睿王遺敎
김부식(金富軾)
내외 문무 신료와 승도 및 군민 등에게 교(敎)한다.
짐이 천지의 큰 명을 맡아 조종의 물려 준 기업을 이어 받아 삼한(三韓)을 차지한 지가 18년이 되었다. 쇠한 것을 붙들고 폐단을 구제하여 만민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같이하려 하여, 밤낮 없이 애쓰느라 일찍이 하루도 편안하지 못하였다. 근심하고 노고하여 염려가 쌓여 병이 된 지가 오래인데, 더함은 있어도 차도는 없어서 드디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권국사(權國事: 仁王의 諱)는 깊고 밝은 성품을 천생으로 타고 나서 원량(元良)의 자질이 인망(人望)에 흡족한 바, 말명(末命 왕의 마지막 명령)을 받아서 왕위에 오르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군국(軍國)의 큰 일은 모두 사군(嗣君)의 처분을 받으라. 상복은 날짜로써 달을 바꾸고, 산릉(山陵) 제도는 힘써 검약한 것을 따르고, 방진(方鎭)과 주목(州牧)은 현지에서 거애(擧哀)하여 함부로 임소를 떠나지 말고, 성복(成服)한 후 3일 만에 벗으라.
아아, 죽고 사는 것은 떳떳한 도리이니 사람으로서 면하기 어려운 것이요, 시종(始終)이 마땅함을 얻었으니 짐이 또한 무엇을 한하겠는가. 바라건대, 종묘 사직은 복을 쌓고, 신하들은 마음을 합하여 사군(嗣君)을 도와서 길이 왕실을 편안케 하라. 그리하여 우리 나라 운수로 하여금 무궁하게 누리게 하라. 슬프다, 너희 신민들은 나의 지극한 뜻을 알지어다.
*睿王: 睿宗. 고려 제16대 왕. 생졸년 1079~1122년. 在位 1105∼1122년. 휘(諱) 우(俁). 자 세민(世民). 시호 문효(文孝). 숙종의 태자, 명의왕후(明懿王后)의 소생. 1100년 왕태자에 책봉되고, 1105년에 즉위하였다.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에게 여진(女眞)을 경략하게 하여 함흥평야에 9성을 쌓았다. 1119년 이후 새로 일어난 금(金)나라와 교류를 시작하였다.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고 국학(國學)에 양현고(養賢庫:학생후생재단)를 설치하는 등 학문을 진흥시켰다. 능은 개성의 유릉(裕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