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대의 북한, 변화와 선교 가능성
오픈도어 현장 사역자
김정은시대 북한의 상황변화
2008년 9월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이후로 남한을 비롯한 전 세계는 그의 사망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전세계가 김정일의 죽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단 한가지, 그의 사후 북한의 변화 가능성 때문 이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지 3개월반이 지나고 2012년 4월 초 김정은은 예정대로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그의 공식적인 직책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정해졌다. 지금까지 어떠한 급변사태도 일어나지 않고 있고 김정은 체제는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취임 직후부터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해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김정일이 모든 매체를 통해 ‘선군’의 사상을 선전하였듯이 2012-14년 대부분의 행사에서 북한의 공식매체는 ‘인민생활의 향상’에 대해 언급 하였다. 무엇보다도 세간의 기대를 모으게 한 발언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연설의 내용 이었다. 김정은은 “내게 소중한 것은 총알보다 쌀알”이라고 말하였다. 이후 실재로 북한에서는 경제개혁과 생활 향상을 위한 많은 조치들이 취해진다. 2012년 8월 북-중간 황금평, 위화도 및 나선경제무역지대 개발 합의, 2012년말 원산 관광특구 지정, 2013년 1월 구글 대표단 방북, 2013년 관광설명회 개최 등은 북한정권 개혁개방의 가능성으로 비춰졌다.
김정은은 파격적 행보를 통해 김정일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2년 4월 광명성 3호 발사시 외국기자들의 입북 허용, 4월 15일 공개육성연설, 이후로 모란봉 악단 연주회, 이설주의 등장과 2회에 걸친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과 김정은과 함께 한 농구관람 등은 모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북한지도자의 모습 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향적인 북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체재’의 문제이다. 김정은은 이러한 개혁적인 행동들과 발언들에 앞서 3월 31일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발표하였다. 또한 노동당 전문에 ‘김일성 주의’라는 말을 삽입 했는데 이는 수령독재와 유일사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핵개발을 계속 하면서 경제를 발전 시키겠다는 것은 차-포를 떼놓고 나머지 말로만 어떻게든 장기를 두어 이기겠다는 말과 같다.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은 정권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사업에 열중하고 있지만 정작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인프라 건설에는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가 2012년 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로동신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등 자신의 가계와 관련된 동상과 벽화, 영생탑 등 정치적 상징물 141건을 새로 건설하거나 개·보수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집권하던 2010 ~2011년 2년간의 72건에 비해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반면, 철도와 도로,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크게 줄었다. 김정일이 살아있던 2011년 북한은 도로 520㎞를 새로 건설했지만 김정은이 들어선 2012년에는 4㎞를 추가로 늘리는 데 그쳤다. 철도도 2011년 33㎞를 새로 깔았지만 2012에는 5㎞만 건설했다. 발전 용량도 2011년 7만㎾를 확충했지만 2012년에는 3만㎾에 그쳤다. 통일부가 작년 10월 9일에 발표한 ‘최근 북한 경제동향’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2년 동안 평양 민속공원(2012년 9월 완공)과 대성산 종합병원(올해 3월 완공), 해당화관(올해 4월 완공), 마식령 스키장 등을 새로 지었다. 미림승마구락부와 평양체육관, 문수물놀이장, 압록강유원지, 갈마호텔 등 시설을 보수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통일부 당국자는 “평양과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체육·위락시설이 다수 건설됐다”며 “이는 주민들의 실제 수요보다는 김정은의 치적 쌓기 및 애민(愛民) 이미지 부각, 관광업 육성을 위한 기반시설 조성과 긴밀히 연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정은 시대에 눈에 보이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변화들은 주민들의 생활과 전혀 상관없는 영역에서 일어났다. 로드맨이 방북한 것, 이설주를 공개한 것, 미키마우스가 등장한 것, 스키장을 만든 것 이것이 도대체 체재변화에 대한 얼마나 큰 징조란 말인가? 이는 오히려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3S정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김정은이 서방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것에 희망을 걸지만 어린 시절 철저한 통제 속에서 해외에서 몇 년을 보낸 것이 북한의 체제변화에 그렇게 희망적인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기유학이 청소년의 사고와 시야를 넓히는 경우도 있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시리아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1992∼94년 영국에 유학한 유학파였고, 크메르 국민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주인공 폴 포트도 역시 49∼53년 프랑스에 유학한 유학파 지도자였다.
탈북 피랍인 연대에 따르면 2011년 말부터 북한 보위부 특수요원들은 북한인권활동가들의 인적 정보가 담긴 문서를 들고 다니며 중국 내 북한동포를 상대로 탐문을 벌이던 것이 김정은 이후에 더욱 강화되어 이어지고 있다.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명단은 선교사, 기업인, 정보활동 관련자 등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보위부는 중국 단동과 연길에서 팀을 꾸려 중국에서 10년 이상 북한인권활동을 해온 활동가 20여명의 사진과 이름, 활동무대, 활동내용 등의 목록을 갖고 추적에 나섰다. 작년 고의추돌로 의심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강호빈 목사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의 알려진 사실들 이외에도 조선족 북한 사역자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있었다. YWAM선교사 케네스배는 최장기간 구금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작년 말에는 김정욱 선교사가 유인 납치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올 올 2월 사찰에 전도지를 두고온 죄로 호주인 선교사 존 쇼트가 보름간 억류 되었었고, 4월 29일에는 객실에 성경을 두고온 죄로 에드워드 파울이라는 미국인이 억류되어 현재까지 북한에 있다. 중국의 북한사역 현장은 물론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의 등극 이후 선교환경에 대한 위협이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우리의 기도
십여년전 오픈도어의 설립자인 브라더 앤드류는 서구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오사마 빈 라덴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Do you pray for osama Bin laden?)” 우리는 김정은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왕이었던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 시키셨다.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아하수에로 왕과 다니엘 시대의 다리오왕은 모두 이방인 이었으나,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취했다. 현재 김정은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김정은도 아하수에로나, 다리오왕과 같이 그 정책을 바꾸게 되기를 기도할 수 있다. 그를 통해 북한 내 신자들에 대한 탄압이 줄어들고, 복음의 통로가 열리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김정은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베른(Bern)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도시로서 칼빈이 활동하였던 제네바와 바젤의 정 중간에 있는 종교개혁의 도시이기도 하다. 김정은도 자신이 다닌 베른 국제학교 주변에 있는 츠빙글리의 동상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알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복음도 접했을 것이다. 김정은도 하나님 앞에서는 불쌍한 한 영혼에 불과하고, 우리와 똑같은 죄인일 뿐이다. 김정은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적이 있다면, 그 생명력 있는 복음의 씨앗이 언젠가 열매를 맺기를, 김정은이 주님 앞에 온전히 무릎 꿇기를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 우리 모두 김정은을 위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