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세계 신인상 (2015. 겨울호)
흰 연기의 꿈 외 2편
유혜연
나는 왜 이리 집착하다시피 별을 불러오는 걸까
별이 내 안에 다, 와서도 든 체 만 체 꿈꾸는 소녀
가슴 휑하니 꾸는 꿈
마치 눌변에서 달변으로 꾸미지 않고도
드디어 통과, 하는
기척 없이 맞는 불치병처럼 하루하루 자못 다른 기억일랑 어기지 않고
피어났던가
지난날 다단계 사다리를 모르고 탔을 때
연기설緣起說
놓쳤던 숨들마저 숨은
꼬릴 물고 늘어지다가 순간 꼭지 틀어 샤워기를 받아주다
그만 전화를 놓쳤던 기억
무선의 유선이 전파를 타고 전설 속, 고이 숨겨두었던 부활의
비의 비, 다 걷고 걷다가 링크를 타고 흘러드는 온몸 가득
먹물을 쓰고는 검객이 되어 뜻 모를 고백이나마 받아주면
유선의 무선이 전파를 또 타고 사별한 전사의 후예를 볼 것만 같아
전율이 온몸 가득 퍼져
마침 머리끝서 발밑까지 뻗치면 죽은 자
무덤 한 기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물빛으로 씻길 것만 같은데
손에 잡힐 듯 아련히
귀 봉사
귀가,
원상태로 돌아와야 하는데
들리지 않는 순간을
회상해야 하는데
순간이 순간으로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어
들린다고, 말할까 오물거리는 입이 참 뜨거이
무겁다하면서 오늘도
오락가락 누구든 나를
들렸다, 놓쳤다, 가물거린다
어쩜 생으로 이문耳門을 거쳐 간
귀울림 같은 걸까 흔적 한 점 남기려
장애인권보호소 주위로 오가는 햇살이 쟁쟁하다
‘머거리’들 쥐어박는 잘난 머리들 너머
어지러이 고기떼처럼 가라앉았던 심경을
어항 속 물 빼며 비추고 싶다
도발, 도발…… 틀어막을 귀 한 쪽 달고 제발 들렸으면
귀하게 눈 맞춘 너와 내가 사랑한다 쓰다듬는
소리의 노예이고 싶다 아득하리만치
지금 이 귀로 언제든 날 감싸는 먼 집에 들렀다
더 멀리 “귓밥 몰아내는 소리”* 하고 들어줄 수 있을까
가능한 한 아늑히 말리고 싶다
*이성복 詩「내 귀가 귓밥 몰아내는 소리」시집『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 2003)에서 가져옴.
안(眼) 보는 나무
보다 면밀히 나를 진찰하려고
내 속을 본다
속고 있는 연필심만큼의 날선
돌출부만 깎여나갈 듯이
세심히 들여다봐주세요
나무를 존경해
한 줄기 경탄을 경계로 새들은
마음 잘 날 없이
향기에서 냄새로 다시금
악취 나는 소식조차 쉬이
물어 나르지 않는다, 어느 날
나무 없는 곳
그곳의 정취로 경과를 지켜보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나무는
나만의 악취미를 캐지 않았다
나무 하나 들지 않아
반신불수 그루터기는 언제나처럼
생각했다
캄캄한 거리를 그리고
그리고도 길들지 않아 물들어버린
나무는 제 기일조차 낙엽 없이 부리지 않는다
불현듯 나이테를 잊은 나는
죽은 나무에 대고 입 맞추며 울었다
목적지를 향해
성긴 가로수를 담고 휘청거렸다
저 나무, 오래지 않아 바랠 빛이라도
덤으로 바라지 않겠나
아무거나 보고 싶진 않았다
아무쪼록 가려 보더라도
가려져 있는 눈들조차 덮어버리긴 싫었다
두고두고 외면할 대상 좇아
때때로
가려진 그늘처럼 덮어주고 싶었다
유혜연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술세계 신인상 심사평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힘
사물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가질 때 깊이가 생긴다.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낼 때 공감의 폭은 넓어진다. 하나의 사물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면 시는 단순해진다. ‘보이는 것 뒤에 숨어’있는 ‘안 보이는’ 것을 찾는 것이 ‘시 쓰기’이다. 먼저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한다. 시는 ‘아는 만큼’ 보인다. ‘찾아내는’ 힘과 ‘만들어가는’ 힘이 조화를 이룰 때 시의 골격이 단단해진다. 비슷비슷한 무개성(無個性)은 금세 잊히고 만다. 시 한 편을 짓는 것은 한 채의 집을 짓는 것이니 충실한 기초 작업은 필수이다. 습작의 힘으로 사유가 단단해지고 겉뜻과 속뜻이 멀수록 시적 긴장감은 늘어나는 것이니 이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먼저 선자選者들은 독창적인 시적개성과, 시의 무게, 새로운 인식, 전체적인 짜임새를 눈여겨보았다.
신인상 공모전 응모작 중에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그 겨울날엔』외 4편, 『볼펜똥』외 5편,『흰 연기의 꿈』외 4편이었다. 작품 간의 격차가 심하거나 주제가 모호하거나 설익은 문장은 선에서 밀려났다. 유혜연의『흰 연기의 꿈』외 4편이 비교적 심사기준과 근접하였다.
『흰 연기의 꿈』은 인간의 헛된 욕망을 조명하고 있다. 눌변을 달변으로 꾸미고 별을 따려고 오른 사다리는 다단계였다. 손에 잡힐 듯한 꿈은 불치병으로 깊어가고 두 개의 프로그램을 링크하듯 시적 화자는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무의식의 내면에는 연기설(緣起說)이 작용한다. 어떤 근본으로부터 일체의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된다면 시적 화자에게 근본은 세상을 살게 하는 힘, 즉 물질이다. 하지만 비대한 욕망은 잡을 수 없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물질로 피폐해져버린 영혼들은 죽은 자나 다를 바가 없어 무덤 속에 갇혀있다.『흰 연기의 꿈』은 무선과 유선, 즉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욕망의 덫‘이다. 물질만을 추구하는 병든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함께 응모한『귀 봉사』역시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단절’을 말하고 있다. 들렸다, 놓쳤다, 가물거리는 지점에서 바라본 건너편은 ‘머거리’들 쥐어박는 잘난 머리가 산다. “소리의 노예”이고 싶은 간절함으로 “소리의 통로”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 젖어야할 것과 말려야 할 것이 있다.
『안(眼) 보는 나무』는 “눈이 없어 못 보는 나무”이기도 하다. 어느 날 도시계획에 밀려 잘려진 성긴 가로수들, 반신불수의 그루터기들, 인간의 욕심으로 나무의 뼈마저 깎여나간다. 무의식에 잠재한 ‘상처’를 암시하는『안(眼) 보는 나무』는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이 시대의 ‘군상’들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건설되는 도시에서 눈을 뜨고도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유혜연의 작품은 이 시대가 지닌 내면의 상처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어를 고르는데 섣부르지 않고 신중하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신인이지만 결코 시의 중량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기대해도 좋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며『흰 연기의 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심사위원 (마경덕, 정인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