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교인은 부처의 깊은 본성을 나름대로 경험하고 나름대로 지각합니다. 만약 그대가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한다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부처님은 불단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친숙한 누구입니다. 누구를 보는 것과 그이를 아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을 보려고 영축산까지 안 가도 됩니다. 나에게 부처님은 하나의 형상(image)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실재(reality)입니다. 나는 매일 부처님과 함께 걷습니다. 밥 먹을 때는 부처님과 함께 식탁에 앉고, 걸을 때는 부처님과 함께 걷고, 법문을 할 때도 부처님과 함께 합니다.
나는 이 부처의 본질을, 부처님 겉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걷기 명상을 할 때마다 부처님 손을 잡고 걷습니다.
- 팃낙한 기도의 힘 : 나는 부처님과 함께 걷는다 p82~83
좋은날입니다, 한님.
부처님 뵈러 영축산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실재하는 부처님과 함께 사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네요.
아침에 남편이 상처에 약을 바르려 하기에 얼른 불을 켜주었지요.
약을 잘 바르다 말고,
“머리카락이 여기에 다 모여 있네. 오늘 손님도 온다니 청소기를 돌리는 게 어때?”
“당신 눈이 좋아 세세하게 보니까 그래!”
“아니, 진짜로 많아, 먼지도 그렇고...”
“저녁에 늦게 와서 잠만 주무시고 내일 일찍 나간다는데?”
“그래도 손님이 온다는 데, 예의상이라도?”
“우리 집 조명이 컴컴해서 안 보여?”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여!”
“...”
그렇게 배웅하고 학교에 갑니다.
걷기명상을 하다가 함께 한 민들레에게 아침 이야기를 하니 한참 웃다가는,
“나는 나무에게 한표!” 합니다.
21년을 함께 한 남편이나, 13년을 함께 한 민들레나 어찌 이렇게 내 속을 모를까요?
신기합니다.
걷기명상을 반절만 걷고 라떼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손님이 오니 예의상이 아니라, 내양심에 소리를 듣습니다.
“청소를 해야겠구나, 드디어!”
일단 안경을 씁니다. 안경 쓰지 않고 청소를 하다 뒤돌아 다시 해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오늘은 나 혼자 하는 청소가 아닙니다. 부처님 손을 잡고 부처님과 함께 하는 청소지요.
뒷방을 정리합니다. 예전 방정리는 이것을 저곳에 잠시 갖다 두고, 또 저것을 이곳에 찾아오는 식이였다면, 오늘은 하나라도 제자리를 찾아 바로 놓아봅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깨끗해진 마음입니다.
이제 청소기를 꺼내 들고 밀어봅니다.
일단 청소기 줄을 길게 당겨 꺼내고, 밀대도 길게 늘이고, 콘센트가 있는 곳에 꽂아 작동합니다. 후다닥 밀고 나가기 보다는 구석진 곳을 좀 잘 봐가며 천천히 청소기를 움직입니다.
내 생각으로 저번 뒷방 정리 할 때 청소기를 돌렸으니 먼지가 그리 없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생각은 생각일 뿐 먼지 통에 먼지 모이는 것을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기도 했지만 허술하게 한 것도 표가 납니다.
저번 책 정리할 때 대충 아래만 훓고 지나간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이렇게 먼지가 있는걸요.
그렇게 찬찬히 뒷방을 하고 앞쪽으로 건너오기 전 살짝 고민을 합니다.
부처님 손을 잠시 놓아봅니다.
“또 하나 방을 할까요, 말까요?”
“...”
“안하는 게 좋겠지요?”
“...”
“역시!”
앞쪽 거실로 건너옵니다, 다시 손을 잡고.
아침에 문제가 되었던 곳을 먼저 확인하듯 가봅니다.
내 눈으로는 머리카락 한 개 보입니다.
“이걸 가지고 머리카락이 많다고?” 속으로 어이없어 합니다.
그렇게 뒤 돌려는데, 코너에 머리카락과 먼지들이 보입니다.
“아~~! 역시 청소하길 잘했지요?”
흔들의자 밑에 있는 카페트까지 들어내기는 힘들어 그냥 냅다 카페트 밑으로 청소기를 집어넣어 밀어봅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꼼꼼히 밟아가며 하다가는 오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함이 들어옵니다.
“계획이 뭐야?”
“그게, 밭에 나가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밭 돌아보며 할 일을...”
그러고보니 계획이란 건 밭 돌아보며 오늘 할 일을 정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딱히 그것에 시간을 매일 일은 아니니.
다시 마음을 잡고 천천히 부엌을 밉니다.
언제나, 언제라도, 부엌은 왜 그리 뭐가 많이 떨어져 있고, 붙어 있는지 나도 궁금할 지경입니다. 다시 숨 고르며 진짜 천천히 “타탁 타탁” 소리를 내는 청소기를 밀어 구석 구석 몇 번씩을 밀어댑니다.
의외로 먼지도 많더군요. 안경 쓰고 보는 세상은 이렇게나 다르다니, 새삼 놀랍니다.
돌아 나옵니다.
이제는 안방입니다. 마지막이지요.
잠만 자는 곳이니 깨끗하겠지 라고 생각은 잠시 멈춤하고 청소기를 들고 들어갑니다.
보기에는 깨끗합니다.
쇼파 밑과 책들 사이에 먼지가 솜털처럼 둥실둥실 청소기 바람에 날아다닙니다.
그럴 줄 알았지요. 이번엔 놀라지 않고 바로 청소기로 빨아드립니다.
안방은 마지막 구역이라 힘이 들고 책 정리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밀기만 했습니다.
금새 마무리가 됩니다.
처음으로 부처님과 함께 청소하는 날입니다.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하다가 딴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급히 다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서두름이 올라오기도 하고,...
뭐 여러모로 복잡하다가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 부처님은 제 손을 계속 꼭 잡고 계셨겠지요.
나도 무척 노력은 했습니다.
반은 되고, 반은 후다닥 마음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래도 “손님이 오니 예의상”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부처님과 함께”하고자 청소 했습니다.
고개 끄덕이며 잘했다고 내가 나를, 부처님이 나를 보며 웃음 지어줍니다.
처음이지만, 부처님과 함께 한 청소로 집안이 참 깨끗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의무가 아닌, 마음 챙김으로 청소는 참 오랜만입니다.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처님과 청소는 가끔 해봐야겠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그래, 오늘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님!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옴...
첫댓글 옴~~~~~~~~~~~
청소기가 괜시리 고마워지는 시간.
나의 애씀을 들어주는 문명의 이기에 감사.
넘치는 부처님의 미소에 감사.
그리고 그 미소를 닮고 싶은 마음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