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산’을 읽고(이른비 )
‘이효석’하면 누구나 물을 필요도 없이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릴 것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봉평의 하얀 메밀밭을 눈 너머로 헤집을 만큼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이번 접한 ‘산’은 솔직히 도서관 강의를 통해 처음 본 작품이다. 그리 오래된 옛 문헌이 아니건만 모르는 단어나 토속적인 단어들 때문에 다시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소설이다.
중실은 김영감집에서 7년을 머슴 살고 빈손으로 쫒겨 난다. 가살스런 등글개 첩을 건드렸다는 생뚱같은 누명을 쓰고 말이다. 원통하였지만 그다지 애통한 마음도 없어 잇속 적은 머슴살이를 정리하고 나온다. 산은 사람처럼 배반을 하지 않을 것 같아 빈 지게를 지고 산으로 들어간다. 양지 바른 곳에 나뭇잎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벌꿀을 따 양식을 장만한다. 산불로 그을린 노루를 주워 소금을 그리워 하지만 산에 자신이 동화되어 감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나뭇짐을 판 돈으로 양식을 사면서 느끼는 풍요로움은 이것으로써도 족하다는 자아도취감에 빠져든다. 장터에서 김 영감의 첩이 최 서기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놓았다는 소식에 육십 노인의 꼴이 측은해 짐은 일말의 동정일까? 본디 중실의 마음이 착한 걸까?
산이 주는 넉넉한 인심이 좋아 굳이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 내려갈 맘은 없지만, 밥 짓는 일만큼은 여인에게 맡기고 싶다고 핑계를 대지만 그래도 사람이 그리운 속내였으리라. 용녀를 데려다 오두막을 짓고 화전하여 자식들과 행복해지고 싶은 꿈을 꾸면서 하늘의 별을 세며 잠드는 동안 중실은 별과 자신이 동화되어 감을 느낀다.
산의 전반부를 보면 한편의 장시를 보는 느낌이 든다. 가까울 것 같으면서도 멀리 달아나는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산. 인심 넉넉하게 자연의 열매들로 사람의 양식을 베풀어주는 산의 모습이 누구도 품을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효석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식민지하에 사는 지식인으로서의 괴로움을 산이라는 도피처에 숨고 싶었을까? 아님 총, 칼 들고 벌판을 달리는 독립투사들을 보며 못난 자신을 한탄한 것일까?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라고 노래하던 청산별곡에 나타난 고려 민초의 모습처럼 세속의 모든 고통들을 벗어버리고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묻혀 있고 싶어했을까? 그러나 ‘이럭저럭 낮은 지냈왔지만 올 사람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할거나’라고 노래한 모습을 보면 사람은 자연이 주는 위로 말고도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리라. 하늘이 울려라 고함을 칠 때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 대신 작은 소리로 속삭여도 마음을 읽어 줄 사람이 필요했으리라. 도망치고 싶지만 세상에 남아 배신당하며 살아 야 하는 모순, 아마 중실이 용녀를 그리워하며 가족이 주는 울타리를 갖고 싶어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