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어두워진 후에 다시 눈을 떠야 바르게 보게 된다는 생각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39-41)
이 말씀은 나면서 맹인된 자를 고치신 예수님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감사하고 칭찬하지는 않고, 오히려 시력을 회복한 맹인을 쫓아내고,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었을 때 예수님께서 결론처럼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네 죄는 전혀 보지 못하는 진정한 맹인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갑자기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 사도가 겪은 일이 생각납니다. 사도행전 9장과 22장과 26장을 읽어보면 그가 어떻게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던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자기가 모든 것을 확실히 잘 보는 사람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고,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상황을 잘못 보는 기독교인들을 가만둘 수 없어서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행 26:4-5)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행 22:3-5)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가 전혀 잘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는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혹시 그도 예수님께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세등등하던 그가 땅에 엎드러져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지내면서 그는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행 9:8-9)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6-16)
아나니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슨 일을 하셨고,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를 그가 들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이전에는 산헤드린 공회의 한 사람으로 그들의 말을 들었던 그에게 이제는 다메섹에서 만난 그 의인의 음성을 듣고 그가 행한 일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에 순종하여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를 씻는 은혜를 받은 그’는 죄인 중의 괴수와 같던 자기에게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평생 그 증인의 사명에 목숨을 드립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2-17)
그는 이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사방팔방으로 날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보는 눈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보던 눈이 잘못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사흘 동안 맹인이 되고 나서 비로소 바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좇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7-12)
우리도 자신의 다메섹 도상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맹인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만난 영국은 해적 떼의 나라에서 신사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탕자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여 세계 역사를 B.C.와 A.D.로 나누는 것처럼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예수님과 성경을 만나면 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을 ‘안경’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노인이나 눈이 흐린 사람, 또는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내보이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겨우 알 수 있겠으나 거의 두 낱말도 해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똑똑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Calvin, 『Inst.』, I. 6. 1). 안경의 도움으로 책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듯이, 성경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넘어서서 참되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인만 아니라 노인이나 눈이 흐린 사람, 또는 시력이 약한 사람도 모두 성경을 통하여 바른 시력을 갖게 되고,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맹인 경험”(?)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이전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바울을 죽여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만큼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로마에까지 가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 노릇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세계 역사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는 것을 가리켜 역사학자 A. J.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타고 간 배는 유럽의 문명을 싣고 간 배였다.”
누구나 사흘 동안의 맹인 기간이 있어야 이전의 지식과 경험과 자기 주장을 모두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새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이전의 삶과 별로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러한 맹인 기간이 없어서 여전히 옛날에 보고 들은 것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엎드려져서 남의 손에 이끌려 가는 맹인의 기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보게 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지만 영광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기쁜 소망의 길입니다.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405장)
1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2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3 The Lord hath promised good to me,
His word my hope secures;
He will my shield and portion be
As long as life endures.
4 When we’ve been there ten thousand years,
Bright shining as the sun,
We’ve no less days to sing God’s praise
Than when we first be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