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깊은 계곡에 간 적이 있던가? 울창한 숲 일수록 햇살이 닿는 것마다 찬란하게 빛난다. 깊은 계곡에 숨어 있던 이끼 낀 바위와 고풍스러운 소나무에 빛살이 닿을 때까지 햇살은 얼마나 부딪치고 꺾어질 것인가? 부딪치고 부서질수록 햇살은 무수히 상처를 받겠지만 오히려 더욱 오묘하고 부드러운 빛깔과 색깔로 살아난다.
산꼭대기에서 거침없이 내려쬐는 햇빛을 받아봤는가? 따갑게 내려쬐는 햇살에서는 위안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자기는 늘 거침없었고 꺾어져 본 적이 없었음으로. 그러나 꺾어지고 부딪쳐 마침내 깊이 숨어 있는 계곡까지 내려온 햇살은 부드럽기 짝이 없다. 자신이 무수히 받았던 상처에서 느끼는 아픔을 알기에 쓰린 상처를 감싸주려는 위로의 손길과 마음을 느낄 수가 있기에 우리는 편안한 위안에 잠길 수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욕, 좌절과 안으로 곰삭는 상처에서 고결한 그대의 진주가 탄생한다. 그대의 탄식이 바로 주님의 은총이 시작하는 자리임을 모르는가? 일어서라, 그대!....."
지난 주 월요 성령기도회에서 바친 기도문 중의 시작입니다. 많은 분들이 청원기도를 넣어주지요. 아픈 분들을 염려하고 함께 마음과 힘을 보태 병상에서 일어서라고. 요 며칠 제일 많은 지향은 아무래도 대학시험을 보는 수험생이겠지요. 집안에 수험생이 있으면 온 가족이 다 수험생이 되어 밤잠을 설쳐가며 애를 씁니다. 오히려 수험생 엄마가 더 할 걸요. 이름 하나하나 똑똑하게 외어 바치며 올리는 우리의 간절한 청을 성모어머님이 무심하게 들으실까요? 성모님은 우리의 기도를 부지런히 나르다가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께 협박에 가까운 청을 넣기도 한데요. 간절한 기도는 성모 어머님의 마음도 움직여요. 정말 우리기도회에서 바친 소중한 아이들 모두모두 합격했으면 좀 좋을까요.
우리본당에 떠도는 괴담 한 가지 소개할까 해요. 어떤 분이 이러더군요. 기도회에 가고 싶기는 한데 한번 갔다가 붙들리면 어쩌나 하고 .... 기도회가 무슨 귀신 나오는 데인 줄 알더군요. 천만에요. 포스터에 소개한 말씀 내용이 마음에 와 닿으면 그냥 오세요. 입회절차도 없고 출석 부르지도 않아요. 오시는 것 자유고 또한 가는 것 또한 자유랍니다. 일찍 오셔서 찬미를 하세요. 우리 기도회에서 부르는 찬미는 복음성가 또는 생활 성가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가톨릭 성가와는 좀 다른데 감정을 쏟아 부르기에는 훨씬 좋지요. 클래식과 팝송의 차이라고 할까요. 찬미는 기도의 두 배라는 말 아시지요. 어쩌면 그대가 두어 곡 부르다가 보면 눈물이 글썽거리거나 마음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환희에 젖게 될 거예요. 제가 강추하지요.
그럼 회비는 얼마쯤 해야 하나요? 회비는 없어요. 회원명단이 없는데 무슨 회비를... 하지만 세 번째 주에는 비밀주머니를 돌립니다. 헌금을 걷는 거지요. 기도회도 돈이 있어야 기도회 강사님과 성령이 충만하신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지 않겠어요. 또 꽃 봉헌도 해야구요. 그러나 염려 마세요. 돈이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형편이 나빠져 헌금도 부담이 되는 분은 그냥 헌금 주머니에 손을 넣으세요. 아무도 모르잖아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냥 빈손을 넣을 수가 있겠냐고요. 천만에 주님은 그대의 거칠고 빈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실 거예요. 암 제가 장담하지요. 가난한 사람이 다니기에 부담이 된다면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교회와 공산주의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여섯 사람이 있는 곳에 빵이 네 개뿐이라면 어떻게 나누어 먹어야 될까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공산당은 빵 네 개를 똑같이 육 등분을 해서 나누어 먹는대요. 아주 공평하지요.
그러나 교회는 다른 해답을 제시합니다. 여섯 사람 중에 연로하신 분, 어린아이, 임산부와 병자를 구분하여 먼저 한 개씩 주겠지요. 그리고 남는 빵이 있다면 건강한 사람 숫자만큼 나누어 먹겠지요. 건강한 사람은 아주 쬐그만 조각의 빵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빈손으로 굶는 날도 있겠지요. 이게 교회의 나눔이랍니다.
가장 교회적인 사랑의 실천이 기도회에도 적용되지요. 좌절과 시련 속에 울적한 나날을 겪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기도회가 도움이 되어줄 겝니다.
오세요, 무엇이 그대를 망설이게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오세요. 기도회가 가난하다고 남루하다고 그대를 슬프게 한다면 이런 기도회는 없어져야 마땅하지요. 제 말에 동의하시나요?
매주 기도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교우님들에게 하얀 장미를, 어떨 때는 붉디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드리며 인사를 나누는 게 어느새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회에서 주는 장미를 꽂아두고 집에서 기도를 하면 왠지 오래 시들지 않고 기도가 잘 된다고 장미를 기쁘게 받아들고 가시며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분도 많으세요. 고마운 일이지요.
아름다운 꽃을 봉헌하는 분들의 예쁜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첫 번째 주는 율리아나가 두 번째 주는 실비아 자매님이 꽃봉헌 한다고 일 년치 예약이 년 말이면 끝나지요. 수험생 엄마들이, 혹은 주님께 받은 선물을 감사드린다고 감사의 꽃을 봉헌하는 분, 예약이 끝났다고 해도 부득부득 다섯 번째 주는 자기 차례로 해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분도 계십니다. 사실 한 달에 다섯 번의 주가 있는 달은 드물잖아요. 그래서 그날이 비어 있는 걸 용케도 알고서 굳이 다섯 번째 주라도 자기 차례로 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분도 있지요.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기도회에서 받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서 기도를 바치며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아세요? 벚꽃이 만발한 길을 성모송과 함께 걸어가는 기도회원님들 얼굴엔 환희와 감사의 모습이 차올라요.
그 다음으로 청원기도를 넣으면 돈을 내야하느냐고요? 뭣이든 돈에 얽히면 오해가 무성해진답니다. 돈을 내야 기도를 해준다. 제가 나주의 율리 뭐시깁니까?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냥 바치세요. 언제나 성가책을 나누어 주고 따끈한 차 한 잔 드리는 접수대에는 기도용지를 두고 있으니까요. 교우님들의 기도를 모아 그날 3부 순서에 다 함께 청원기도문을 읽고 간절하게 주님께 기도하지요. 이름이 밝혀지기 곤란하다면 이 바오로 또는 실비아 하고 쓰세요. 우리는 몰라도 주님께서는, 성모 어머니는 다 알고 계실 거예요. 기도회 날 한 번 기도드리고 마는 것은 아니지요. 봉사자들이 프린트한 기도문을 가지고 일주일 내내 기도합니다. 정성스레.
하지만 저 하고 약속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청원을 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좋지요. 그러나 그러고는 끝입니다. 기도가 이루어져서 고마우면 감사의 기도문을 주셔야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이 움직여 기도를 허락하셨는데 감사의 기도가 올라가야 당연한 게 아닙니까. 성경에도 나오잖아요. 누구의 병을 치유케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말씀으로 봉사자들에게 알려주시던지 아니면 그냥 기도문에 감사의 기도를 아뢰면 기도회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할 건데 ...감사를 빠뜨린다면 주님께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빈손으로 할 수가 있겠느냐 하고 지례짐작으로 걱정하신다면 섭섭하지요. 기도회가 청원기도를 하거나 기도가 이루어져서 고맙다고 돈을 요구하거나 강요한다면 기도회는 당장 해산해야지요. 암요. 성령기도회는 주님이름을 팔며 함부로 처신하는 기도회가 절대 아닙니다.
애절한 사연의 기도를 청할 때는 봉사자의 가슴이 바작바작 타오릅니다.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환우의 기도를 접할 때는 이상하게도 환우의 아픈 부위에 따라 우리도 거기가 아프답니다.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때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세요. 봉사자들 그날 그냥 집에 들어가지 못하지요. 기쁘고 고마워서 쌩맥 한 잔 들고서 주님을 찬미하느라고....물론 감사하다고 떡을 한 박스 해가지고 오셔서 기쁨을 나눌 때는 잔치날이지요.
"천사가 상주하는 성령기도회를 아세요" 라고 쓴 글 읽어보셨나요. 치유의 은총을 받으신 분이 이따금씩 안부의 전화를 걸어오시는데 일상이 고달프고 가난한 분인지라 일하러 나가느라 기도회에 나오지 못해서 안타까와하대요. 감사의 전화 한 통에 어쩔 줄 모르는 게 우리 봉사자들입니다.
또한 어떠한 형태의 감사의 봉헌을 하셔도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천사 한 분이 이러이러한 봉헌을 해주셨다"고 공지할 뿐이지요. 아무리 노력하고 조심해도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무척 조심합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서 상처를 받으신 분이 계신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야기가 무척 길어졌네요. 우리 기도회에 혹시나 오해가 궁금한 게 있다면 다 풀어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11월 19일, 바로 다음 주 기도회 강사님은 유명한 양승국 신부님입니다. 올해 대림주간 명동성당 특강에 양승국신부님이 나오시는 거 아시지요. 명동성당 대림에 뽑힐 정도면 여간 빵빵하신 분이 아니겠지요. 기대하세요.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
언제나 우리 월요 성령기도회는 교우님들을 기다립니다. 영상실에서, 월요일에, 저녁 7시 반부터....아시지요 교우님들! **********************************************
이 글은 제가 몇 년 전에 본당 성령기도회 봉사할 때 본당 홈피에 올린 글입니다. 기도회를 맡았을 때 열두어 명 남짓했던 기도회가 육칠십 명을 넘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지요. 서울 교구에서도 이만큼 잘 되고 있는 기도회는 없을 거예요. 또한 본당 내에서 많은 교우님들이 기도회를 추켜세울 정도로 아~ 신부님도 힘든 일이 있으면 기도회를 불러서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옛날 늬네 본당 기도회 가지고 뭔 소리네 하실까봐 변명합지요. 성령기도회가 신심단체 중에 구설수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점잖은 가톨릭에 뭔 방언(개신교용어)이니 해가며 흡사 무당 흉내를 내느냐고 오해하시는 분이 많길래 오해를 풀어보려고. 본당 홈피에 올렸거든요.
사람이 약해지면 점쟁이한테 찾아가는 교우가 이외로 많습니다. 또 간절히 기도하고 싶어도 혹시나 돈이 드는 게 아닌가? 돈이 드는 건 으레 감수하고 성령기도회에는 얼마나 준비해얄까 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우리 교우들은 간이 작아서 용감하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대다가 말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위의 글을 올려봤습니다. 여기서 성령기도회를 선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한때 실의에 빠져서 헤맬 때 성령기도회에 와서 치유를 받았거든요. 기도회에서 주님을 체험한 건 넘 많아서 이틀 밤 아니 나흘을 세워서라도 증거 할 수 있어요.
어쩌면 심령으로 하는 기도가 가장 원시적인 기도가 아닐까요? 인디언들이 창을 쥐고서 땅을 두드리며 무언가 주문을 외며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아갑니다. 횃불이 타는 소리와 땅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그들이 내는 주문.... 이건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드리는 모습이지요. 땅을 쿵쿵 밟으며 창으로 땅을 두드리는 것,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께 청원하는 몸짓입니다. 혹시나 ‘그분’께서 잠이 드셔서 못 들으실까봐 대지를 쿵쿵 두드리고 제발 저희가 소원하는 간절한 바람을 들으시고 통촉하시옵소서. 며칠 밤을 세워가며 아니 비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비가 와야 끝이 납니다. 그만큼 끈질기고 절실하기에 인디언의 기도는 100% 기도 빨이 있다고 합니다.
원시적인 기도란 가장 단순하다는 말과 통하지요. 단순하게 아뢰면 ‘그분’ 은 들으십니다. 심령으로 드리는 기도는 바치는 나 자신도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모르지요. 그냥 성령께 오로지 맡겨드릴 뿐이지요.
맡기는 영성이 성령기도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