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한 백인 목사님 부부가 혼혈아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뭐 이상하냐 싶지만 그 아이를 친자로 키우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어떻게 백인들 사이에 흑인 혼혈아가 태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발단은 그것입니다. 어느 날 강도가 들이닥쳐 목사님 부인을 강간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임신을 하였습니다.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낙태가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신앙과 양심이 갈등을 빚었습니다. 부부가 숙고하여 낸 결론은 방법이야 어떠하든 하늘이 주신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산하여 양육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함부로 결정하거나 조언하기도 어렵습니다. 신앙인 그것도 목회자였기에 결정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인종도 아니고 분명 혼혈아가 태어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택한 일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을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그냥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새 생명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야 정상이고 그렇게 바라고 삽니다. 그런데 세상에 몹쓸 일이 발생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한 것만도 아프고 힘들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데 임신까지 한다는 것은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입니다. 당장 없이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법으로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른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만약 십대 청소년이 당했다면 어떨까요? 상상하기도 싫지만 가능한 사고입니다. 당한 후 신고하면 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뒤돌아 유유히 걸어갑니다. 벌떡 일어나 돌멩이를 집어 들어 뒤통수를 가격하고는 쓰러진 남자를 수차례 내리칩니다. 결국 살인자가 되어 법정에 서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징역 5년을 선고받습니다. 교도소,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갑니다. 자신보다 청각장애인 엄마가 혼자서 견뎌야 할 것을 생각하며 더 아플 것입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직 어린 딸이 수감생활을 잘 견딜지 걱정으로 보낼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 한 가정을 깨 부셨습니다.
영화에서 본 수감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때로는 무시무시합니다. 한 방 안에서도 위계질서가 뚜렷합니다. 명령과 복종이 군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다반사입니다. 여자들도 그럴까 싶지만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만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면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곳도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영화 ‘7번방의 선물’입니다. 꽤나 유쾌한(?) 옥중생활 이야기입니다. 신체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잘들 어울리며 살아가는 감옥 아니면 감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서서 감옥생활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사회에서는 대체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모여 삽니다. 그러나 감옥은 전혀 다릅니다. 내가 원해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선별해서 사람을 사귈 수도 없습니다. 그냥 그곳에 놓인 대로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맘에 들든 안 들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이 적응해야 할 뿐입니다. 특히 다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줄기차게 괴롭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도 그의 형편을 살펴보면 자기 안에 담고 있는 고통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다보면 알게 되고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서로 화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를 위해 학교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합니다. 더 빠른 길을 택합니다. 빨리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여 직장으로 나가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살던 어느 날 그만 사고를 당합니다. 하루아침에 세상도 꿈도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견뎌나가는데 더 무서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울부짖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꿈이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무너진 것입니다. 두통약 처방을 받아서는 먹지 않고 모아둡니다. 산통이 오는 순간 입으로 다량 투약합니다. 그리고 응급실, 자칫 아이도 산모도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산모를 살리는 쪽으로 결정한 듯합니다.
임신한 사실을 알고 감방 선배들은 나름 아기용품들을 준비합니다. 모두가 사연들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만한 아픔들을 가슴에 담고 수감생활을 하는 것이겠지요. 서로 티격태격하며 지내지만 그래도 심성들은 따뜻합니다. 몰래 이것저것을 정성스럽게 마련합니다. 진통 전에 ‘윤영’은 감방 선배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두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옵니다. 딸을 부여잡고 통곡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바라던 세상도 삶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현실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니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심어야 합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공삼칠’(2037)을 보았습니다. 2022년 작품입니다. 수감자 번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