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후 국가의 진정한 사과 받고 싶다” 비상상고 기각 ’형제복지원‘ 한종선 피해자모임 대표 인터뷰
지난 11일 감금, 강제노역, 암매장등을 자행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됐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권유린이 자행된 사건에 대해 ‘상급심의 파기 판결로 효력을 상실한 재판은 비상상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비상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학대, 성폭행이 자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일으킨 사건. 1987년 피해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복지원 자체 기록에 의하더라도 12년의 기간 동안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국가에 의한 반사회적 범죄행위가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어두운 시대의 얼룩진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불법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무죄가 선고됐고,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생존자이자 피해생존자 (실종자·유가족) 모임의 대표를 맡아 온 ‘한종선 대표’를 만났다. 지난 1984~1987년 형제복지원에 갇혔던 한 대표는 복지원에 들어가면서 가족과 헤어진 뒤 혼자 살아오다 지난 2007년 우연히 복지 신청을 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 누나의 소재지를 알게 돼 20여년만에 재회한 케이스. 이후 한씨는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으며,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비상상고 기각 이후 한씨를 만나 소감을 들었다.
Q. 대법원은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 존엄성이 침해됐다고 규정하면서도 ‘법리적 불가피성’을 내세워 비상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1989년도 판결에서 다뤄진 사실만을 가지고 내려진 것이라 기각이란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 당시 검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루려 했지만, 부산지검의 외압에 의해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을 폐쇄시켰다. 복지원이 문제가 없는 곳이었다면 폐쇄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비상상고 결과에 좌우되지 않고 계속 전진해 갈 것이다.
Q.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활동중인 단체는 몇 곳이나 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 지난 2012년 결성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 유가족) 모임’이 지금까지 활동 중에 있다. 지난해 5월 과거사법 통과 이후로 일부 회원들이 ‘경기협의회’를 만들어 나간 상태라 현재 2개의 단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장애와 인권 발바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로 주축이 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또한 존재하고, ‘진실의 힘’ 등 대책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응원을 보내시는 많은 시민 단체와 일반 시민분들이 함께하고 있다.
Q. ‘형제복지원’은 군사정부 시절에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민주화 과정을 거쳐온 우리 사회가 이제 이런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가.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진정한 민주화는 인간의 존엄성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1980년대에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학살에 가까운 인권침해를 경험했음에도 2005년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청각장애인 교육시설 인화학교 사건’, 2016년의 ‘대구희망원 사건’ 등 힘없는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시민들이 감금 학대 당해 사망한 일들은 꾸준히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만, 한 장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그들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길 바란다. 또,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Q. 배·보상 관련해 ‘공신력 있는 방법’을 추진중에 있다고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현재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을 모집중인데 새로 채용되는 이들 조사관을 중심으로 피해 당사자들의 억울함을 입증하고 명예를 찾을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사가 끝난 후 피해 사실에 관한 인정서를 받은 후 이를 토대로 전문 변호사님와 배상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배·보상이라는 것은 피해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고 가해의 책임, 방관의 책임, 억울함이 드러났을 때 진심 어린 사과와 합당한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배·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이르다고 본다.
Q. 현재 심정과 앞으로 바라는 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면. =1984년 9살 때, 누나는 11살일 때 학교를 다녀온 뒤에 파출소 앞에서 형제복지원 차량에 태워져 의지와 상관없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됐다. 실려가는 순간부터 귀싸대기를 맞고, 소대라는 곳에 자대 배치 된 다음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거의 매일같이 동성간 성폭행이 일어났고, 몸에는 이가 바글바글해서 피부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2007년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다 아버지와 누나의 주소지를 알게 되어 찾아 가보니 정신병원이었다. 정신병원 면회실이 형제복지원 폐쇄 이후 첫만남이었다. 그저 억울했고, 살고 싶었기에 법이 없다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억울함을 풀 수 있게 해달라고 외쳤다. 손해배상 때문에 지금까지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시위했던 것이 아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왜, 우리는 갇혀야 했고 누군가는 죽어야 했나?' 그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바라는 것이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국가라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우리가 당한 억울함이 금전적으로 과연 해결이 될까. 진심어린 사과도 없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외받고 눈치와 고집만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우리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갉아 먹지 않고 억울함을 풀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무 많이 늦었지만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한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이 평소에 느끼는 평범한 모든 것을 겪어가며 살고 싶다. 저의 아픔과 상처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처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의 노고와 가치도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저희의 행보를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 이예솔 대학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