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이명지
낮술을 좋아한다. 술시가 지난 어둠과 퀴퀴한 뒷골목의 왁자한 소음에 숨어 제 안의 서러움을 감추고 사람들과 부딪는 술잔도 때로 괜찮지만, 타인의 힘을 빌려야 하는 비겁함 말고, 당당하게 자신과 대거리할 수 있는 낮술의 발칙함이 나는 좋다. 문학적 은유가 배경으로 깔리길 원하는 내 낮술은 대체로 서재 다탁에서 벌이는 혼술이다. 내 안에 장전된 채 발화되지 못하고 박제되어 있는 언어들을 쏘아 올리기 위해 웅얼거리는 시간, 그게 문학의 언어든 관계의 언어든 술판에 앉혀놓고 말을 걸어본다. 그때 언어는 다른 이의 입을 빌어 내게 오기도 하고, 남의 책 속에서 발화되기도 한다. 입안에 고여 말이 되지 않고 떠다니던 것들이 어쩌면 그리 매혹적인 결정체가 되어 남의 문장 속에 딱 박혀 있을까? 그 낭패감은 질투심에 몸을 떨게 하고, 나의 작가적 자질에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게 하는 건 술의 힘이다. 거기서 무엇을 훔쳐 올지 눈을 부릅뜨게 하는 오기도 술이 일으킨다.
술만큼 유용한 친구가 있을까? 관계에 지쳐 사람마저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 한없이 무기력한 절망과 마주했을 때, 말없이 어깨를 내주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등을 토닥여 주는 친구가 술이다.
내 낮술의 근원은 아버지다. 농부였던 아버지와 논두렁에 앉아 새참으로 마시던 낮술. 새참 심부름 간 내게 목마르지? 하며 주전자 뚜껑에 조금 따라 주시던 막걸리 맛, 그 달고 알싸하던 맛이 낮술 맛이다. 세상 선비 같던 아버지가 짐승처럼 포효하던 모습을 나는 낮술 판에서 보았다.
열여덟, 복숭앗빛 얼굴을 한 큰언니가 이웃 동네 최고 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간 지 몇 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오빠 친구이기도 한 형부는 시골 처녀 같지 않게 피부가 뽀얗고 청순한 언니를 많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위해 형부 부친이 평소 알고 지내던 아버지를 찾아와 사돈 맺기를 청하자 아버지의 고민은 깊었다. 그런데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언니가 두 살 위인 오빠를 제치고 시집을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 열린 결혼식은 성대했다. 그때 막내인 내 나이는 일곱 살, 내 생애 첫 사진이 언니의 결혼식 사진 속에 있다. 사십이 갓 넘었을 엄마의 모습, 사십 대의 아버지, 육 남매의 어린 모습, 일가친지들의 당시 모습이 결혼식 사진 속에 박제되었다. 형부는 경상도 반가의 풍습으로 일곱 살 처제에게 ‘예’를 바쳐 존댓말을 했고, 우쭐해진 나는 처제가 되는 것이 벼슬을 얻는 일인 줄만 알았다. 백년손님 맏사위는 첫날밤 사촌 오빠들의 신랑 다루기 풍습으로 거꾸로 매달려 발바닥을 맞는 신고식을 했다. 한동안 우리 집에는 활기와 봄바람이 불었다.
결혼하고 군대에 간 형부가 덜컥 바람이 났다. 바람만 난 게 아니라 딴 여인이 생겼다며 아예 이혼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신랑이 군대에 간 사이 시부모 봉양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던 언니에게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 청천벽력은 우리 집에도 고스란히 떨어졌다.
1970년대 초 경북 지방에서 이혼이란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러운 금기어였다. 이혼은 집안을 망치고, 부모를 망신시키는 불효였고, 당사자뿐 아니라 가문의 주홍글씨였다. 엄마는 몸져누웠고,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눈빛에 어린 슬픔과 생생한 분노를…. 아버지는 논둑에 앉아 살의에 찬 언어들을 짐승처럼 혼자 쏘아 올렸다. 누구라도 맞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말의 화살들을 술의 힘을 빌려 꺾고 부러트리고 있었다. 내 어린 시건에도 아버지가 실제로 저 말들을 형부에게 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다.
아버지가 혼술로 삭이고 이겨낸 덕분에 형부는 다시 우리 집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버지가 논둑에 앉아 그렇게라도 쏘아내지 않았다면 다시는 형부를 받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끓은 젊은 피의 일탈을 접고 돌아왔을 때 형부는 훌쩍 성장해 있었고, 그 허물로 인해 평생을 언니와 처가의 헌신자로 살았다. 우리는 모두 그런 형부를 용서했고 다시 좋아했다. 아버지가 다스린 술의 유용함을 나는 믿는다. 아버지는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술판 벌이기를 좋아했고, 때로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엄마 대신 내가 아버지의 술상 맡에서 안주를 축내다 보니 아버지가 술을 대하는 태도를 익히게 된 것 같다.
친구가 그리운 날은 칵테일을 만든다. 낮술의 친구는 전원의 창밖 풍경이다. 혼술일수록 근사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맑고 투명한 크리스탈 잔에다 ‘괜찮다’를 넣고, ‘애썼다’도 붓고, 고독 한 방울도 추가해 ‘괴테 주’를 만든다. 인간은 지향하는 한 방황한다고 한 괴테와 건배를 한다. 나의 방황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그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다. 때로 금지된 욕망도 한 방울 섞고, 입 안에 고여있던 불온한 말들도 마구 넣어 휘휘 젖고는 ‘파우스트 주’라 이름 붙인다.
내가 당신에게서 훔쳐 온 건 이게 다야! 하고 시치미를 떼지만 쉿! 나의 욕망은 아직 숨겨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겠지?
(제17회 한국산문문학상, 2024)
*이명지(李明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93년<창작수필> 등단
제17회 한국산문문학상, 제42회 조연현문학상, 제32회 동국문학상, 제6회 창작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중년으로 살아내기』,『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이명지, 「낮술」(북랜드 : 《문장》(2024, 봄호,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