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시작 10분 전에 도착하여, 전심으로 예배하고, 모든 순서가 다 끝난 후에 나가는 예배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드려야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예배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도착하여야 한다.
어떤 목사님께서 설명하신 이야기가 크게 동감이 되었다. 전시회를 열기로 한 어느 화가가 찾아온 친구들을 지하실로 데리고 가더니 10분 정도 불을 끄고 깜깜한 곳에서 있도록 했다. 10분 후에 드디어 전시실에 올라갔을 때 너무나 의아한 친구들이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묻자 “자네들의 눈은 세상에서 본 이것저것에 영향을 받고 있네. 전시실에서는 그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깨끗한 눈으로 작품을 보아야 하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목사님은 예배를 드리러 오는 교인들도 최소한 10분 전에 도착하여 세상에 사로잡힌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기도하며, 준비된 상태에서 예배를 시작해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
영화관에 갈 때도, 연주회에 갈 때도, 야구장에 갈 때도 시작한 후에 도착하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 1분 전에야 간신히 도착하거나, 심지어 5분 후에야, 도착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정말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목사님의 축도가 끝나고 후주가 끝날 때 예배의 순서가 끝난다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후주 시간에 먼저 나가서 귀가하는 교인들과 인사할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인 중에는 목사님이나 다른 교인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축도하는 시간에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고, 심한 경우엔 설교 후 기도하는 시간에 나가버리기도 한다. 가끔 그 주일의 식사 당번은 축도하는 시간에 나가서 식사 준비를 하고, 차량 안내자 역시 그러하다. 회의가 있는 기관의 임원들 중에는 회의 준비를 하려고 일찍 나가기도 한다. 살아계신 존귀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체 우리는 왜 주일에 교회로 모이는가? 다음 글을 읽어보자.
주일에 예배당에 갈 때에는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이지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예배식이 끝나면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혹 어떤 사람은 예배당에 오래 다녀서 교회의 집사도 되고 여러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제직회에 가서 무엇을 의논하겠다는 데 마음을 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예배 보는 데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 본 다음에 모여서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집행하고 또 집회를 하며 활동을 하는 이런 데에다 정신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주일(主日)이라는 날 자체가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있는 날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다른 날에도 할 수 있지만 주일에는 그 날만을 구별해서 꼭 하나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다른 날에도 여러분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찬송을 개인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형의 교회가 함께 예배를 하는 것은 교회가 일정한 날에 모여야만 할 수 있는데 이 날을 주일로 정한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가 같이 모여서, 각 개인으로가 아니고 교회가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같이 찬송도 올리고,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당에 갈 때에는 무엇보다도 ‘오늘은 예배를 드리고자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며 말씀도 듣고 또 나를 전부 구별해서 주께 바쳤다는 고백도 하고 그렇게 하려고 간다’ 하는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날에는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할지라도 주일에 여기 모일 때에는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홍전, 『예배란 무엇인가』, 65-66)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많으니 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가장 중요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주의할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씀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예배나 무슬림들의 예배 모습을 보면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종교개혁 당시의 예배를 살펴보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도 종교개혁 당시의 예배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해서 다음에도 드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 번의 예배를 드릴 때에도 ‘이것이 마지막 예배일 수 있다’고 긴장하며, 최선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