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은 22장에서 24장처럼 공자의 밝은 덕을 밝힌(明明德) 장이다. 24장의 叔孫武叔과 마찬가지로 陳子禽 또한 ‘子貢을 공자보다 낫다’고 하였는데, 공자의 德은 사다리를 타고서 올라갈 수 없다고 비유하면서 子貢이 이를 꾸짖었다. 칭찬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성인의 문턱에도 올라가 보지 못한 小人이 聖人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만 더할 뿐일 것이다. 말은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 장을 공부하면서 推遜其師也와 綏之斯來에서 ‘推’와 ‘綏’의 讀音을 어떻게 하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推는 ‘추’와 ‘퇴’ 그리고 綏는 ‘수’와 ‘유로 학자마다 讀音이 상존하여 선택에 고민이 많았다. 考證學者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이라 더욱 더 그러하였다. 그러나 讀音은 대대로 스승으로부터 전해오는 서당방식의 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될 것으로 보고 ‘推’와 ‘綏’의 讀音을 ‘퇴’와 ‘유’로 보았다. 아래의 ‘25-4’에 나름대로 정리하여 보았다.
25-1
陳子禽진자금이 謂子貢曰위자공왈 子爲恭也자위공야언정 仲尼豈賢於子乎중니기현어자호리오
陳子禽이 자공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공손해서 그렇지 중니가 어찌 그대보다 낫겠는가.”
·陳子禽: 陳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陳亢이다. 子貢보다 아홉 살 아래였다. 《論語正義》에서는 “이곳의 子禽은 반드시 陳亢이 아니니, 그 姓名이 같은 子禽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註
爲恭위공은 謂爲恭敬위위공경하여 推遜其師也퇴손기사야라
爲恭은 공경하여 스승에게 겸양함을 이른다.
·推遜其師의 推는 ‘추’나 ‘퇴’로 읽을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 스승에게 배우는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퇴’로 읽은 듯하다. 推遜: 겸양하다(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다)
25-2
子貢자공이 曰왈 君子一言군자일언에 以爲知이위지하며 一言일언에 以爲不知이위불지니 言不可不愼也언불가불신야니라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한 마디 말로 지혜롭게 되기도 하고 한 마디 말로 지혜롭지 못하게도 되는 것이니, 말을 삼가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君子一言以爲知의 본래의 문장은 君子以一言爲知이다. 전치사 以의 목적어인 ‘一言’을 강조하기 위하여 ‘以’의 앞으로 도치된 것이다.
·言不可不愼也는 목적어인 ‘言’을 강조하기 위하여 서술어 앞으로 도치된 것이다. 원래의 문장은 ‘不可不愼言也’이다.
註
責子禽不謹言책자금불근언이라
子禽이 말을 삼가 하지 않음을 꾸짖은 것이다.
25-3
夫子之不可及也부자지불가급야는 猶天之不可階而升也유천지불가계이승야니라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마치 하늘에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
・A而B 경우 A와 B는 반드시 서술어가 되어야 한다. 階而升의 경우 階는 명사가 아닌 서술어로 풀이를 하여야 한다. 階: 사다리를 놓다/사다리를 타다.
註
階계는 梯也제야라 大可爲也대가위야어니와 化不可爲也화불가위야라 故고로 曰不可階而升也왈불가계이승니라 動之斯和동지사화하여 其生也榮기생야영하고 其死也哀기사야애니
階는 사다리이다. 大人은 <억지로 해서> 될 수 있지만 저절로 化하는 聖人은 억지로 해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다리를 타고서 오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大는 大人이고, 化는 聖人을 뜻한다. 仁의 德에 따라 사람을 善人, 信人, 美人, 大人, 神人, 聖人으로 구분할 수 있다. 大와 化는 아래의《孟子, 盡心下, 25章 》에서 인용된 것이다.
浩生不害問曰호생불해문왈 樂正子악정자는 何人也하인야잇고 孟子曰맹자왈 善人也선인야며 信人也신인야니라 何謂善하위선이며 何謂信하위신이니잇고 曰可欲之謂善왈가욕지위선이오 有諸己之謂信유저기지위신이오 充實之謂美충실지위미오 充實而有光輝之謂大충실이유광휘지위대오 大而化之之謂聖대이화지지위성이오 聖而不可知之之謂神성이불가지지지위신이니 樂正子악정자는 二之中이지중이오 四之下也사지하야니라
浩生不害가 물었다. “樂正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善人]이고 진실한 사람[信人]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나 원하는 것(본받을 만한 것)을 善이라 하고 자기 몸에 善을 간직한 것을 信이라 하고, 善을 행하여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美라 하고, 가득차서 밖으로 빛이 발하는 것을 大라 하고, 大의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化한 것을 聖이라 하고, 聖스러워 그 오묘함을 알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한다. 악정자는 善과 信의 중간이고, 神, 聖, 大, 美의 아래이다.
25-4
夫子之得邦家者부자지득방가자인댄 所謂立之斯立소위입지사립하며 道之斯行도지사행하며 綏之斯來유지사래하며 動之斯和동지사화하여 其生也榮기생야영하고 其死也哀기사야애니 如之何其可及也여지하기가급야리오
선생님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릴 기회를 얻으신다면 그야말로 ‘백성들이 살 방도를 세워주면 서고 이끌면 따라오고, 편안케 하면 모여들고, 감동하게 하면 화목하여,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영광으로 여기고, 돌아가시면 모두 슬퍼한다.’는 말처럼 될 것인데,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綏之斯來의 綏는 ‘유’나 ‘수’로 읽을 수 있는데, 논란이 되는 글자이다. 조선시대에 스승에게 배우는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유’로 읽었으나 이후의 학자들이 나름대로 공부하고 康熙字典등을 참고하여 ‘수’로 읽은 듯하다. 綏의 글자를 분석해보면 糸, 爫, 女로 구성되어 있는데, 糸는 끈, 爫는 손, 女는 ‘둥근 원’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를 종합하면 끈으로 연결된 둥근 손잡이를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 된다. 오늘날로 보면 버스의 둥근 손잡이를 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불안하지 않고 편안해 질 것이다. 綏가 이렇게 轉注되어 ‘편안하다’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옛 방식의 讀音인 ‘유’로 읽는 것이 올바른 듯하다.
註
立之입지는 謂植其生也위식기생야라 道도는 引也인야니 謂敎之也위교지야라 行행은 從也종야라 綏유는 安也안야요 來래는 歸附也귀부야라 動동 謂鼓舞之也위고무지야요 和화는 所謂於變時雍소위오변시옹이니 言其感應之妙언기감응지묘가 神速如此신속여차라 榮영은 謂莫不尊親위막부존친이요 哀애는 則如喪考妣즉여상고비라 程子曰정자왈 此차는 聖人之神化성인지신화가 上下與天地同流者也상하여천지동류자야라
立之는 백성들이 살 방도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道는 이끈다는 것이니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行은 따르는 것이요, 綏는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來는 돌아오는 것이요, 動은 감동시킨다는 뜻이다, 和는 이른바 於變時雍(변화하여 화목하게 된다)이니 그 신묘한 感應이 이처럼 신속함을 말한 것이다. 榮은 높이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음을 말하고, 哀는 父母를 잃은 듯이 슬퍼하는 것이다. 정자(明道)가 말하였다. “이것은 성인의 신묘한 교화가 상하로 천지와 함께 운행한다는 것이다.”
·於變時雍의 於는 감탄사로 讀音이 ‘오’이고 時는 ‘是’와 같다.
·立之謂植其生也의 방도는 《孟子, 梁惠王上, 3章 4節》과 《孟 子, 梁惠王上, 7章 23節》 그리고 《孟子, 盡心上, 22章 2節》에서 나오는데, 그 중 《孟子, 梁惠王上, 3章 4節》의 방도는 다음과 같다.
五畝之宅오묘지택에 樹之以桑수지이상이면 五十者可以衣帛矣오십자가이의백의며 鷄豚狗彘之畜계돈구체지휵을 無失其時무실기시면 七十者可以食肉矣칠십자가이식육의며 百畝之田백묘지전을 勿奪其時물탈기시면 數口之家可以無飢矣수구지가가이무기의며 謹庠序之敎근상서지교하여 申之以孝悌之義신지이효제지의면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반백자불부대어도로의리니 七十者衣帛食肉칠십자의백식육하며 黎民여민이 不飢不寒불기불한이오 然而不王者연이불왕자 未之有也미지유야니이다
5묘의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이상 된 이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닭이나 돼지, 개 같은 가축들을 기르면서 새끼 밸 때를 놓치지 않게 하면 70세 이상 된 이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고, 100묘의 밭에 그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한 집의 몇 식구가 굶주리지 않을 수 있고, 학교 교육을 신중히 행하여 효도와 공경의 도리를 거듭 가르치게 되면 반백의 노인들이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70세 이상 된 사람들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게 하고서도 천하에 왕 노릇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謝氏曰사씨왈 觀子貢稱聖人語관자공칭성인어하면 乃知晩年進德내지만년진덕이 蓋極於高遠也개극어고원야라 夫子之得邦家者부자지득방가자인댄 其鼓舞群動기고무군동이 捷於桴鼓影響첩어부고영향하니 人雖見其變化인수견기변화나 而莫窺其所以變化也이막규기소이변화야라 蓋不離於聖개불리어성이요 而有不可知者存焉이유불가지자존언하니 聖而進於不可知之之神矣성이진어불가지지지신의니 此차는 殆難以思勉及也태난이사면급야니라
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 “子貢이 聖人을 칭찬한 이 말을 살펴보면 晩年의 德을 향상시키는 것이 마침내 높고 원대함에 이름을 알 수 있다. 夫子께서 나라를 다스릴 기회를 얻으신다면 여러 백성들을 고무시키는 것이 북채로 북을 두드리는 것과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를 것이다. 사람들이 비록 그 변화를 볼 수 있으나 그 변화하는 所以然은 엿보지 못한다. 이는 聖人의 경지를 떠나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묘한 것이 존재해 있으니, 聖人이면서 알 수 없는 神人의 경지에 나아간 것이다. 이는 자못 생각과 노력으로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