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신현실(이하 신현실)
안녕하세요? 이정석 씨! 바쁜 일정 중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으신거 같아요! 역시 노래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가수 이정석(이하 이정석)
반갑습니다. 하하! 항상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겨울은 제게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겨울에 팬 분들을 가장 많이 찾아뵙게 되니 추위에 힘들기도 하지만 늘 고마운 일이지요. 매번 겨울이면 ‘첫 눈이 온다구요’를 수백번은 부르는 것 같아요.
신현실
대표곡인 ‘첫 눈이 온다구요’, ‘사랑의 대화’, ‘사랑하기에’는 제 청춘시절 사랑앓이 주제곡이였습니다. ‘수줍은 고백’, ‘우리사랑 이대로’등 히트곡이 아닌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문화재사랑 독자분들도 이정석 씨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할 것 같습니다.
이정석
문화재 사랑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1986년 대학가요제 금상을 받고 데뷔했던 34년차 가수 이정석입니다. 그간 콘서트를 통해 인사드렸었는데요, 2월부터 대학가요제 선후배님들과 함께 ‘대학가요제 리멤버 콘서트’와 3월에 시작되는 토크 앤 발라드 전국투어 콘서트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됐습니다.
신현실
이정석 씨 하면 감미로운 노래뿐만 아니라 비틀즈의 존 레논처럼 사회공헌으로 유명한 가수이기도 하신데요.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 소외아동들에게 공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셨다고 들었어요. 겨울왕자가 오히려 추운 겨울에 힘들고 소외된 분들에게 음악의 힘으로 온기를 불어 넣고 계시는 군요.
이정석
큰 힘은 되어드리지 못하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이 주는 치유 효과는 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각자 삶의 열정을 다시 끌어내게 됩니다. 이것이 더불어 사는 건강한 세상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신현실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정석 씨의 신념은 이곳 경복궁의 역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조선의 정궁이었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었고 오늘날 문화재 복원을 통해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한국의 대표궁궐이 되었으니까요.
경회루에서
신현실
경복궁의 서북쪽에 있는 경회루와 연못 경회루지입니다. 이곳의 모습이 뭔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정석
아! 기억납니다. 옛 만 원짜리 지폐 뒤에 이곳이 있었지요!
신현실
네. 맞습니다. 조선 태종이 연못을 넓히고 누각을 지어 외국사신을 맞이하거나 연회의 장소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이곳은 한국 궁궐정원의 대표 경관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정석
그렇군요. 수면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겨울철 바깥공간은 왠지 스산한 느낌이 있는데 이곳은 겨울과 잘 어울리는데요? 눈이 오면 멋질 것 같아요.
신현실
경회루는 설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이 연못 안에는 인공으로 섬을 만들었는데 과연 몇 개의 섬이 있을까요?
이정석
(경회루 일대를 둘러보며) 두 개의 섬이 있고 섬 안에 소나무가 심겨져 있네요?
신현실
네. 연못 안에는 만세산이라 해서 두 개의 섬을 두고 소나무를 심었죠. 연산군 대에는 이곳에 화려한 꽃을 심고 작은 모형의 궁을 만들어 두었다고도 해요. 그런데 사실 이곳에는 섬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경회루가 있는 곳이지요. 그래서 이곳에는 신선이 살고 있는 세 개의 섬인 봉래, 영주, 방장 이렇게 삼신산을 상징하고 있답니다. 그럼 경회루로 올라가 볼까요?
경회루는 연못에 비친 누각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곳에 올라 연못과 주변의 전각들을 바라보는 것도 일품입니다. 또 연못에서 배를 띄워 노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이면에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해요. 192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박람회장 배치도에는 경회루 앞에 남북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놓여있었고, 경회루 동쪽의 담장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공원처럼 사용되기도 했지요. 오늘날 경회루로 출입할 수 있는 문과 담장은 2005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복원된 흥복전에서
이정석
이곳은 새로 지은 한옥 같은데요?
신현실
여기가 고종이 외국사신을 접견했던 흥복전입니다. 1917년 창덕궁 침전 권역을 재건한다는 미명하에 일본이 허물었던 것을 최근 문화재청에서 복원했습니다. 완벽한 흥복전의 모습은 2022년쯤에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과거 흥복전 일원에는 향원지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끌어다가 조성한 일본식 정원이 있었어요. 『조선총독부지평면도』에는 두 개의 섬이 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규모가 작은 회유임천형의 정원을 꾸몄던 사실이 자세히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일본식 정원이 만들어지기 이전인 고종 대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이정석
일제강점기에 옛 궁궐이 훼손된 것도 아픈 역사지만 감히 조선의 궁궐에 일본식 정원을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정말 분통하군요.
신현실
흥복전 남쪽의 화계는 좀 전에 보셨던 교태전 북쪽에 있는 아미산과 담장 하나를 두고 위치하고 있었어요. 아미산을 조성하기 위해 돋운 언덕의 남사면에는 아미산이 위치해 있고 북사면에는 흥복전 남편의 화계가 조성되어 있었던 셈이죠.
교태전 후원에서
신현실
이 곳은 궁궐 내 여성의 공간, 즉 왕비가 머무르던 곳 교태전의 후원인데요, 경복궁의 정원 중에서도 화려한 장식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해서 단을 두고 여러 경물을 배치하는 수법입니다. 이곳 아미산에 화계를 두고 각 단에 괴석이나 석지, 굴뚝 등을 배치해서 정원을 꾸몄습니다. 첫 번째 단을 보시면 연꽃 문양의 수조와 괴석이 있고, 두 번째 단에는 괴석, 앙부일귀대, 달이 잠긴 못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함월지와 노을이 어리는 못이라는 뜻의 낙하담이 있어요. 세 번째 단에는 4개의 굴뚝이 세워져 있지요? 굴뚝을 자세히 보시면 소나무, 대나무, 매화, 박쥐, 해태 등 임금과 신하, 행복과 장수, 사군자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장식해두었습니다. 네 번째 단에는 자칫 인공적일 수 있는 공간에 꽃나무를 심어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정석
와!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마치 정원이 아니라 정교하게 짜여진 가구와 세부장식을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화계는 모두 경사진 지형에만 만드나요?
신현실
역시 보는 눈이 남다르시군요! 이것이 한국정원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죠! 한국 전통정원에서 화계는 원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만들지만 교태전 후원은 태종 때 경회루 연못(1412년)을 팔 때 나온 흙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가산에 만든 화계라는 점이 다르지요.
교태전 후원에서 본 굴뚝과 비슷한 것이 대비가 거처했던 자경전에도 있습니다. 자경전으로 가볼까요?
자경전 꽃담에서
신현실
(자경전으로 이동) 자경전의 굴뚝과 꽃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벽면에는 해, 십장생과 바다, 포도, 연꽃, 대나무가 장식되어 있어요. 또 굴뚝 위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 신하를 상징하는 학이 있고, 재앙을 막아주는 해태와 자손의 번성과 부귀를 상징하는 박쥐가 장식되어 있는데, 삼화토로 회벽을 만들고 흙으로 구운 장식을 벽면에 넣어 화려하게 꾸민 것입니다.
이정석
이 담장은 마치 민화를 보는 것 같은데요?
신현실
이곳은 담 자체를 장식적 요소로 사용하고, 또 대비가 거처하는 곳이기에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한 요소들이 사용된 것이지요.
이정석
그렇군요. 교태전 후원도 그렇고 자경전까지 궁궐 안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정원에서 느껴지네요.
건청궁에서
신현실
경복궁에서 가장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은 이곳 건청궁입니다.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된 곳이지요. 1898년에 일본 학자가 건청궁을 설명한 부분을 보면 ‘정원에 필요한 나무를 많이 쓰지 않아 생기도 없고 풍취도 없는 무미건조한 정원이다’라고 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 궁궐정원의 진면목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건청궁의 장안당 뒤쪽 화계는 단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고 북악산 차경을 통하여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있습니다.
이정석
오늘 경복궁의 옛 뜰을 둘러보며 한국 정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공연을 다니며 한국정원을 많이 돌아보고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한국정원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도 하게 됐어요.
신현실
저도 이정석 씨께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한국 정원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시겠다는 약속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정석 씨의 사회봉사 활동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으로 한국 정원을 설명하시는 모습 정말 기대됩니다. 기회가 되면 전국 콘서트에 저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콘서트 대박나세요!
글. 신현실 문화재 전문위원 (우석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사진. 김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