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8일
미국 프로덕션과 계약 한 날
뉴욕 브로드웨이 3번가 벤자민 커피숍, 미국인 프로듀서 마이클과 한국인 피디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롱타임 노시"
예~~~ 롱타임 노시"
나는 최대한 발음을 굴리며 환한 얼굴로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하도 굴려서 혀를 깨무는 줄 알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 최고의 스타 메이커
월리엄모리스엔더버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실무진들이다.
wma의 소속 연기자로는 멜 깁슨, 덴젤 워싱턴, 에디 머피, 존 트라볼타, 제니퍼 로페즈 등이 있고 우리나라 연기자는 2년 전부터 비와
이병헌, 김윤진, 그리고 영화감독 박찬욱씨가 함께 일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미국 진축을 상상해 왔고 그림을 그려오다보니 우연히 kbs인간 극장 피디가 미국에 촬영을 갔다 친해진 한국인 엔터테인먼트프로듀서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분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2000년에 미국에 여행 왔다가 혼자 미국에 남아서 미국 코메디를 연구하고 그 후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 지금은 최고의 스타 메이커로 불릴만큼 실력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나에겐 행운이었고, 난 그 행운을 놓치지않았다.
처음 만남은 2009년 5월 여의도 아라 커피숍에서 있었다. 그동안 일본어에만 집중해 온 터라 영어는 거의 쓰지않았던 나지만 그래도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10년 동안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해 왔고 , 또 가끔 외국에 놀러가면 간단한 생활 영어를 써왔던 터라 그들이
쓰는 영어를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 가 없었다.그들이 쓰는 본토 억양과 발음은 거의 불어나 독어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자막없이 2시간 동안 보는 미국 영화처럼.
일본에 진출해 활동하는 것을 비롯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해온 그 프로듀서는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물론 알아들은건 아니고 한국인 프로듀서가 통역해 주었다.
"혜련씨의 열정은 높이 산다.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에 진출한 것도 대단한데 다시 미국까지 도전하려는 정신은 높이 평가하지만 미국은 절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일단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면 절대로 미국 방송에서는 통할 수 가 없다. 그리고 문화도 공부하지않으면 안된다,. 이 모든 걸 공부하고 다시 연락주라. 나도 지금부터 당신이 미국에서 무얼 하면 좋을지를 연구해 보겠다. 만일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주라."
정말 미국인답게 쿨하다. 말 그대로 쿨, 차갑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영어로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뉴욕에서 다시 만나자." 물론 이 말도 통역해 주어서 알아들었다.
아는 단어인데도 말이 빨라서 도통----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은 온통 영어 생각 뿐이었다.
'말 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말할 수 있게 되면? 기간은 얼마나?"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어차피 답해 줘도 못 알아들을텐데 뭐---
그 후 파란만장한 2년이 지났다.
그리고 바로 오늘!!!
오늘의 면접에 의해 내 미국 진출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영어로 된거라면 닥치는 대로 보고 들었다. 단어장은 씹어 먹었다. 화장실, 차 안, 거울앞, 컴퓨터 앞은 영어 단어가 적힌 포스트잇투성이었고 외화는 자막 없이 봐서 남편이 짜증도 여러번 냈다.
'프랜즈' 전편, '섹스언더시티' '히어로'등등 같은 장면, 같은 비디오를 몇백번씩 듣고 봐 가며 영어의 억양과 발음을 그대로 흉내냈다. 그런 노력들을 숨기고 짐짓 여유있고 태연한 모습으로 미팅장소로 갔다.
악수를 하며 오랫만이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마이클에게 나는 대담하게 뜨거운 포옹을 하며 영어로 인사했다. 2년전 쭈빗거리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통역없이 두 시간을 줄곧 영어로 이야기해 나갔다.
세상에, 그 사람들이 하는 뉴욕 영어가 너무나 잘 들렸다. 아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거기에 농담까지 곁들이는 내가 되었다.
남이 아니다, 나다.
내가 하는 농담에 마이클이 깔깔대며 웃어주기까지했다.
나는 겉으로는 '후후~~이 정도로 놀라긴' 하는 투로 여유있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감격의 눈물이 줄줄이다.
'아~! 영어가 들린다. 그리고 이해가 된다'
테이블에 놓인 그야말로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침을 튀겨가며 흥분한 나는 그간 공부한 상식과 문화와 어학을 총동원하여 유창하게 영어로 떠들었다.
'2년전 만난 당신 맞아? 혹시 닮은 사람 아냐?" 라는 마이클의 능청맞은 농담에' 오!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니 정말 그 사람과 마음껏 울고 싶네요" 라고, 우리나라에서는 통화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통하는 개그를 섞어가며 대화를 주도했다.
마이클은 사무실로 돌아가 회의를 하고 나에게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커피숍을 나와 소호거리에서 나는 기다리고있던 단짝 허재와 나는 간단하게 일식으로 요기를 하고 뉴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노보텔호텔21층 룸에서 전화를 기다렸다.
저녁 8시쯤이었다. 마이클이었다.
'헤리언, 내일 사무실에서 계약서 씁씨다.축하해요,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맙소사, 꿈은 이루어진다.!!!
난 이렇게 답했다.' 이제부턴 리언 조라고 불러주세요"
마이클이 '리언 조 , 리언조, ---- 오케이! 이름 마음에 듭니다" 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 이름은 3년전 이 미래 일기를 쓸 때 출판사 스탭들과 함께 만든 미국식 이름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허재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네가 지켜 주어서 내가 된거야, 정말 고마워~~~!!"
일본 진출 때도 호리 프로덕션과 계약하던 날 그녀와 나는 목을 놓아 울어더랬다.오늘 우리는 또 한번 후련하게 눈물을 쏟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처음 일본에 가려고 했던 1996년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온갖 오해와 편견과 부정들과 싸우느라 처음의 결심과 각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또 하나. 허재 그녀가 지켜주지않았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의 배려와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어떤 감사의 말로도 표현이 안되는 부분이다.
이제 조혜련이 뛰어야 할 무대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한국 고추의 매운 맛을 멋지게 보여주리라.
리언 조의 인간다운 매력을 마음껏 미국 시장에서 발산하리라.
기다려라 미국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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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개그맨 조혜련씨가 쓴 "조혜련의 미래일기'에서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아직 오지않은 날, 미래의 일기를 생생하게 쓰므로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천하는 조혜련씨!!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법칙을 알고 부단히 노력하여 정말로 꿈을 이룬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
당신들의 꿈도 이루시길 기원하면서 이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