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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언제나 행복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막상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언제나 흡족하지 않습니다. 행복한지에 대해서만 집착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1. 마음이 가난한가? 마음이 가난한지에 대한 질문에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봅니다. 한 가지는 내 욕심과 욕망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부족한 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면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돈 때문에 마음을 상한 것이 많았으니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부귀와 권세의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자신을 좀먹는 것들 속에 파묻혀 자신의 정체도 모른 채 살다보니 노인이 되었습니다. 움켜 쥘 줄만 알았고, 비울 줄 몰랐어도 가진 것 없으니 인생을 헛살았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한지 두 번째 질문은 얼마나 겸손하게 살았나 하는 문제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산 날이 더 많습니다.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아는 체하면서 살았고, 보잘 것 없는 힘을 가지고 힘 있는 체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체병은 가끔 자신이 정말 그런 속에 있는 줄도 모르는 중독에 빠지게 하였고, 그 교만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훼방을 놓는 덫에 걸리게 이중의 덫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악마는 내게 몇 개의 덫을 설치해놓고 그 중에 하나라도 걸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악마는 이 겸손을 가장한 교만을 위선(僞善)의 화장으로 색칠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2. 슬퍼하였는가? 언제나 기뻐하며 살라는 말씀과 대치되어서 혼동을 일으키지만 ‘슬퍼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세 가지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맹자 사단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고 슬퍼함입니다. 죄에 대한 통회의 정신이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왔음을 뉘우쳐 슬퍼해야 하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 뻔뻔함이 점점 기승을 부려 이제는 죄의식도 없어지고, 철면피한이 되어 죄에 대한 개념도 희박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둔감해졌음을 보고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의 생각은 용서입니다. 진심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함을 슬퍼하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용서는 사랑의 가장 근본입니다. 우리의 삶은 내가 용서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해야 하는데도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함을 개의치 않고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신자생활에서도 입으로는 용서를 말하면서도 진심으로 용서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위로만 받기 원합니다.
세 번째는 슬픈 일이 있어 슬퍼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슬퍼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 슬퍼할 때는 슬퍼해야 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위로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위로할 줄 모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주 슬펐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정말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이었나? 사실 이 질문에 대하여는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온유(溫柔)하다는 말은 해석하는데 참 어려운 말입니다. 부드러운 사람이었는가? 친절한 사람이었는가? 편안한 사람이었는가? 다정한 사람이었는가? 너그러운 사람이었는가?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는가? 다른 사람들을 잘 감싸준 사람이었는가? 평화로운 사람이었는가? 사실 그 모든 질문에 대하여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온유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고 그냥 각박한 세상 속의 각박한 사람으로 사는데 급급해서 살아온 삶이었으니 말입니다.
4.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었나? 정의로움에 대하여 질문해 봅니다. 정의는 말하기는 쉬운 말이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정의를 찾으며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만은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너무 불의가 판을 치고, 불의한 일들이 주변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폄하(貶下)되는 사회에서 정의를 위하여 몸을 던져 실행에 옮기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볼 때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맹자 사단의 시비지심(是非之心) : 선을 옳게 여기고 악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더불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의를 생각하면서 또한 불의한 것을 정의로 잘못 알고 소리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판단의 잘못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 판단의 잘못으로 불의를 정의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정의(定議)됩니다. 혹시라도 그러한 잘못은 없었는지 반성합니다.
5. 자비로운 사람이었는지? 자비로움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자비(慈悲)라는 글자의 모양이 어미가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자형(字形)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자비로움의 시작은 부모의 자식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베푼다는 것은 성인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바라고 계십니다. 자비로움은 자비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덕목입니다.
6.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었는지?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얼룩진 인간의 마음이 어찌 깨끗하게 정화(淨化)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적절한 수련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닦는 훈련은 끊임없는 자신의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련하기 위해서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매일 성경을 봉독하고, 성체조배를 한다든지, 영성수련을 한다든지, 묵상을 한다든지, 영적독서를 한다든지, 피정을 받는다든지, 영적지도를 받는다든지, 성무일도를 바치는 시간을 정해놓고 성무일도를 바치고,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한 수련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었는가? 이 질문은 아주 거창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미소한 질문입니다. 평화 중에 가장 큰 평화는 가정의 평화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도, 화를 함부로 내지 않는 것도, 청소를 잘하는 것도,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도, 돈을 낭비하지 않는 것도, 다투지 않는 것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여 사회가 평화롭고, 나라가 평화롭고, 세계가 평화로운 것입니다. 이혼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줄이는 것도, 아이들의 성격이 난폭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8.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이었나?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상외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옳은 말을 하고 비난을 받는 사람들을 변호해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여론으로나 언론으로 몰아붙여 해야 할 말을 못하게 하거나 옳은 말을 하고도 비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공직사회에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동창회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몇 사람의 의견으로 다수의 의견이라고 몰아붙여서 민주주의를 호도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무조건 ‘yes man’들이 이 사회에는 상상외로 많이 있습니다. 바른 말, 옳은 말로 바로잡아야 할 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의로움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이 엄청난 축복을 어찌 감읍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어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시작입니다. 1,1-7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축일6월 12일 성 가스파르 베르토니 (Gaspar Berton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777-1835년
같은 이름 : 가스발, 가스팔, 베르또니
성 가스파르 베르토니는 1777년 10월 9일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에서 부유한 법률가이자 공증인이었던 프란시스(Francis)와 브루노라 라벨리 베르토니(Brunora Ravelli Bertoni)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후 예수회와 베로나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학교에 있는 마리아회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11살에 첫영성체를 할 때 사제가 되리라는 환시와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1796년 신학교에 입학한 후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북이탈리아가 20년간 점령당했을 때 그는 병원사목을 위한 복음적 형제회에 참여하여 상처 입고 병든 이들, 혁명군의 점령으로 쫓겨나거나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1800년 9월 20일 사제로 서품된 성 가스파르는 성 바오로 본당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사목을 담당하였다. 그는 레지오 마리애의 형태를 빌려 젊은이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 단체는 1807년 나폴레옹의 법령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결국 그는 더 나은 시기에 그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고 연기하였다. 그는 또한 카노사(Canossa)의 성녀 막달레나(Magdalena, 4월 10일)가 성 요셉 수도원에 세운 공동체의 영적 지도를 맡았다. 그는 당시 수녀회의 지도신부와 신학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영성 지도자로서 활동하였고 또 잘 알려진 설교가였다. 1810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 피르무스(Pirmus) 본당으로 이동한 그는 주교로부터 신학생들의 영적 지도를 부탁받은 후 자신의 사제관에서 잦은 모임을 통해 젊은 신학생들을 영적, 신학적으로 굳건하게 양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최종 목표는 무조건적으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한 사제들의 쇄신이었다.
그는 당시 교황 비오 7세(Pius VII)가 나폴레옹에 의해 투옥되었을 때 교황을 위한 기도와 지원을 위한 전 유럽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교황은 언제나 교회의 ‘으뜸이자 움직일 수 없는 반석’이었다.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교회의 재건은 시작되었다. 그는 양떼를 다시 모아야 할 필요성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는 교우들에게 행해지는 설교를 통해 신앙의 근본 진리들을 제시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리교육과 설교에 투신하였다.
1816년 11월 4일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흔의 수도회’(Congregation of the Sacred Stigmata of Our Lord Jesus Christ)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학교를 세워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오상에 대한 신심을 널리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참회의 공동생활을 했고, 주교의 요청에 따라 젊은이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교육하고 사제를 양성하며 선교를 위한 설교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성모 마리아(Maria)와 성 요셉(Josephus)의 보호아래 수도회를 맡겼다.
성 가스파르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20여 년 동안 오른쪽 다리의 발열과 계속되는 감염으로 고통을 받았다. 수많은 수술을 받으면서도 그는 병원 침대에서 지속적으로 상담자요 영성 지도자로서 봉사하였다. 1835년 6월 12일 그가 선종한 후 그가 설립한 수도회는 베로나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1975년 11월 1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9년 11월 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가스파르 베르토니 (Gaspar Bertoni)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