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 김재연 우리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산다. 그래서인지 사람사이에는 인연이라는 말도 악연이라는 말도 존재한다. 만남을 귀하게 여길 수도 만남을 원망할 수 있는 것도 사람 사이의 일이다. 얼마 전 서울에 일이 있어서 갔다. 서두르다 메모한 전화번호를 놓고 가서 부리나케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갔다. 수화기를 드는 순간 옆에 검정지갑을 발견하였다. 아마 통화를 끝내고 간 사람이 놓고 간 것 같았다. 통화를 하며 주인이 찾으려고 오리라 생각했다. 통화가 다 끝나도록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지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며 지갑을 찾고 있는 사람이 없나 하고 깨끔발을 딛고 고개를 내밀어 찾아도 다들 바쁘게 빠져나가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남의 지갑을 엿본다는 일이 실례인 줄은 알지만 일단 무엇이 들었나? 알아야 할 것 같아 열어보았다. 가운데 지퍼 속에는 세종대왕이 오십 명쯤 모여 있었고, 미화 100 달러짜리 3장, 일화 500 엔짜리 4장이 들어있었다. 한 쪽에는 운전면허증, 마스터카드, 수영장회원권이 꽂혀 있었다. 제주도를 다녀 온 항공권, 며칠 후 만나기로 한 사람인지 날짜와 장소가 적힌 메모도 있었다. 지갑의 주인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번 서울에 왔을 때 한말이 생각났다. 지존파의 증오대상이 되었던 압구정동 백화점에는 촌 아줌마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보석이 달린 예쁜 핀이 있었다. 판매하는 아가씨는 머리에 꽂아주면서 잘 어울린다고 부추기까지 하였다. 가격을 보니 만 팔천 원 조금 비싸지만 서울까지 왔으니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포장을 해달라고 하였다. 그런 후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손님, 이 핀 십 팔만원이예요."하지 않는가.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아주 여유 있는 미소까지 지으며 아가씨는 말했다. 나는 속으로는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주 여유 있게 다른 핀의 가격을 다시보고는 '0'을 하나 빼고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핀이 그 가격대로는 보이지 않네요. 좀 더 색이 진했으면......다음에......" 대충 어물정하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왔었다. 또 명품관을 돌아보며 복권 당첨되거나 길거리에서 돈지갑 줍는 횡재를 하면 와서 핸드백을 사야겠다고 웃으며 말했었다. 그런데 어림계산을 해도 백만 원은 거뜬히 들어 있는 지갑을 주은 것이다. 순간, 다른 생각보다 잃어버린 사람의 입장이 되어 발을 동동거리며 애를 태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였다. 아마도 지갑 주인과 나의 만남은 인연이었나 보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바꿔 생각을 해보면 결코 즐거운 횡재가 아니었다. 어서 빨리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혹시 좀 더 기다려 보면 지갑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싶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 보았지만 아무도 지갑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냥 가버릴 수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 시간도 없고 해서 가까운 파출소에 맡길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000원짜리 한 장만 잃어버려도 서운하고, 사용하던 공중전화카드만 분실해도 아까워 애달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 직접 찾아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수영장 회원권을 보고 수영장에 전화를 걸면 연락처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적중하였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회원권번호를 말하였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았다.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주인을 찾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과 교통의 지옥 서울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하였으니 빨리 서둘러야 오늘 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정신없이 일을 보느라 지갑 생각을 깜박 잊었었다. 6시 40분 비행기 편을 이용하기 위하여 공항에 도착하여서야 핸드백 속의 지갑이 생각났다. 급히 그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하는 남자 음성이 들렸다. 주운 지갑이야기를 하였다. 아내의 지갑이라고 하면서 아내는 하루 종일 그 지갑을 찾느라 슈퍼를 몇 번이나 갔었다면서 지금도 지갑을 찾는다며 또 나갔다고 하였다. 운전 면허증, 주민등록증, 수영장 회원권만 되돌려주어도 감사할 텐데 지갑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니 너무 고맙고 믿기지 않는다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했다. “저는 지금 군산에 가는데요. 어떻게 지갑을 돌려 줄 방법이 있을까요?” 공항까지 가려면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리니까 공항 <수사국>에 맡겨달라고 하였다. 공항 수사국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라 안내에게 한참 설명을 듣고 찾아갔다. <수사국>에는 인상 좋으신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이 지갑 습득했거든요. 조금 후 주인이 찾으러 올 거예요. 그러면 돌려주세요. " 내 목소리에 못 미더움이 묻어나서일까? "여기에 아주머니 주소, 전화번호, 이름 적어놓고 가세요. 지갑 주인이 고맙다는 연락을 드릴 겁니다." 짐을 벗은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서서히 움직이던 비행기가 온 힘을 다하여 쭉 뻗은 활주로를 따라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질주하였다. 구름위로 오른 비행기는 떠있는 두려움도 하늘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마저도 잊어버리게 하였다. 횡재의 기쁨에서 지갑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핀, 구두, 체크 남방, 핸드백, 눈앞에 스치는 것들이 많았다. 입장 바꿔 생각하고 지갑을 돌려 준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혼자 만족하고 흐뭇해 미소까지 지어본다. 잠깐 동안이나마 횡재를 꿈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했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위로하면서 어우러져 살면 넉넉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상상할 수 없었던 구름 새들이 잡힐 듯 스치어 자나가고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진다.
다음 카페의 ie10 이하 브라우저 지원이 종료됩니다. 원활한 카페 이용을 위해 사용 중인 브라우저를 업데이트 해주세요.
다시보지않기
Daum
|
카페
|
테이블
|
메일
|
즐겨찾는 카페
로그인
카페앱 설치
청사초롱문학회
https://cafe.daum.net/choung1004
최신글 보기
|
인기글 보기
|
이미지 보기
|
동영상 보기
검색
카페정보
청사초롱문학회
실버 (공개)
카페지기
부재중
회원수
19
방문수
0
카페앱수
0
검색
카페 전체 메뉴
▲
카페 게시글
목록
이전글
다음글
답글
수정
삭제
스팸처리
김재연 회원방
새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 김재연
오원
추천 0
조회 14
12.10.16 01:26
댓글
0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저작자 표시
컨텐츠변경
비영리
댓글
0
추천해요
0
스크랩
0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
선택됨
옵션 더 보기
댓글내용
댓글 작성자
검색하기
연관검색어
환
율
환
자
환
기
재로딩
최신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스팸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