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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는 무속의 본풀이에서 실연되던 작품으로, 인간이었던 바리가 병든 아버지를 위해 저승에서 약을 구해와 소생시킨다는 내용의 서사무가이다. 간절하게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여섯명의 딸을 낳고, 마지막으로 낳은 자식이 아들이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일곱 번째 태어난 자식 역시 딸이었고, 실망한 부모에 의해서 세상에 버려지는 존재가 바로 바리데기이다. ‘바리’는 ‘버리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데기’는 ‘부엌데기’ 등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천한 존재들에게 함부로 붙이던 접미사였다.
그렇게 버려져 자라던 바리는 아버지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구하기 위해 긴 시간동안 세상을 떠돌며 고생을 하다가 저승에까지 이른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서 장례를 치르던 아버지를 그 약으로 구출하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로의 나라를 이어받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는 ‘무조신(巫祖神)’으로 좌정하는 인물이 바로 바리데기이다. 과거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되었다는 ‘바리데기 신화’는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오구굿’이나 ‘진오귀’에서 무당에 의해 연창된다.
나는 10여년 전에 광주 망월동 구 묘역에서 진행되었던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행사에서, 밤늦도록 만신들이 구연하는 ‘바리데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를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만신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이 너무도 익숙해서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내용이 바로 ‘오구굿’에서 연창되는 ‘바리데기 본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이러한 서사무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주인공 ‘바리’는 탈북민 소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고, 당시 열독하면서 스크랩을 해서 모아놓기도 했었다.
무당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바뀐 세상에서 무당임을 내세울 수 없었던 할머니의 능력은 그대로 바리에게로 계승된다. 즉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고, 죽은 자의 넋을 보고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등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바리는 일곱째 딸로 태어나 세상에 버려졌다가, 집에서 키우던 개 ‘흰둥이’에게 구출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북한의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삼촌의 탈북으로 인해 가족들은 고초를 당하고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할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탈출했던 바리는 아버지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을 잃고, 혼자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
밀항선을 타고 중국을 벗어나 유럽에 정착하게 되고, 그곳에서도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이어지고, 유렵에서의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인 이슬람교도인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서사무가인 바리데기를 차용하여, 탈북이라는 주제는 물론 유럽에 실재하는 동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다양한 사건들이 작가의 필치로 생생하게 다루어지고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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