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형제, 어찌 보면 조금 까다로운 관계입니다. 아버지가 같다고 해도 혹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형제라면 분명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태어난 사람이야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태어나서 처해야 하는 환경은 좋은 편이 아닙니다. 행여 외도의 대상이었던 여인이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강제이별을 통고했을 수도 있고 본처의 조치로 내쫓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스스로 물러나서 홀로 출산하여 키웠을 수도 있겠지요. 남자가 자기의 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난 모르겠다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면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며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관심은 가지고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덕에 ‘상우’는 친엄마와 진작 헤어졌습니다. 오히려 찬밥 신세가 된 셈입니다. 그래서일까 일찍 집을 나온 모양입니다. 홀로서기를 하며 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집을 뛰쳐나와도 법적 행정적 절차는 그대로 그 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옵니다. 그 슬픈(?) 소식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버지의 부채가 상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막힐 일이지요. 그러나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해결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떠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방법을 찾다가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이복동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길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찾아낸 동생은 장애아동복지 시설에 있습니다. 12살 정도로 알고 있는데 만나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큰 어른이잖아? 알고보니 ‘조로증’ 환자입니다. 빨리 늙어가는 병, 정신은 어린이인데 몸만 나이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숙한 성 징후까지 보고는 더욱 놀랍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아버지가 동생 ‘봉구’에게 남겨준 돈이라도 뜯어내야 하는 형편입니다. 늙은 어린아이와의 동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과 언행이 딴판이니 적응해나기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당뇨환자입니다. 때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다행히 그것은 자기 스스로 주사할 줄 압니다. 팔에는 주사 자국이 선명합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데 벌어야 살지요. 일단 채무자를 찾아가서 돈을 요구합니다. 통하지 않던 채무자가 봉구를 보고는 겁을 먹습니다. 마치 조폭처럼 생긴데다 팔에는 주사 자국들이 즐비합니다. 겁나지요. 이게 통하는구나 싶으니 상우는 봉구를 그렇게 이용합니다. 통하기도 하지요. 티격태격하면서도 뭔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봉구 앞으로 되어있는 목돈을 빼내야 하는 일이지요. 맘에 들지 않아도 함께 지내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입니다. 봉구도 호적에 등록이 되어야 그나마 돈을 찾을 수 있답니다. 어쩝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봉구의 엄마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봉구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서 봉구의 머리 뚜껑을 열어버립니다.
이 점이 대조적입니다. 상우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를 잃고 힘들게 컸습니다. 그의 삶 속에서 아버지 이야기는 없다 싶습니다. 반면 봉구는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지요. 어린이가 사실 아빠보다는 엄마와 가까이 지내고 싶을텐데 말입니다. 장애를 지니고 있다 하여 복지시설에 맡겨버렸습니다. 버림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린 녀석이 얼마나 상처가 크겠습니까? 그러니 상우나 봉구나 부모에 대한 기억이 좋을 리 없습니다. 서로 다른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그런 사실을 알 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무심코 말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들는 쪽은 열불이 나게 됩니다.
상우와 봉구는 사실 이복형제라고 하지만 둘이서 함께 지내며 자란 기억은 거의 없으리라 짐작합니다. 딴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계기로 상우가 알지도 못하는 동생을 찾게 된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 돈입니다. 갑자기 짊어진 빚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동생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장애인입니다. 어쩌면 친엄마도 포기한 장애인입니다. 어느 날 알지도 못하는 형이 찾아와서 시설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기쁘지요. 하지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찾아온 상우 형의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목적만 달성하면 아마도 가차없이 헤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봉구가 그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를 또 생각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가족이라 하면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란 단어의 그 끈끈한 특성으로 인하여 색다른 조직에서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기네 조직의 탄탄한 구성을 만들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와서 보다 폭넓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속도로가족’이란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가족이 껴들어와 한 가족을 이룹니다. 우리말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소위 정으로 맺어지는 가족입니다. 상우와 봉구 관계도 돈으로 시작하였지만 미운정 고운정이 다져져서 가족으로 승화합니다. 영화 ‘오! 브라더스’(Oh! Brothers)를 보았습니다. 2003년 작입니다.