 수술부터 하고 올 때마다 용돈을 두둑이 주면 그 녀석들도 이 할애비를 마다하지 않겠지?’ 세수하다 말고 일그러진 왼쪽 얼굴을 한 손으로 가려보았다. 아직은 괜찮은 얼굴이다. 미군 부대 다닐 때 한 흑인 병사가 오마 샤리프 닮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싱긋이 웃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사모님, 사장님이 일을 하시겠다고 어제 회사에 다녀가셨는데 괜찮을까요?”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며 간간이 연락해 오던 최 전무의 전화였다.
“여보, 당신 몸도 온전치 않은데 어떻게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무슨 소리? 운전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야. 그리고 그 회사 요샌 택시로 바꿨더구먼. 버스 경력이 몇 년인데 그깟 택시 운전 못 하겠어?”
“여보, 우리 이젠 큰돈 쓸 일도 없고 아껴 쓰면 경호가 주는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요.”
그건 어머니의 생각이었고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부잣집 사위가 된 아들이 느낄 불편한 안락감을 아버지는 아신다. 병원이라도 갈 일이 생기면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늘 둘째 효경을 불러댔다. 퇴근길이든 주말이든 언제나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손발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선선히 지갑을 여는 딸이 고맙다 못해 애잔함마저 들었다. 그럴수록 아버지의 취업 의지는 확고해졌다. ‘자식들 부담 줄여주려면 내가 일을 해야 해.’ 원했던 택시 운전은 아니지만 차량 점검 일을 맡게 된 아버지는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효경이 차 기름은 이제부터 내가 넣어줄 테다.”
아버지는 첫 월급봉투를 내밀며 의기양양해했다. 손재주가 좋은 아버지는 택시 한 대 한 대를 반려 차라도 되는 양 정성껏 점검했다. 그렇게 잘 관리된 차가 택시 차량 연한에 걸려 더 이상 운행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언젠가 효경이 아파트에서 본 옷 보관함 상자가 생각났다. 누군가 버리는 옷을 누군가는 요긴하게 입을 텐데 저렇게 멀쩡한 택시는 어떻게 될까? 아버지의 궁금증을 간파하기라도 했는지 회사에서 마당발인 권 기사의 조카로부터 사업 제의가 들어왔다. 차령이 다 되어 더 이상 영업용으로는 운행할 수 없는 차를 동남아 국가로 팔 수 있단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택시 두 대를 사서 팔아보니 수입이 쏠쏠했다. 무엇보다 중개업자들이 불러주는 ‘사장님, 사장님’ 소리에 어깨가 으쓱했다.
“사장님 이젠 판을 좀 키웁시다. 인도 뉴델리에 있는 큰 중고차 시장을 뚫었습니다.”
중개업자의 교활한 거래가 비싼 안주와 함께 아버지의 양주잔에 흘러들었다. ‘인도는 뒷돈이 통한다느니 차량을 선적할 때 관리비를 따로 내야 한다.’느니 투자비 명목이 자꾸 늘어났다. 그날 술자리에서 말처럼 판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빙글빙글 도는 판에 올라탄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다.
인도로 향하는 택시 수가 늘어날수록 아버지의 꿈도 부풀어져 갔다. 중개업자가 영어로 된 계약서를 내밀 때는 예전 미군부대 다녔던 이력까지 들먹거리고 스스럼없이 사인했다. ‘이제 이 최민식이는 무역업자다! 찬란한 제2의 인생이여!’ 너무도 기분이 좋아 동네 어귀에서 약주도 한 잔 했다. 주머니 속의 계약서를 꾹 쥐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석 달 후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은행 독촉장이 날아왔다. ‘인도로 보낸 택시들이 팔리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거야!’ 조마조마해진 아버지는 경호를 찾아가서 아들과 며느리를 앉혀놓고 중대 발언을 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려는데, 헐값에 집을 산다고 생각하고 5,000만 원만 해 줄 수 있겠나? 물론 명의는 너희들 이름으로...”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가 한마디로 거절했다. 경호도 지난 추석 어머니한테 들은 말이 떠올라 어떤 부언도 할 수 없었다.
“경호야, 너거 아부지가 또 차 사업을 하시겠단다. 저러다 성한 다리마저 다칠까 봐 걱정이다.”
“아버지 제가 더 잘할 테니까 노후는 걱정하지 마시고 더 이상 일벌이지 마세요.”
경호는 아버지를 역까지 배웅하고 오면서 괜스레 자신의 외제 승용차가 미안했다.
서울을 다녀온 후 며칠 동안 끙끙대던 아버지는 결국 인경을 찾아 나섰다. 딸네 부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출하 날짜에 맞춰 딸기를 따느라 오랜만에 오신 아버지를 대접도 못 하고 짬뽕을 배달시켰다. 비닐하우스 안은 높은 온도와 습도로 숨이 헉헉 막혔다. 불어 터진 면을 빨아 당기려니 얼굴이 벌게졌다. 왼쪽 관자놀이의 수술 자국이 흉측하게 도드라졌다. 인경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곁두리로 나온 만두까지 다 먹고서야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냈다.
“쌀농사보다 더 힘든 것 같구나. 쌀농사는 그래도 겨울 한 철은 쉬는데 말이야.”
“힘은 들지만 이게 수입이 훨씬 좋습니다. 출하 시기만 잘 맞추면 이보다 효자가 없어요.”
사위가 빈 그릇을 거두며 응수했다. 비닐하우스 농사에 이력이 났는지 딸과 사위는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릴 여가도 없이 작업한 딸기 상자들을 1톤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쌀농사 지을 땐 겨우 생활만 했는데 딸기 농사는 돈이 돼요. 시댁 동네에 좋은 땅이 나와 있는데 이번엔 그것도 사려고 해요.”
시댁까지 불러들이며 남편 말에 훈수를 드는 딸이 기특했다. 수저 두 벌로 시작한 인경 부부의 억척이, 집도 마련하고 야금야금 땅도 사 모았다. 아버지는 딸과 사위의 숭고한 노동으로 이루어 낸 풍요로움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도 숨이 막혀 하우스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쟤들이 저렇게 고생해서 버는 돈인데 이 애비가 무슨 염치로......’ 결국 아버지는 딸기 한 상자를 받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은행에 들렀다. 경호가 배웅해 주며 찔러주던 흰 봉투 속의 100만 원으로 밀린 이자를 갚았다.
“웬 딸기? 요즘 딸기가 얼마나 비싼데.”
함박웃음을 띠며 어머니가 딸기 상자를 받아 들었다.
“산 게 아냐. 인경이한테 갔더니만 갸들이 딸기 농사를 얼마나 잘 짓던지 한번 먹어봐. 제철보다 맛도 떨어지지 않아.”
어머니가 딸기를 씻을 동안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온통 대출금 생각뿐이었다. 당장 집 경매는 막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회사 경리와 입을 맞추기를 운행 만료된 택시는 폐차장에 헐값으로 판다고 했다. 그렇게 빼돌려 인도를 향해 선적한 택시는 소식도 없었다. 월말이면 그 금액도 입금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개업자는 보름 동안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래, 이 집을 파는 수밖에 없어.’ 결단을 내린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반도 덜 탄 담배를 재떨이에 꾹꾹 문질러 껐다.
“인경이 엄마, 우리 이 집 팔고 조용한 시골 가서 삽시다. 운동 삼아 인경이 일도 도와주고.”
아버지는 딸기 농장 부근에 있는 허름한 집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뭔 소리 하셔? 늙을수록 병원 가까이 살아야 한다구요. 더군다나 간호사 효경이가 우리 곁에 있어 얼마나 든든한데.”
둘째가 아무리 효녀인들 그 큰돈을 마련할 수는 없지. 며칠 후 아버지는 또다시 큰딸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경은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결혼 후 악착같이 살아오느라 그동안 친정에 대해 나 몰라라 했던 미안함이 몰려왔다. 한편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잡일을 하던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가족들에게 보란 듯이 잘살고 있음을 입증해 보이고도 싶었다.
“인경이도 인경이거니와 윤 서방 자네가 정말 고맙네.”
“아버님, 처제와 처남에게도 다 말씀하시고 모두 안 한다면 우리가 할게요.”
사위는 많이 배운 처가 쪽이 만만찮게 생각되어 미리 단서를 붙였다.
“걱정 말게. 내가 먼저 말해봤지. 그런데 다들 안 하겠대.”
아버지는 인경이가 보내준 3,000만 원으로 집 담보를 해결했다. 인도 뉴델리로 보낸 택시 열두 대는 온갖 수수료까지 붙이더니만 결국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었고 계약서는 한낱 영어 낙서장이었다.
어제 언니와의 전화에 대해 아직도 속이 상한 효경이는 횡단보도를 건넌 후 슬며시 어머니 손을 놓아버렸다.
“아버지는 조그만 일에도 나를 잘도 부르시더니만 집 문제에 대해선 왜 내게 귀띔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버지가 미안해서 그랬지. 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면목이 없을 터였으니.”
“그렇다고 내겐 언질 하나 없이 경호와 언니에게만 말하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놔요?”
“나는 집 날린 것보다 너희 삼 남매 그렇게 좋던 우애가 끊어져버린 게 더 가슴 아프구나.”
어머니는 옅은 한숨과 함께 휘청휘청 걸었다. 효경은 놓았던 어머니 손을 다시 잡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집 담보로 대출받은 거 언제 알았어요?”
“니 언니 전화받고 알았어.”
그날 어머니는 지루한 장마 끝, 오랜만에 쾌청한 날이라 마당 빨랫줄에 이불을 널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예전에 버스 사고 소식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현관을 올라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인경이었다. 결혼 후 사는 것에 급급하여 친정 나들이는커녕 연락조차 뜸한 큰딸의 전화가 반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어머니 목소리를 들은 인경은 어릴 적 가슴 저리던 효심이 다시 솟아난 듯 친정에 대한 애틋함이 몰려왔다.
“엄마,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우리한텐 말하지 않았어요? 집 문제는 우리가 다 해결했어요.”
뜬금없이 집 문제라니? 어머니는 화들짝 놀랐다. 인경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버지가 집 명의를 우리한테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착한 윤 서방이 엄마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 그 집에서 맘 편히 사시라고 명의 이전은 나중에 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조만간 한 번 찾아갈게요.”
어이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달랑 집 한 채인데 그걸 인경이에게 넘기겠다니? 지금까지 생활비를 대고 있는 경호, 온갖 잔일을 다하고 소소한 지출까지 하는 효경이에게 무어라고 할 것인가?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인경을 찾아갔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에 위안도 하고, 그간 소원했던 모녀의 정을 더욱 두텁게 했다. 다행히 사위와 딸로부터 약속도 받아 내었다. ‘그 집을 팔면 어머니와 인경이가 반반씩 갖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짐했다. 나중에 자신의 몫은 효경이와 경호에게 상속하리라고.
안면 성형 수술을 받은 아버지는 80대 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신났다. 잔디밭에서 손주들이랑 뒹굴기도 하고 바비큐라도 하는 날이면 손수 숯불을 지피곤 했다. 그런 아버지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낯선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먹는 것에 애착이 심해지더니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일도 잦았다. 때론 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난폭해지기도 했다. 치매였다. 경호는 병들고 연로한 부모님을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누나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삿짐을 빼면서 집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경호 돌날에 심었던 배롱나무는 그해 유난히 오랫동안 꽃을 피웠다. 어머니는 방마다 문을 열어보며 ‘꼭 다시 돌아올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예닐곱 살부터 시작하여 다섯 살, 네 살, 세 살이 되어간다. 일 년에 한 살씩 먹는 것도 아니다. 삼 년 동안 다섯 살이기도 하고, 여섯 살에서 세 살로 건너뛰기도 한다. 아예 한 살 배기로 몇 년을 살기도 한다. 그들은 당신이 살아온 세월 동안 굳어진 생활 의식을 고집하는가 하면 때론 억압되었던 무의식의 세계를 표출하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은 요양보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며 훈계질한다. 평생을 절제된 생활로 살아온 신부님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자동차만 보면 자꾸만 어디를 가야 한다며 자동차키를 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방은 늘 자동차 출입이 보이지 않는 북향이다. 햇살이 들지 않는 북향 방은 아버지의 웃음기를 재바르게 거두어 갔다. 자동차를 탈 수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머니는 며느리의 차도 마다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매일 면회를 다녔다.
“인경이 아부지 여기가 어딘지 알겠능교?”
“영천이지. 버스 교대할 시간인데 임 기사가 아직 안 오네.”
아버지는 십 수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니던 그 길을 아직도 아스라이 남아있는 기억 창고에서 꺼내곤 했다.
“여긴 서울이라요. 경호 집이 있는 서울.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그땐 자가용 타고 아들 집에 갑시다.”
그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자가용 대신 영구차를 타셨다.
월세를 받아 요양원비를 내던 아버지의 통장이 무용지물이 되자 집을 상속해야 했다. 효경과 경호는 어머니에게 상속하기로 하고 인경에게도 뜻을 전했다.
“아니다. 그 집은 아버지가 벌써 우리한테 줬어. 경매로 넘어갈 집을 우리가 지켰던 거야. 그래서 그동안 엄마 아버지가 그 집에서 편히 잘 사셨잖아.”
이 무슨 날벼락! 효경은 그동안 늘 고맙게 여겼던 언니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달랑 집 한 채, 많지도 않은 재산으로 삼 남매의 우애가 끊어질까 봐 어머니는 전전긍긍하며 효경과 경호에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언니에게 집을 주기로 약속한 게 맞아.”
“7,000만 원에 산 집을 20년도 더 지나 3,000만 원에 넘긴다는 게 말이나 돼요?”
“그러기에 내가 언니랑 다시 약속해 놓았어. 저 집을 팔면 반반씩 갖기로.”
효경과 경호는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못 이겨 상속 포기서에 도장 찍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아들의 지극한 효심에 엉거주춤 서울에 눌러앉았다. 깔끔한 며느리의 차로 마트라도 가는 날이면 효경이의 차가 생각났다. 출근길에 짬짬이 하는 화장과 아침 대용으로 먹던 빵 부스러기들로 얼룩진 시트, 약 복용법에 대해 끝없이 해대던 잔소리가 그립기도 했다. 할머니를 위로한답시고 베개를 들고 곁을 파고드는 손녀의 살가움에 젖어 서울 생활도 차츰차츰 익숙해졌다. 간간이 찬조금을 내는 아들 덕에 아파트 경로당에서도 서울 토박이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세도 굳혔다. 하지만 서울은 더 이상 어머니의 안온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책 연구 기관에 근무하는 경호가 2년 동안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남매의 영어 공부도 시킬 겸 온 식구가 나가기로 했단다.
“할머니, 대구 고모랑 살다가 2년 후에 다시 우리랑 살아요.”
듬직한 손자가 할머니를 뒤에서 껴안으며 응석을 부렸다.
“할머니 집에서 살 거야. 그래야 너희들 한국 들어오면 잔디밭에서 고기 구워 먹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는 그 큰 집에서 혼자 살 자신이 없었다. ‘누구랑 같이 살지?’ 네 식구가 소형 아파트에 사는 효경이네와 같이 살 수는 없다. 며느리와 같이 사는 인경에게는 더더욱 갈 수 없다. 고심 끝에 효경이 집 부근에 방을 구하기로 맘먹고 큰 딸에게 전화했다.
“인경아 그 집에서 나오는 월세 내가 좀 써야겠다.”
“엄마, 무슨 소리예요? 그 집 없어요. 작년에 그 동네 재개발 들어가서 벌써 보상까지 끝났어요.”
“보상이라니? 그럼 팔았다는 거냐?”
“그런 셈이죠.”
“얼마에 팔았니? 그럼 내 몫 반은?”
보상금 8억을 받았단다. 그렇지만 어머니 몫은 아니란다. 결국 효경이가 언니를 만났다.
“언니, 엄마와 언니가 반반씩 갖기로 약속했잖아.”
“그건 아버지 살아계실 때 이야기이고, 엄마도 너희들도 다 상속 포기했잖아.”
“엄마와 언니의 약속 때문에 우리가 상속을 포기했던 거야. 3,000만 원으로 8억을 혼자서 꿀꺽한다는 게 말이 돼?”
“그 돈 3,000만 원은 땅 사려고 했던 돈이었어. 그 땅 샀더라면 지금 10억은 되었을걸. 거기가 혁신도시가 되었거든.”
언니를 만나고 온 효경이가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리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나섰다. 인경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집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한 번은 다투는 두 딸을 보다 못해 ‘싸우려면 둘 다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효경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빌며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반면 인경은 방 문짝을 떼서 나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어린 마음에 문고리를 당기면 방이 되는 줄 알았단다. 그런 인경이었기에 결혼하고 5년 만에 사글세로 살던 집을 ‘윤수용 최인경’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십 년 후 판자촌이었던 그 동네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경은 택지를 분양받았다. 택지는 도로를 접하고 있어 1, 2층은 점포세로 적잖은 수입이 들어오고 3층은 인경네가, 4층은 결혼한 아들네가 살았다.
어머니가 힘겹게 계단을 걸어 올라 3층 벨을 눌렀다.
“연락도 없이 엄마가 갑자기 웬일이세요?”
평소답지 않게 깔끔한 홈드레스로 차려입은 인경이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를 맞아들였다. 며칠 전 동생에 이어 또다시 집 얘기를 하는 어머니에게 인경은 단호했다. 억장이 무너진 어머니는 거실 바닥에 드러누우며 억지를 부렸다.
“아버지와 나 살아 있을 동안 그 집에서 살게 해 준다고 했으니, 오늘부터 나 여기서 살아야겠다.”
들어올 때 얌전하게 인사하던 손부 며느리가 과일 접시를 들고 오다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엄마는 여기서 못 살아요.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밖에 나가지도 못할 거고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요?”
“집이 이렇게 넓은데 이 방 저 방만 다녀도 운동되겠네. 밖에 나갈 필요도 없겠어. 그래 어느 방을 내어줄래?”
어머니는 당장 당신의 방을 확보하기라도 할 듯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딩동 인터폰이 울렸다. 인경은 어머니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끌다시피 하며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지금 사위 될 사람이 온다 말이에요. 집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엄마는 여기서 조용히 있어요.”
인경이 작은 소리로 말하고 황급히 나갔다. 띠릭 소리로 보아 다용도실 문을 잠그나 보다. 철컥 어머니 가슴에도 자물쇠가 잠겼다.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흐릿한 눈물 사이로 이리저리 얽힌 살림살이가 보였다. 겨우 의자 하나를 찾아서 앉았다. 벽에 기대어 고개를 젖히니 창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늘 무엇이든 다 해결해 주던 남편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비쳤다. ‘여보 저 애가 왜 저렇게 변했을까요?’ 어머니는 인경의 시간을 되돌려 짚어보았다.
학교에서 받은 강냉이 빵을 동생들에게 주라며 내밀던 손,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찢으며 동생들 공부시키겠다며 울던 모습. 결혼하겠다며 윤 서방을 데리고 왔을 때 문전 박대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런 윤 서방이 알짜 사위가 되어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10년 전 회혼식이 떠올랐다. 호텔에서 밴드까지 불러 꽤 호사스러운 잔치였다. 부러워하는 친지들은 입이 마르도록 경호를 칭찬했지만, 사실은 인경이의 몫이 가장 컸다. 60년을 함께 살아온 아버지 어머니는 삼 남매의 우애가 자랑이었고 15명의 자손이 훈장이었다. 멀리서 오신 분들은 호텔에서 주무시도록 방을 예약해 두었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틈을 타서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호텔비는 맏사위가 다 냈습니다. 이 딸기도 윤 서방 농장에서 생산한 겁니다. 자, 윤 서방 일어나 보게.”
아버지는 딸기 농장을 다녀온 이후 틈만 나면 인경이네를 부추겨 세웠다. 경호가 술병을 들고 큰 누나네 가족석으로 갔다. “큰 자형 덕분에 회혼식이 이렇게 성대해졌습니다.”
옆자리의 사촌 형이 장인 말에 엉거주춤 일어선 윤 서방을 쳐다봤다. ‘네까짓 게 뭘?’ 이런 느낌으로 아래위를 훑었다. 술잔이 몇 번 돌자 사촌 형은 거나하게 취기가 올랐다. 복부인 서열에 오른 마누라 덕에 아파트 몇 번 사고팔더니 100억대가 되었노라고 으스댔다. 농사지어서 언제 돈 버느냐는 둥 서울 부자는 격이 다르다는 둥 거드름을 피웠다. 경호에게도 근황을 묻더니 케케묵은 생색을 해댔다.
“경호 너 이렇게 잘된 거 네가 똑똑해서만은 아니야. 내가 효경이 입학금 안 해줬으면 너 대학 갈 수 있었겠냐?”
옆에서 듣고 있던 인경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래 부동산이구나!’ 그때 사촌 오빠의 돈 자랑 때문인가? 대대로 살던 동네가 대구로 편입되면서 졸부가 된 시댁 식구들을 부러워하더니만 저렇게 되었나? 집 보상금도 알 박기 하여 다른 집보다 1억은 더 받아내었단다.
거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키 작은 윤 서방이 예비 사위의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를 칭찬했다. 은미가 더 예쁘다며 예비 사위가 겸손을 떨었다. 식사 후 며느리가 살얼음이 낀 수정과를 후식으로 내어왔다. 앞니가 시려서 찬 음료는 마실 수 없다는 인경의 말에
“앞으로 장인 장모님 치아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는 신이 나서 치아 관리, 특히 노인 치아 의학 상식을 늘어놓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처가 돈으로 개업한 동기가 있는데 실제 원장은 장인이라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인경의 호들갑과 윤 서방의 너털웃음이 다용도실까지 흘러들었다. 차르르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은미와 예비 사위가 나가나 보다.
“택도 없는 소리. 네 놈이 의사 아니라 의사 할배여도 우리 아들이 먼저지.”
눈치 빠른 인경이가 찻잔을 챙기며 못을 박았다. 윤 서방이 거들었다.
“의사 사위를 보는데 은미도 뭘 좀 해 줘야지.”
“아파트 전세는 얻어 줄 거라요.”
8억 보상금의 용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들 은석의 레스토랑이 이젠 맛집 랭킹 순위에도 올랐고 적잖은 수익도 창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주가 갑자기 층별로 건물을 매매하겠단다. 2층이지만 꽤 넓은 평수 인데 6억 원이라니! 엄청나게 싸게 매입했다. S동 그 집이 그야말로 거위알이 된 셈이었다. 아들 은석이의 사업을 탄탄하게 하고, 딸 은미를 의사 사모님으로 만들다니! 인경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그 8층 건물 전체가 곧 법정 관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온 예비 사위는 집 밖으로 나오자, 곁눈질로 1, 2층 가게를 재바르게 훑었다. 내친김에 형님에게도 인사를 하겠노라고 은석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고 없이 갔던지라 은석은 만나지 못하고 최고급 안주와 수제 맥주를 마시며 은미와 한참 동안 얘기했다. 환자의 입 속만 들여다볼 줄 알았는데 그의 입질도 보통이 아니었다. 치대 동기들과의 보컬 이야기를 할 때는 금방이라도 록 한 곡쯤은 불러줄 듯했다. 타고 온 BMW에 대해선 얼마나 자세히 설명했던지 지난달 운전 면허증을 딴 은미도 그 차를 운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는 길에 한창 아파트 공사 중인 S 동네가 보였다.
“친구가 저 동네에 살았는데 재개발로 대박 터졌대요. 은미네도 참 운이 좋아요.”
은미 입에서 8억 보상금 말이 나왔을 때 그는 하마터면 ‘정말로요!’ 감탄사가 나올 뻔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면서 공사 중인 아파트 언저리에 차를 세웠다. 요의를 해결하고 궁금해 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가게가 6개나 달린 본가와, 번화가에 있는 은석의 레스토랑 규모를 말했을 땐 어머니도 좋아서 맞장구쳤다.
“보상금으로 8억 받았대. 그 정도면 치과 개업은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면 신혼집은 엄마가 마련해 줘야 해.”
“그래 그 정도는 우리가 해야지. 그런데 너 이혼한 건 눈치 채지 못하던?”
“이혼은 무슨 이혼? 혼인 신고도 안 하고 헤어졌는데.”
“그래도 폭행으로 헤어진 걸 알면 딸 줄 부모가 없지. 이제 너도 성질 좀 죽이고 살아라. 그리고 돈도 좀 아껴 쓰고.”
잔소리는 계속되었지만, 그는 휴대폰을 닫아버렸다. 발로 차 뒷바퀴를 툭툭 차면서 입속말을 했다.
‘지긋지긋한 렌터카도 이젠 끝낼 수 있겠구먼. 이참에 벤츠로 바꿔볼까?’
반쯤 핀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껐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의 등 뒤로 공사 중인 아파트가 시커먼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_ 끝 _
(한국문학예술 제 64호 소설부문 신인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