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시신이 20구도 넘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한두 구라면 어떻게든 감춰볼 것입니다. 그런데 서너 구도 아니고 20구나 되는데, 하룻밤에 이 많은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죠? 도무지 상상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주변이 너무 조용합니다. 가능한가요? 물론 경찰차가 한번 다녀갑니다. 그런데 공사 차량이 도로를 차단하고 안내를 합니다. 밤새 공사가 진행될 것이니 조금 시끄러울 것이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총소리가 연이어 발생함에도 구분이 안 되는 겁니까?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시신입니다. 몇 시간 후면 식당 종업원들이 출근할 것입니다. 식당 안팎으로 너부러진 시신들을 어쩌지요?
그냥 영화니까 생각 없이 즐기면 됩니까? 하기야 그저 시간 보내기 정도로 사용하는 이야기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감이 있어야 진행이 되지요. 자기네끼리 우당퉁탕 거리며 끝나는 한정된 일화 정도로 넘어갈까요? 그런데 SF 영화도 아니고, 마블영화도 아니고, 전설 따라 삼천리도 아니고, 너무 허무맹랑해서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치고는 비교적 짧다는 것입니다. 이렇다 할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매우 저렴한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장소 이동도 별로 없고 그냥 그 자리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니까요. 크게 부서지거나 파괴된 것도 별로 없습니다. 주로 사람들이 치고받았으니 말입니다.
현실감을 이야기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이런 이야기 좀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기휴대가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에서나 가능합니다. 너도나도 쉽게 지닐 수 있으니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들고 나타나면 전쟁터도 방불케 총격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어느 때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종종 뉴스에도 나타납니다. 미국에서는 당할 때마다 총기규제 운운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해결이 쉽게 되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알고 있지만 해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회 전체 나아가 국가적 문제도 되기 때문입니다. 깊고 복잡하지요.
발상 하나는 괜찮습니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전직 KGB 요원, 대단한 셰프로 성공하고자 합니다. 든든하다 싶은 남편을 만나 화려한 레스토랑을 개업합니다. 그런데 남편 ‘레이’는 아내 ‘아나’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남자가 흔히 범하는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릅니다. 예쁘니까 결혼한 것이지요. 아나 또한 남편 레이에 관해서 깊이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때로는 그냥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같이 사는 겁니다. 살면서 알아가고 맞춰가는 거지요. 레스토랑을 개업하느라 마피아의 돈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몰랐고 아내가 전직 KGB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미 돈을 많이 끌어다 쓰고서는 갚지 않았으니 채권자는 어떻게든 받아낼 궁리를 합니다.
레이는 이미 몇 번 그들의 돈을 빌려다 썼습니다. 우두머리 ‘돈’은 더 이상 봐줄 수가 없고 이제는 어떻게든 돈을 회수하려 합니다. 마침 화려한 레스토랑을 개업했습니다. 잘 된다고 한들 거액을 챙기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뭘 믿고 또 기다려줍니까? 그래서 빠른 방법으로 회수할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보험금을 챙기자는 것입니다. 화재를 일으켜 그 보험금을 챙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지요. 그래서 아들과 부하를 시켜 그 식당에 불을 지르려하는 것입니다. 레이에게 찾아와 경고를 하지만 레이는 자꾸 피하려 합니다.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낯선 자들이 침입합니다. 아나는 숨겨져 있던 본능이 되살아납니다. 그냥 보통의 싸움꾼이 아닙니다. 웬만한 조폭들조차 거뜬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돈도 사태를 파악합니다. 더 많은 용병들을 고용합니다. 이미 사태를 파악한 아나는 숨겨둔 총기를 소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실력파라 해도 수적으로 열세이기에 비록 원수지간처럼 되었지만 친구의 도움을 청합니다. 남편 레이가 깜짝 놀라지요. 그리고 보통의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일단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사태를 수습해나가려 합니다. 다행히 아나는 친구 ‘미미’의 도움을 얻어 해결합니다.
목돈을 만드는 빠른 길, 로또가 아니라면 보험금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비단 화재보험뿐만 아니라 생명보험, 자동차보험 등, 사기로 지급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 점 하나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라는 선진국인데 아무리 한밤중이라 해도 도시 안에서 어떻게 사람이 20명 이상 죽어 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 있을까 싶지요. 다시 생각하지만 레이와 아나 두 사람은 이 많은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신고할까요? 그러면 레스토랑은 끝나겠지요.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는 두 부부가 즐겁게 식사하며 사랑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한가할 수 있다니 역시 영화입니다. 영화 ‘킬러의 레스토랑’(High Heat)을 보았습니다. 2022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