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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아Q정전>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루쉰은,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문화혁명의 동력을 제공한 사상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으로, 후에 어머니의 성을 따라 루쉰이라는 필명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한국에 루쉰의 글들이 본격적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 시절 펴낸 책이 바로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루쉰의 산문집이었다. 저자에게 책을 받고 덕담을 나누며 축하의 말을 건넸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저자는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루쉰에 관해 글을 쓴 이래,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루쉰의 글을 읽고 연구해왔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우리 현실에 밀착해 루쉰을 새롭게 읽’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루쉰의 글에 기대어 찬찬히 들여다’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목차에서, 1부와 2부에서 루쉰의 글을 통한 세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3부는 루쉰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글은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루쉰의 글을 저자의 관점에서 완전히 장악하여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나아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루쉰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생각들을 오늘 우리의 문제와 연결시켜 논하는 방식이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루쉰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모두 9개의 꼭지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풀어놓고 있다. ‘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절망에 반항하면서 나의 길을 가는 법’에 대해 역설하기도 한다. 또한 ‘나다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주체적인 삶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회를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환치시켜, 루쉰의 글에서 나름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제목의 루쉰의 글을 통해서, 선보다 끈질긴 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선을 행하는 용기만이 아닌 악을 제거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제들이 저자의 글을 통해 아주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부는 ‘세상을 바꾸는 사유의 힘’이란 제목으로, 모두 12개 항목에서 주로 불평등이 만연한 21세기 한국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루쉰의 글에 힘입어 제시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성공에 대한 풍자로 사용되는 ‘노오력’이 라는 말이 가지는 함의를 따지며, 루쉰이 마주쳤던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인 ‘아Q’의 형상을 통해, ‘정신 승리법’의 효용과 그에 관한 저자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상대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 머릿속의 생각과 달리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피하기만 했던 나의 경험도 떠올려보기도 했다. 1930년대 신문의 넘쳐나는 가시에 희생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의 사건을 보고, 언론과 대중들을 질타했던 루쉰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 익명의 ‘댓글’에 숨어 악의적인 말을 생산해내는 그릇된 문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또한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루쉰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모두 3개의 항목에서, 루쉰의 생애와 문학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고, 일본 유학 시절 마주친 슬라이드 한 장으로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이다.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면서도, 루쉰은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평생을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루쉰은 중국인들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빛보다 어둠을 먼저 응시하며 절망과 어둠을 해체하는 데 삶을 바쳤’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한사람의 인간이고, 영원한 문학인’으로서의 루쉰을 기억하고자, 이 책을 통해 그를 불러냈다고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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